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의 ‘사유재산 보장’은 ‘세금횡령 보장’

[어린이집 기획연재①] 원장은 연1회 결산보고, 지도 감독은 지자체 자율

[편집자주]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로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정부도 사립유치원의 비리 척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는데요. 이 사태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치원보다 약 2천 억 원의 국고지원금이 더 많이 투입되는 보육시설,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지금까지 국고지원금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마냥 어떤 제약 없이 유용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유치원 원장들이 ‘국고지원금은 보호자를 거쳐 들어오니 원장의 사유재산’이라며 밀고 있는 판례도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 작품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어린이집 원장들이 그간 정부에 지금보다 더 느슨한 회계규정을 요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라는 ‘사유재산’에 목숨 거는 원장들, 이들을 비호하는 교수와 변호사, 국회의원들. 이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보육의 공공성’이 아닐까요.

지난 29일, 보육지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을 운영 중인 공공운수노조는 ‘보육의 공공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철옹성 같이 굳건했던 ‘민간 중심의 보육’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참세상>은 오승은(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워커스> 편집위원의 ‘어린이집 기획연재’를 4회 연속 게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어린이집 원장의 ‘사유재산 보장’은 ‘세금횡령 보장’
② 어린이집 원장 ‘부동산 기회비용’까지 보상하라고?
③ 어린이집 원장단체의 스피커가 된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④ 사회서비스원이 ‘블랙홀’이 될 거라며 막아낸 어린이집 원장단체


지난 25일 정부가 공립유치원에 사용되는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 ‘에듀파인’을 사립유치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로 나라가 들썩인 지 2주 만이다.

사립유치원 원장단체들은 경악했고, 민간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숨죽이고 있다. 연 4조 원 규모의 누리과정 국고지원금은 유치원보다 어린이집에 약 2천억 원이 더 들어간다(`18년 예산 기준). 어린이집은 영아(0~2세) 대상 지원금과 각종 추가 보조금도 받는다. 복지부는 일단 연내 표적감사와 내년 전수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어린이집에도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의 확대를 검토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국공립어린이집에도 없다. 어린이집에는 국가가 회계를 관리하는 체계 자체가 없다.

어린이집은 국공립도 97%가 민간 운영.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 없음

같은 공립이지만 공립유치원과 국공립어린이집은 운영구조가 천지차이다. 최근 공개된 ‘비리 유치원’ 명단들에 공립이 거의 없는 것은 시도교육청이 직접 운영‧관리를 하고 있어서다. 교육부 지정 회계프로그램인 에듀파인을 통해 교육청은 각 공립유치원의 수입, 지출, 영수증을 볼 수 있다. 실질적 회계사무자인 원장과 교사도 교육청이 직접 임용하는 교육청 소속이다. 국가가 총책임자가 되는 구조다.

반면 국공립어린이집은 97%가 민간 운영이다. 지자체들이 설립‧소유만 하고 운영은 민간에 우르르 위탁한 결과다. 당연히 회계사무도 함께 위탁된다. 전국 4만 여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애초 국공립이 8%뿐이니, 이를 다시 국공립-공영으로 좁히면 0.2%(80여개). 통합적 관리의 필요가 없으니,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유치원과는 비리근절 대책의 출발점부터가 다른 배경이다.

회계는 원장이 관리, 지자체엔 연1회 결산 보고만

“어린이집 회계는 지자체 지도‧점검을 받고 포털에 정보공시도 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비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원장단체들이 꼭 외치는 말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어린이집 회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다. 모든 어린이집 회계는 원장이 관리한다. 보육료 등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관해서는 원장이 지자체에 연1회 결산만 보고한다. 그 내용은 ‘아이사랑 보육포털’에도 공개되는데, 1년 치 결산만으로 구체적 사용처는 알 수 없다.

  정보공시 된 서울시 모 어린이집의 2017년 세출결산서 중 일부. 이것만으로는 구체적 사용처는 알 수 없다.

영수증 등 증빙서류는 어린이집에 두게 돼있다. 원장이 결산만 맞추고 증빙서류에 ‘명품백’ 영수증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지자체 지도‧감독에 적발되어도 보통 시정(반환) 조치와 경고만 받는다. 수백만 원 영수증이 누락돼도 ‘증빙서류 보존 소홀’로 처리된다.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을 따로 만들어달라는 속내는?

이처럼 국가가 운영‧사업비 대부분을 대면서도 직접 관리는커녕 결산보고만 받는 어린이집 회계. 이미 문제가 크다. 그런데 민간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지금의 회계작성 규정마저 마음에 안 든다며 수년째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민간어린이집을 포함한 모든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을 적용받고 있는데, 이것 말고 ‘민간어린이집 재무회계규칙’을 따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이들이 원하는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의 핵심은 설립자(대표자)가 어린이집에서 아무 일도 안 하더라도 수익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원장단체들이 이렇게 설립자를 챙기는 것은 설립자 대부분이 원장 본인 또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영유아보육법도 설립자와 운영자(원장)를 구별하고 있지 않다.

