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단체의 스피커가 된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어린이집 기획연재③] 민간 목소리 키운 건 국가, 국공립 확충‧공영화만이 해답

[편집자주]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로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정부도 사립유치원의 비리 척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는데요. 이 사태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치원보다 약 2천 억 원의 국고지원금이 더 많이 투입되는 보육시설,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지금까지 국고지원금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마냥 어떤 제약 없이 유용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유치원 원장들이 ‘국고지원금은 보호자를 거쳐 들어오니 원장의 사유재산’이라며 밀고 있는 판례도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 작품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어린이집 원장들이 그간 정부에 지금보다 더 느슨한 회계규정을 요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라는 ‘사유재산’에 목숨 거는 원장들, 이들을 비호하는 교수와 변호사, 국회의원들. 이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보육의 공공성’이 아닐까요.

지난 29일, 보육지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을 운영 중인 공공운수노조는 ‘보육의 공공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철옹성 같이 굳건했던 ‘민간 중심의 보육’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참세상>은 오승은(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워커스> 편집위원의 ‘어린이집 기획연재’를 4회 연속 게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어린이집 원장의 ‘사유재산 보장’은 ‘세금횡령 보장’
② 어린이집 원장 ‘부동산 기회비용’까지 보상하라고?
③ 어린이집 원장단체의 스피커가 된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④ 사회서비스원이 ‘블랙홀’이 될 거라며 막아낸 어린이집 원장단체


그동안 국고로 영리사업과 부동산 기회비용을 보상하라는 요구는 당연한 비난과 질책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원장단체들의 요구는 국회에서는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라는 제목을 달았고, 법안에는 “보육의 공공성에 부합하는 회계의 건전성 및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를 새겼다.

교수, 변호사들이 열심히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일부 변호사는 보육료 개인사용, 직원 허위등록 등이 적발되어 행정처분을 받은 어린이집 원장들에 대해 무죄변론을 넘어 원장단체의 스피커 역할까지 맡았다. 횡령죄 무죄판결의 근거가 된 보육료(지원금) 지급의 법적 허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최근 ‘비리 유치원’을 향한 공분까지 비판한 민변 소속 변호사도 있다.

“민간어린이집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국공립과 똑같은 회계처리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민간어린이집으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회계처리의 파행성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공하는 것”

- 김명근 경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13.3.18.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기자본이 투자된 민간에게 이익창출도 인정하지 않고 손실이 발생해도 보전해주지 않으면서 투명회계만 부르짖는 건 어불성설”

- 이서영 한경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14.6.27. ‘민간어린이집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

“‘학부모 분담금’ 및 누리과정 예산과 같은 ‘정부 지원금’의 경우에는 정부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유아교육법상 유치원 목적 내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없고 ... 학부모 분담금 및 정부지원금은 사립유치원 경영자에게 귀속되는 수입이므로 사립유치원 경영자의 사유재산권에 속하고, 이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오빛나라 변호사([오빛나라의 LAW칼럼]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와 유치원 회계’, `18.10.17. 베이비타임즈)

원장단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국회활동들도 돌아봐야 한다. 2013년 민간어린이집 부동산 “기회비용의 지급 인정”을 명시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관련하여 원장단체가 후원한 국회토론회들을 주최한 데는 양승조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현 충남지사, 더불어민주당)과 이명수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자유한국당)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마침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최근 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국회 보건복지위에 불법로비를 한 시기와도 겹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건 국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박용진 같은 국회의원이 없었기 때문만도, 감시가 소홀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국가가 민간어린이집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한 줌의 국공립어린이집으로도 최소한의 기준 역할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간 설립‧운영자가 큰 목소리를 내고 ‘보육 공공성’ 명분까지 주도하는 판을 만들었다.

혹시 사명감 없이 ‘돈밖에 모르는 아줌마들’이 원장이 된 게 문제라고 생각하시는가? 지금까지 국가는 이들에게 돈, 권한, 책무를 맡기기만 했지 좋은 원장으로 키워내지 않았다. 교육도, 지도도, 통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보육교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격증을 대거 발부해놓고는 숙련과 자긍심을 키울 노동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경력이 쌓일라치면 원장은 인건비가 아깝다며 불법 해고를 한다. 정부는 인건비 더 아끼시라고 보육교사 배치기준을 풀어줬다. 원장단체들은 여기에 “숨통이 트인다”고 화답했다.

보호자들에게도 무상보육이라며 보육료만 쥐어준 채 제대로 된 공보육의 목표와 환경은 보여주지 않았다. 많은 보호자들이 보육교사를 ‘잠깐 애나 보는 사람들’, ‘잠재적 아동학대범들’로 보게 만들었다.

민간 목소리 줄이려면, 공공 주도권을 확보해야

정치인들은 지금도 폐원 협박, 지지철회 협박 앞에 흔들린다. 나랏돈으로 안정적인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하라고, 부동산 기회비용까지 보상하라고 수년간 요구해온 원장단체들이다. 이들은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보육료 수입 전부가 사유재산임을 인정하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비리 어린이집’ 명단이 공개되면 일부 잘못을 시인하는 척하며 다시금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을 입에 올릴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는 ‘국가책임 무상보육’의 사회적 합의부터 재확인해야 한다. 어린이집 영리화 금지 원칙을 재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늘리고, 국가가 직접 운영‧관리해야 한다. 그 안에서 표준운영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원장과 교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민주적인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보육 공공성’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국가가 총책임자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정부에 그럴 의지가 있는가?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하고 사회서비스원(공단)을 통해 국공립-공영화하겠다던 공약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왜 국공립어린이집은 사회서비스원 사업계획에서 자취를 감추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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