세계는 연금 전쟁 중

[워커스 이슈(1)] 자본주의 반대 없이 국민연금 지킬 수 있을까③

“연금이 넉넉치 않아요.” 67세의 베렌 사아트 씨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한 낡은 아파트 계단에서 근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과일이나 야채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울상을 지었다. 최근 터키 리라화 가치는 일주일 만에 25% 포인트나 떨어졌다.

터키는 지난 7월 연금의무가입제도를 1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인기를 회복할 요량으로 추진해왔던 공공정책이다. 하지만 ‘깡통연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미국 출신 앤드루 브런슨 목사 가택연금 건으로 미국과 경제 전쟁이 불거진 후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마찰만으로 터키 노인들의 연금통장에선 돈이 쭉쭉 빠져나가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 2010년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를 위해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출처: DemocracyNow!]

금융자본의 공격

지구적으로 금융화된 시대. 주택 가격 폭락에 따른 부동산 모기지 부문의 거품으로 추동된 2007/2008 세계 금융 위기는 전체 경제 금융화를 향한 장기간의 경향과 그 위험을 드러낸다. 학생 부채나 주택 또는 건강보험, 에너지와 식량 등 모든 것이 금융화돼 우리의 일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적연금조차 궁극적으로 국제 자본 시스템에 흡수됐다.

이런 조건에서 세계 금리가 0%를 달려가는 지금, 연금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가입국의 연기금 자산은 2017년 11% 성장했다. 이 규모는 OECD 지역 GDP의 56%로 28조 달러에 해당한다. 매초, 매분 투기 대상을 찾아 유동하는 국제금융자본에겐 군침이 도는 목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금융자본은 공적연금에 대한 압력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각국에 국내외 민간자본에 공적연금을 계속해서 개방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OECD 최신 연금 전망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OECD 가입국들은 연금 개혁을 통해 재정 지출에서 연금 운용을 통한 자산 증대를 우선해 초국적금융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 왔다. 그러나 세계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짐에 따라 금융시장의 단기적 변동을 활용하려는 기회주의적 투자 위험이 더욱 가중되며 우리의 연금을 위협하고 있다. 각국은 기금을 전술적으로 배분하거나 전문 관리자에게 아웃소싱하거나 파생 상품 이용을 통해 기금 재원을 충당하는 방식을 적극 이용하며 더욱 투기적인 방식으로 연금을 운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연기금의 헤지펀드 투자 비중도 거대연기금(LPFs)의 경우 2010년 15%에서 2015년 20.4%로 5% 이상 늘어났다.

각국 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국내서도 내년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액 중 20%를 해외 주식에 투자하기로 확정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국내 주식 투자 규모를 넘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30일 2023년 말까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15% 내외로 축소하고, 해외 주식 투자를 30% 내외까지 늘린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해외 주식 투자 증대란 결국 국내에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해외 거대 기업의 주식 투자이거나 윤리보다는 이윤 증대만을 목적으로 한 투자라는 문제를 지닌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제적인 견제나 구조 개혁은 보기 어렵다. 다만 국제노총(ITUC) 발의에 따라, 2015년 19개국 45개 노조가 공정하고 책임 있는 연기금 정책을 지지하는 발의를 시작했을 뿐이다. 당시 새넌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공격적인 세무전략을 통해 단기 수익률을 높이려는 시도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훼손시킨다. 노동자 자본의 스튜어드(집사)로서, 연금 펀드는 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세무 리스크를 다루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출처: DemocracyNow!]

“너희의 위기는 너희가 책임져라”

한편, 각국 정부들은 연기금을 금융화하고 거대기업이나 초국적 자본에 내맡기면서도 노동자의 연금수익은 삭감하고 부담은 늘리는 개혁을 강행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연금 개혁은 지난 2007/2008 세계 경제 위기를 경유하며 전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다.

2017년 스위스 사회보험청(BSV)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더 오래 일하도록 하고 정년으로의 진입을 유동화하는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조기 퇴직 가능성을 제한하고 남성과 여성의 정년이 다른 경우, 보다 높은 남성의 정년에 여성의 정년을 맞췄다.

남미에서는 ‘핑크타이드’ 정부가 들어서며 사적연금을 공적연금으로 대체하는 재공영화 정책이 추진됐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들어선 남미 각국의 우파 정부들은 다시 이를 재사유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는 연금 수령 연령을 남성은 65세에서 70세로, 여성은 60세에서 63세로 조정하고 연금 지급액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개혁안을 강행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점점 더 사적연금이 확대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OECD 가입국 사적연금 규모는 최고치에 달해 38조 달러 이상에 도달했다. 이 외에도 연금은 미국 달러시장의 금리 변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문제가 있다. OECD에 따르면, 세계 연기금은 2007년 미국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 때부터 1년 간 약 5조 달러가 날아갔다. 이후 2013년까지 계속 성장 추세였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미국 달러 금리 인상으로 오히려 자산 가치는 감소하고 있다.

  지난 12월 아르헨티나 연금 개악에 맞서 일어난 시위 중 한 청년이 노인 참가자를 부축하고 있다. [출처: Left Voice]

사회적 합의?

세계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연금개혁 저지를 위해 싸워왔다. 2007/8년 금융위기 후 각국 정부의 연금개악 시도가 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도 세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까지 노동자 수십만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해 12월 신자유주의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시위 중 150명이 부상을 입을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위기를 방어하려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공세에 연금 개악 저지 투쟁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하기에도
벅찼다.

김상균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은 중앙일보 주간지 <중앙SUNDAY>의 “진짜로 기금이 고갈된다는 얘기가 다시는 안 나올까”란 질문(8월 18일자)에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70년 후 1년치 연금지급액 보유’라는 목표를 정한 점”이라며 “이제는 망망대해를 헤매지 않고 어디로 갈지 알게 됐고 정확하게 배를 몰게 됐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더욱 확대되는 지금, 과연 70년 동안 국민연금의 배가 잘 운항되리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사이 노동자들은 얼마나 더 희생해야 할까? 과연 자본주의 반대 없이 우리의 연금을 지킬 수 있을까? 지금 연금 개혁 논란에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워커스 46호]


[각주]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43759
2) https://www.ituc-csi.org/IMG/pdf/1411t_pf_beps_call.pdf
3) https://www.google.co.kr/search?q=Hintergrung+Internationaler+Vergleich.pdf
&oq=Hintergrung+Internationaler+Vergleich.pdf&aqs=chrome..69i57.724j0j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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