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무노조’ 신념, 조직적 범죄로 이어졌다

검찰, 이상훈 전 의장 등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원 32명 기소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은 결국 그룹이 주도하는 노조와해 공작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노조파괴를 진행했다. 삼성의 노조파괴 전술은 MB시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조파괴 전문업체 창조컨설팅의 수법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수현)는 27일 이러한 범죄 사실이 담긴 삼성노조와해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목장균(54) 삼성전자 전 노무담당 전무(현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지원센터장)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28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이들이 노조 와해를 위해 동원된 수법이 ‘백화점식’ 종합판이었다고 밝혔다. 삼성은 △노조 활동 방해를 위한 협력업체 폐업, 조합원 재취업 방해 △차별대우, 개별 면담 등으로 노조탈퇴 종용 △임금삭감 △경총과 공동으로 단체교섭의 지연 및 불응 △채무 등 재산관계, 임신 여부까지 사찰 △불법파견을 적법한 도급으로 위장 △경찰, 협력업체, 고 염호석 열사의 아버지를 동원한 불법행위 등 외부세력까지 끌어들여 노조파괴에 이용했다.

노조와해 전략, 군사작전 방불케 해… ‘무노조 경영’ 신념 교육도

검찰에 따르면 노조와해 공작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을 컨트롤 타워로 두고,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미전실 인사팀은 매년 노조설립 저지, 고사화, 노조탈퇴 유도 등 일명 ‘그린화’라 불리는 노사전략을 수립해, 계열사별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무노조 경영 철학 신념화를 위해 임직원 교육 등을 실시했다.

이들이 작성한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노조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표현하며 “노조가 생기고 나면 와해시키기 어렵고,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만큼 사전예방만이 최선”이라 이야기한다. 검찰은 “노조 설립을 ‘사고’로 생각하며 발본색원하여야 할 대상으로 삼았고, ‘차등화’ ‘우군화’ 등 노조분열을 유도하며 노조를 조기에 고사화시키도록 독려하는 등 무노조 방침이 신념화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조와해 작업은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들로 구성된 종합상황실과 삼성전자 본사와 소통한 ‘신속대응(Quick Response, 약칭 QR)팀’에 의해 이뤄졌다. ‘심성관리’라고 부르는 노조원 밀착감시, 거액의 금품지급을 미끼로 탈퇴 유도, 고소 및 고발로 압박하기, 작업 미배정으로 월수입 감소, 노노갈등 유발부터 아예 회사를 없애 버리거나, 갖은 핑계를 만들어 노사협상을 지연시키는 전술 등이 동원됐다.

검찰은 “삼성이 동원한 전술들은 ‘창조컨설팅’의 경우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로 진행됐는데 이는 삼성이 노조와해를 위한 전문인력을 ‘In House' 형태로 다수 보유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라며 “외부 컨설팅 업체를 한시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를 채용하거나 자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로 전문가들을 영입・육성하여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공작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내부 노조파괴 역량에 외부세력까지 더해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

삼성의 노조와해 전략에 고용노동부, 경총, 경찰까지 동원됐다. 검찰은 노조가 삼성의 내부 전문가와 외부세력이 합세해 압도적인 힘과 정보의 우위로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게임을 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인 노조 전문가는 고용승계 없는 기획폐업 제안, 주간 이슈회의 등 노조와해 회의 주도, 무노조 방침 체화를 위한 임직원 특강 등 노조와해 전반에 걸쳐 자문했다. 여론전을 통한 노조 고립, 조합원과 비조합원 적극 분리, 선별적 고용승계로 역량 소진 등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2014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이뤄진 자문의 비용은 약 13억 원이었다.

협력업체들로부터 노사협상권을 위임받은 경총은 위임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삼성의 이익을 위해서만 협상을 진행해 특정 기업의 ‘무노조 경영’ 철학을 유지시키는 데 일조했다. 경총은 삼성 측의 요구대로 지연 전략을 마련하여 단체교섭 대응 설명회 개최, 전화․이메일 등을 통해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단체교섭을 어떻게든 미루고 쉽게 응해주지 말도록 지도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서비스노조는 2013년 7월 중순경부터 교섭을 요구했지만 그해 10월이 돼서야 교섭이 열렸다.

특히 경찰은 삼성의 노조파괴에 큰 축으로 보인다. 경찰은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열사 투쟁 저지를 위해 동원되는 한편, 노조의 각종 정보를 넘기고 교섭에 직접 나서 사측에 유리한 협상결과를 끌어냈다.

정보경찰 간부 김 모 씨는 ‘노사 중재’라는 명목하에 사측 대표처럼 비밀협상에 참여했다. 매년 임단협 등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결과를 유도하고 공식 교섭 테이블을 무용화시켰으며, 노조의 교섭 대응 전략 및 방향, 투쟁 관련 동향 등도 수집해 회사가 협상 과정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모 씨는 2014년 5월 18일, 염호석 열사 사망 직후 삼성전자서비스 최 모 전무와 호텔에서 만나 가족장을 치르도록 아버지를 회유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삼성이 고 염호석 분회장의 아버지에게 6억 원을 전달하는 자리에도 함께했다.

김 모 씨는 이러한 대가로 2014년 8월부터 2017년 9월까지 6,1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챙겼고 지난 7월 26일 구속기소됐다.

‘무노조 신념’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이번 검찰의 발표는 중간 수사 결과라 할 지라도, 이재용 등 오너일가의 개입 여부를 밝히지 않는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27일 논평을 내고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노조파괴 범죄는 꼬리자르기로 머물렀고, 천하에 몹쓸 조직범죄의 두목인 이재용은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사상 최대, 사상 최악의 노조파괴 조직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한 사법적 처벌은 너무나 가볍고 미미해 분노가 치밀 정도”라며 “구속기소는 삼성전자 노무담당 임원 등 4명에 불과하고, 조직범죄의 부두목급인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28명은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상훈 의장 등 구속영장을 16건이나 청구했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율은 25%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삼성 계열사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와 함께 지나가는 개도 믿지 않을 ‘이재용 증거 없음’이 아니라 유죄유벌의 원칙이 재벌총수도 비껴갈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4월 17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90여 개 A/S협력사를 대상으로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콜센터 등 간접고용 노동자 8천여 명을 전원 직고용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삼성에 드디어 노조의 봄이 오나 싶었지만 삼성전자서비스가 콜센터 자회사 전환을 주장하며 협상이 중단됐다.

삼성에스원노동조합, 삼성웰스토리지회, 삼성지회 CS모터스분회도 삼성의 불성실한 교섭과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며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아직 폐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에버랜드 등 삼성 다른 계열사의 노조와해 의혹에 대해서 계속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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