“원장 월급은 성에 안 차, 설립자 몫의 ‘뒷돈’도 합법화하라”

2013년에는 ‘민간어린이집 재무회계규칙’을 신설한다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양승조 대표발의)이 발의됐다. 관련하여 두 번의 국회토론회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어린이집 설립‧운영자가 사유재산을 출연하고도 “한 푼의 영리”도 추구 못 하는 건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헌신과 봉사”에 대한 억울함도 토로됐다.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하는 어린이집에서 한 푼의 영리라도 추구하면 나쁜 어린이집이라 보는데 자기가 투자한 돈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받는 건 적정한 이윤이라 볼 수 있다”

- 백태영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14.6.27. ‘민간어린이집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 발제)

그런데 민간어린이집은 사회복지법인으로 자발적으로 설립됐다. 그리고 영리법인이 아닌 사회복지법인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보육료, 시설 기능보강, 근무환경개선 수당, 보조‧대체교사 지원 등 각종 운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팅은 보육이 시장에 맡겨져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가정어린이집에 국고로 들어가는 보육료 수입만 월 7~10백만 원 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법인 회계규칙은 싫지만 영리법인용도 아닌 별도 회계규칙을 만들어달라’는 것은 지금처럼 국고지원은 계속 받으면서 영리사업도 하고 싶다는 심보다.

비영리법인이라고 원장의 “헌신과 봉사”가 무일푼인 것도 아니다. 원장은 운영자 급여를 받고 있다. 어린이집 결산 후 수익이 남으면 원장 등 직원의 급여 인상분이나 수당으로 편성‧지출하라는 게 복지부 지침이기도 하다. 즉 원장이 운영을 잘한 보상을 받고자 한다면 인건비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다만 원장, 교사, 조리사 등 어린이집 직원으로 등록되어 일하지 않는 사람이 금전을 받을 방법은 없다. 아무리 설립자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지금껏 뒷돈을 챙기려는 원장들은 영수증 조작, 허위직원 등록 등 제법 수고와 적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설립자의 몫으로 따로 돈을 인출해갈 수 있게 회계규칙이 변경된다면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원장단체들이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 신설의 이점으로 ‘회계 위법성 시비 해소’, ‘과잉규제와 과잉처벌의 해소’를 들고 있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원장단체들은 설립자와 운영자의 ‘분신술’까지 쓰면서 그간의 ‘뒷돈 챙기기’ 관행을 합법화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리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어린이집에서 돈을 남기려는 욕구는 보육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원장들의 ‘뒷돈 욕심’이 통제되지 않은 결과 지금 아이들의 식단이 어떻게 되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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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회계프로그램사직원

    저는 민간회계프로그램사에서 근무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기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면 관련 23게사 300여명의 종사자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회계프로그램이 문제라는건지? 그 사용자가 문제라는 건지? 음주운전사고내면 운전자의 잘못인지? 아니면 음주운전에 쓰인 자동차가 잘못인지? 너무나 단순한 논리로 지금의 현상을 보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마침 지금 사립유치원 원장단체들도 국가회계체계 확대를 막아내는 데 바로 그 명분에 가장 기대고 있습니다. 민간개발업체에 영향이 있을 거라면서요. 이런 식이라면 사립 대신 공립어린이집/유치원/학교 비중을 늘리고 공영화하는 모든 정책에 똑같이 반대할 수 있겠습니다. 원칙부터 분명히 세운 후, 민간개발업체들도 보육공공성 강화에 기여할 방법이 있는지 적극 논의된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어린이집이 개인사업체들로 각기 경쟁하며 운영되는 거라면 민간 회계프로그램 중 무얼 쓰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사업지침을 내리고 국고지원을 하며 사회복지에도 중차대한 사업영역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개별로 결산보고만 되고 통합적 관리가 안 된다면, 음주운전자에 비유하신 그 비리 원장들은 계속 나타날 겁니다.

  • 민간회계프로그램사직원

    2013년에 보가부에서 어린이집회계의 투명성을 확대하기위해 회계보고방식을 목총액에서 현금출납부로 방식으로 바꾼다고해서 민간회계프로그램사를 불러 프로그램변경을 요구했고 그에 맞춰 민간회계프로그램사는 개발비를 들여 모두 프로그램을 변경한적이 있습니다.그런데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정책을 철회됐고 지금까지 회계보고가 총액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간회사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맞게 움직여 왔고 지금에 이르르게 된겁니다. SW사업영향평가란제도를 아시는지요? 문재인정부들어 국가등이 민간영역침해를 막고자 도입한 제도입니다. 이제 그제도도 필요없다는듯 말하는언론도 있습니다. 국세청은 왜 회계프그램을직접 만들지 않고 보고만 받을까요? 회계의 투명성을 프로그램으로 담보되는게 아닙니다. 운영자의 의식과 감독부서의 꾸준한 교육과 감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