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다 아는 원장님의 비리장부

[워커스 어린이집 이슈④] ‘어린이집 비리’는 어떻게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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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형 어린이집의 올해 세출계산서를 재구성해 봤다. 어린이집 원장이 얼마든지 사용 또는 유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목들이다. 원칙대로라면 원장이 가져갈 수 있는 인건비는 호봉표에 따른 기본급과 원장수당, 그리고 직책금 정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로 다종다양하게 회계를 조작하고 돈을 빼돌릴 방법들이 있다. 우선 보육교직원수당으로 잡혀 있는 ‘시간외 수당’은 ‘보육교사’가 아닌, 원장만이 수령했다. ‘공공요금’으로 잡혀 있는 월 10만원의 핸드폰 요금도 원장의 몫이다. ‘여비’는 대개 원장이 외출할 때 사용하는 교통비로 사용된다. 교사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교사들은 의복이나 치료비를 받은 적도 없다. 운영비로 잡혀 있는 장비구입, 도서구입, 사무용품 등에서도 허위 영수증을 통한 소소한 횡령이 가능하다.

특히 운영비에는 연간 96만 원에 달하는 ‘어린이집연합회’의 회비가 포함돼 있다. 이는 유치원비로 연합회비를 지출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비리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서울형어린이집’은 정부로부터 국공립어린이집 수준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사실상 막대한 국민 세금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이익단체인 ‘어린이집연합회’로 흘러들어가는 꼴이다. 업무추진비로 잡혀 있는 항목 역시 원장의 외부활동 자금으로 쓰인다. 뿐만 아니라 A어린이집 교사들은 직무교육 참여 외에는 따로 교직원 연수 및 연구비를 지급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간 4,500여만 원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금액이다. 회계상 잡혀 있는 연간 1,400여만 원의 급식비와 160여만 원의 교재, 교구 구입비에서도 얼마든지 횡령이 가능하다. 실제로 어린이집 원장의 보육비리는 크게 △급식비리 △교구 구입 과정에서의 리베이트 △교직원 허위등록을 통한 지원금 유용으로 나뉜다.

지난 10월 16일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가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는 보육교사들이 증언한 원장들의 다양한 비리가 폭로됐다. 한어총 급식비리의 경우, 급간식비용을 과다 구입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타 어린이집에 빼돌리거나 업체와 결탁해 허위 영수증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참여했던 228명의 보육교사 중 71.9%는 급식비리가 의심되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 교구, 교재업체와 결탁해 영수증을 부풀리거나 뒷돈을 챙기는 리베이트도 상당하다. 원장 소유의 교재, 교구를 인터넷 판매 사이트에 올려놓고, 다시 자신이 사들이기도 한다. 어린이집 운영비로 가전이나 가구를 산 뒤, 집에 있던 중고 물품과 바꿔치기하는 얌체족도 있다.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어린이집 원장은 지역 토착세력이 됐다. 모니터링단이 지적을 해도 구청이 직접 처벌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정부가 지원금의 쓰임에 대해 규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원장의 정보 독점이다. 회계 입력도 원장이 직접 하고 있고, 공문도 원장만 볼 수 있다. 견제 세력이 없어 일상적인 회계 부풀리기가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대법원이 어린이집 지원금 유용을 용인한 탓이 크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 대법원은 어린이집 보육료를 부정 수급한 제주 어린이집 원장에게 지자체가 반환을 명령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제주 다문화가정 자녀가 해외에 체류한 한 달 동안, 어린이집이 정부 지원금이 포함된 보육료를 부정 수령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호자의 바우처(아이사랑카드)로 결제한 보육료는 어린이집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며 제주시의 공공 어린이집 평가인증 취소 같은 행정조치 또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이끈 어린이집 측 변호사는, 어린이집연합회 주최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보육 관련 소송을 맡아온 인물이다. 해당 판결 이후, 어린이집 보육료를 유용한 원장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랐다. 최근에는 남편을 운전기사로 허위 등록해 급여를 주고, 보육료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 어린이집 원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국회에 발의된 여러 규제 법안들을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가 로비와 압력을 동원해 번번이 저지해 온 것도 한 몫을 했다. 2013년 새누리당 의원 13명은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어린이집 보조금 부당수령, 유용 등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영유아보육에 종사하는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어총의 집단적 항의와 압력, 낙선운동 경고 등이 이어지면서 법안은 보름 만에 철회됐다. 그동안 노동계와 시민사회 등은 원장이 어린이집을 사유화, 독점화 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가 시설 비리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후에는 보육의 공공성과 민주적 통제 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거론되기도 했다. 지자체가 공단을 통해 국공립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공단이 보육교직원들을 직접 고용, 배치하고 운영하며 현재의 민간중심 공급체계를 공적구조로 개편한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등의 반대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사회복지공단에서 보육을 제외할 것을 요구하며, 육아종합지원센터 같은 기존의 전달체계를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지난 8월 한어총 국공립분과위원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김영명 한어총 사회서비스원 설립 관련 특별위원회 위원은 “현 민간위탁제도 안에서의 공공위탁은 동의하지만 여타 사회서비스 분야와 함께 관리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며 “한국보육진흥원과 17개 광역시도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위상을 강화해 국공립 어린이집의 위탁 운영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커스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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