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작업환경측정보고서, 핵심기술로 볼 수 없는 이유

[기획연재] 삼성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비공개 재결 비판④

[편집자 말] 지난 8월 23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삼성전자 등 3개 계열사가 제기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정보공개 결정 취소청구’ 행정심판 사건 중 주요 쟁점 사안을 모두 비공개 하기로 결정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 산업보건전문가,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 같은 행정심판 결과가 부당하며 영업비밀보다 생명건강권 정보에 대한 알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에 참세상은 왜 삼성의 안전정보가 공개돼야 하는지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소리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연재순서]
① 삼성의 사익보다 알 권리…“알 권리는 살 권리다”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링크)
② 노동자 생명 포기한 중앙행정심판위원회 | 심재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링크)
③ 안전보건정보는 비밀이 될 수 없다 |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과 의사)(링크)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대한민국 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만불 이하일 때 국민의 행복은 경제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이만불을 넘어가면 국민의 행복은 사회의 투명성, 신뢰성, 언론자유, 또는 사회 갈등요인(예, 빈부격차, 지역 갈등, 노사갈등, 환경문제)등의 최소화에 의해 결정된다. 그간 우리는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까지 향상될 때까지 많은 것을 감내하고 정부나 사회 지도층이 제시하는 프레임을 의심 없이, 아니 의심해도 그냥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 정부나 사회는 만불 이하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프레임을 아직도 강요하려 한다. 그 프레임 중 하나는 정부주도와 재벌그룹의 사회적 영향력 극대화이다. 최근에 불거진 예들로, 국가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의 실상이요, 사회적으로는 세월호와 가습기 참사, 재벌그룹에선 삼성의 문제가 있다. 삼성의 사건은 승계 문제, 노조 설립방해, 그리고 올해 산업보건분야에서 크게 불거진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의 국가핵심기술 관련 논란이다.

이런 삼성의 사건은 한결 같이 삼성이라는 재벌이 어떻게 정부와 밀접히 연관되어 사회를, 그리고 국민을 기만하려는 공통의 프레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 프레임은 모두 과거 독재정권에나 있을 법한 구시대적인 프레임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들이댄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삶에 대한 요구와 권리는 이제 과거 프레임으로 담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갈등하며 불행하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논란 - 삼성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삼성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25일, 자체 뉴스룸을 통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판정기관이 아닌 ‘산재 신청자’가 본인이 일했던 곳뿐 아니라 사업장 전체의 수년치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거나 ‘작업환경과 무관한’ 제3자 보고서 전체를 요구하는 경우입니다”라고 그럴듯하게 보도한다. 그러나 다음 그림에서 보듯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공개 여부에는 결국은 정부가 공개해야 하는가, 핵심기술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논란의 경과

삼성의 주장대로 산재 신청자(피해자)가 삼성에 요구했을 때 측정보고서를 산재 신청인에게 공개했다면 굳이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가 정부공개를 요구하지 않아도 됐었다. 그러나 삼성은 철저히 피해자에게도 비공개했다(그림 1단계). 그러자 피해자는 직업병을 판정받기 위해 할 수 없이 정부가 보관하고 있던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게 된다(그림 2단계). 그러나 정부도 자료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한발 더 나가 법원에서 직업병으로 인정하자 삼성 편을 들어 직업병 인정이 부당하다는 삼성측 입장을 대변해 피해자를 대상으로 직업병 인정 취소 소송을 내기도 한다(2단계). 한편 많은 피해자는 작업환경에 대한 자료를 알 수 없어 산재 신청에 애를 먹고 있다가 정부가 갖고 있는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기에 이르게 되고,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에서 최소한의 비밀을 제외하고 공개하라고 결정하게 된다(3단계). 그리고 이 공개 결정에서 법원은 정보공개가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법적(정보공개법)으로 부합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과거의 프레임에 익숙한 삼성은 수많은 노동자의 질병과 아픔을 무시한 채 새로운 프레임을 찾는다. 그것이 불쑥 튀어나온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되니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다(4단계). 이를 처음 판단한 것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인데 당시 산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고서에 핵심기술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때 전문가는 모두 반도체 기술 전문가들이었지만,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학자들이었다.

결국 삼성이 애초에 산재 신청자의 권리를 보장했다면 첫 단계에서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과거 정부와 결탁된 재벌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전술한 노조설립방해, 경영권불법승계, 가장 최근의 이산화탄소로 인한 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의 대응과정과도 비슷하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해야 하는 이유

과거 프레임에 익숙한 삼성의 주장에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경제성장을 주무로 하는 산자부가 나선 것도 아이러니하다. 산자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말미암아 국가의 기간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사회적 위기의식에 편승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도 별다른 고민없이(연재 2편 참조) 본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되니 공개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첫째,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는 항목 자체가 매우 포괄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핵심기술인지 특정할 수 없다. 현재 지정된 반도체 관련 핵심기술은 30 나노 이하급 관련 반도체 기술은 모두 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다. 쉽게 비유하면, 어느 회사에서 매우 특별한 두부를 제조한다고 할 때, 일반적인 두부 제조공정은 비슷하여 핵심기술이 될 수 없고, 그 회사에만 사용하는 특정 공정의 특정 제조비법이 핵심기술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핵심기술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두부제조공정 전체가 핵심기술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인 반도체 제조 공정은 교과서를 보거나 웹을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공개를 하지 아니해야 하는 영업비밀과 핵심기술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회사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영업비밀이라는 제도가 있고, 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그러나 핵심기술 자체가 영업비밀은 아니다. 물론 일부 핵심기술은 영업비밀에 속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삼성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하는 기술 항목들을 미리 지정했어야 마땅하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면 이해 당사자에게 공개하도록 법적으로 정해놓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

셋째, 생명권과 알권리는 핵심기술이나 영업비밀에 우선하는 헌법적 기본권이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핵심기술이나 영업비밀의 내용이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산재신청인의 정보공개의 권리(알권리)와 동등한 개념이 아니다. 산재신청인의 생명에 관한 권리(건강권)는 인간의 존엄권에 해당하며 알권리는 청구권적 기본권에 해당하는데, 이는 모두 헌법에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이런 헌법상 기본권적 권리는 사적법익의 비인격적 이익에 비해 훨씬 우월한 가치를 가지게 되며, 우선권적 가치이다. 더불어 건전한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 정보공개법에서는 국가가 갖고 있는 정보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넷째, 정부나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실제로 국가 핵심기술이 담겨져 있지 않다. 국가핵심기술이 논란이 되었을 때 삼성이나 산자부가 주장하는 핵심기술요소로 공정개요도(측정위치도)를 들었다. 공정도를 보면 중국기업에 기술 유출이 될 수 있다고 국민을 호도했다. 그러나 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보고서에는 공정의 개요도가 없다. 작업환경측정기관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추후에 어디에서 유해인자가 측정됐는지, 어떤 근로자를 대상으로 측정했는지를 표기하기 위해 공정도를 작성하지만 실제로 정부에 보고할 때는 공정도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보고서에 기술된 각 공정명을 보면 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공정들은 이미 교과서나 인터넷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개된 공정이다.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백 가지 공정에서 각각 특정 기술과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측정보고서는 교과서적으로 압축해 표현한 10개 정도의 명칭으로 표시한다. 또한 각 공정별 투입 인원도 핵심기술이라고도 하는데 반도체산업은 급격한 자동화로 공장 내 인원이 매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측정 당시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공개되더라도 현재의 실상을 알 수가 없고, 기재된 인원도 모두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일부 인원(공정, 설비엔지니어 및 협력업체 직원 누락 등 실제와 다름)에 해당된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산자부가 주장하는 기술유출에 대해 일부분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한 가지,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제품에 관련된 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 화학물질은 공정별로 알려져 있고, 화학물질 자체 명칭으로 표기돼 있으므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단지 특정 공정에서 특정 제조회사의 제품이 들어간 정보가 포함될 수는 있으나, 이것이 염려된다면 해당 제품의 상표명을 가리고 공개하면 된다. 이 외에는 측정보고서에 핵심기술 정보나 영업비밀이 담겨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삼성 스스로도 결단해야

위와 같은 여러 이유로 행정심판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불행하게도 정부는 그대로라는 말이 진실처럼 들린다. 과거의 정부나 과거의 재벌이 갖고 있는 프레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도래했는데도 여전히 ‘아! 옛날이여!’를 외치면 안 된다. 삼성은 그간 직업병 관련해 수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음에도 질타를 받아왔고 문제해결에 실패하였으며, 올해 8월 반올림과의 극적합의를 통해 조정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국가를 동원해 다른 프레임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압박하려 한다. 삼성은 더 이상 과거 프레임으로 정부를 동원하여 피해자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삼성이 이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스스로 걷어낼 때 궁극적으로는 건전하고, 시민에게 그리고 노동자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다.

끝으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와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 의견을 주장한다. 첫째, 사업주가 공개할 때 이해당사자(피해자 및 대리인)에게는 영업비밀유무를 떠나 모두 공개해야 하며 당사자는 비밀준수의무를 지켜야 한다. 둘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영업비밀을 포함하고 있을 경우에 당사자에게는 사업주가 공개하는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되고, 제3자(이는 정보공개법의 권리임)가 요구할 때는 영업비밀 정보(예, 측정 화학제품 상품명)를 가리고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 이해당사자는 물론 제3자에게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 이런 원칙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의 충족, 정보공개법의 취지와 알권리를 동시에 충족하면서 시민의 감시와 견제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감출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 주장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우려, 반도체 사업의 기술적 격차 유지 등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서 특정 반도체 기술이 보호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그런 비공개돼야 할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면 이는 해당 부분을 정확히 적시해 그 부분을 가리고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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