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노동자당은 왜 패배했는가

[번역] 브라질의 황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브라질 선거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 원인을 찾아본다.

브라질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라는 파시스트가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 새 의회에선 ‘황소(Boi)’와 ‘성경(Biblia)’, ‘총알(Bala)’ 이 세 종류의 ‘B’가 전권을 쥐게 됐다. 300석이 약간 넘는 의석으로 이 세 로비그룹 - 농기업과 복음주의 기독교, 군경 및 무기산업은 분명한 다수에 진입했다. 국토와 2억 명이 넘는 인구, 경제적 지위로 인해, 브라질에서의 권력이동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7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가 “브라질이 가는 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나라가 어떤 길을 갈지, 공식적으로라도 민주주의의 구조는 유지할 것인지 또는 새 정치제도가 권위적이고 심지어는 전체주의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대부분의 전망과 분석, 선거 예측에서 예상되지 않았다. 예비역 장교이자 1964-1985년 군사독재 시절을 찬양하는 보우소나루가 파쇼적인 선동으로 이미 대선 1차 선거에서 46% 이상을 득표해 대통령궁을 거의 정복했다. 우익 부르주아 보수 정당들은 동반 몰락했으며 페르난두 아다드 노동자당(PT) 대선 후보의 득표율은 29%에 불과했다.

  노동자당(PT) 대선 후보 유세 장면 [출처: Brasil de Fato]

모순적인 조건들

그러나 이런 결과가 정말 놀라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좌파의 특히 노동자당의 쇠퇴는 늦어도 2013년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해 6, 7월 주로 청년들로 이뤄진 수백만 명의 시위에 (우선 교통비 인상과 교육 및 보건 예산 부족을 문제로, 그런 뒤에는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에 대한 수억 달러 규모의 공공 예산 지출과 파벨라* 주민들에 대한 강제퇴거를 문제로) 노동자당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4년 10월 지우마 호세프 노동자당 후보는 대선에서 간신히 승리했고, 2016년 8월에는 법적 및 정치적으로 완전히 적합하지 않은 근거로 면직됐으며, 같은 해 노동자당은 지역선거에서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2017년 호세프의 전임자 룰라는 대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조사됐지만 법치국가의 기준에 따르면 전혀 타당하지 않은 절차에 따라 구속됐으며 부패 혐의로 12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

우파는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사이 사회, 정치적인 권력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대한 하위 계급에는 불리하게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도 짧은 시간 동안 바뀔 수 있었을까? 원칙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좌파 성향이라고 해도 정부의 행동반경은 항상 미국의 적대적인 대외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정부에 이로울 것이 없는 각 국 지배 계급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좌파 정부 원래의) 의제나 경제, 정치적 기득권층과의 예고된 갈등이 그들의 특권을 적어도 불확실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03년에서 2013/14년까지 세계 경기가 꽤 원활하고 내수 시장이 역동적으로 성장했을 동안 브라질 좌파정부는 기아제로 사업, 최저임금 인상, 아프로-브라질인 등 지금까지 차별받던 사회 계층과 생활권에 대한 교육 조건 개선 등 중요한 사회개혁을 이행할 수 있었다. 이 나라 은행과 대부분의 기업도 노동자당 집권 기간 뚜렷하게 좋은 수익을 냈다. 그러나 대외 경제 의존도를 노동자당은 이 기간 상당한 내수시장에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훨씬 가중시켰다.

기존의 정치 문화는 계속됐다. 후견주의, 부패스캔들과 인물 중심의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이 브라질에, 다른 라틴아메리카에서와 마찬가지로 널리 퍼져있었다. (사회적으로는) ‘마치즈모(남성우월주의)’와 인종주의가 계속됐다. 특히 이는 이를테면, 우르과이나 코스타리카 보다 심각한데, 뿌리 깊은 불평등 경험과 이의 수용과 관련돼 있다. 브라질은 1888년 남미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공식 폐지했다. 룰라 임기 첫해에도 농촌과 낙후 지역에서는 사실상의 노예에 관한 뉴스가 빈번했다.

우익이 독점한 언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요인이 역할을 할 때면 언제라도 급성이 돼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언론이 그렇다. 언론은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약 90%가 사기업 손에 있다. 언론은 흔히 거대 기업이나 기업연합이 광고나 정치적 입장을 위해 이용하는 ‘장식’(또는 일종의 ‘언론부서’)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대중정당이 없는 나라에서, 특히 좌파가 발전하는 단계에 흔히 언론은 ‘대체정당’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좌파정부가 이끄는 많은 나라에선 길고 격렬한 토론 뒤 언론개혁이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상업언론의 전능이 다소 제한됐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 그랬다.) (이를테면, 협동조합, 회원이나 노조 등) 대중적인 회원 조직들이 없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무엇보다 어디에나 있는 상업언론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전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운동의 확산에 이은 - 좌파 정당들의 선거승리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4년이 조금 못되는 노동자당 집권 기간(2003-2016년) 당내 좌파는 다양한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고도로 집중된 언론 부문을 적어도 단초는 바꿀 수 있었을텐데도 법 개정도, 군사독재 시절을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그리고 칠레나 우르과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메랑은 여러 방식으로 돌아왔다. 언론들은 늦어도 2013년부터 노동자당에 증오 선동을 펴왔으며 호세프 축출을 요구하고 궁극적으로 룰라의 유죄 판결과 구속을 촉구했다. 경제 위기부터 고실업률과 정부 부패, 정치 제도의 무능과 일상적인 폭력 및 범죄율 증가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을 노동자당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최근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 다른 사회 세력들이 근본적으로 이 나라 현재 문제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주류언론이 보우소나루를 직접 지지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선 1차 선거에서 비참하게 패배한 신자유주의 보수 브라질사회민주당(PSDB)과 브라질민주운동당(MDB)의 후보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하는 사회 양극화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슬그머니 진행된 쿠데타’**를 호의적으로 안내했다(중략).

복음주의 기독교의 영향

우익 집단과 정당 간 그리고 최근 브라질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온 사법부와 경찰 및 군부와 대토지 소유주 그리고 보수적인 여론을 심화시켜온 복음주의 집단의 강력한 로비스트 사이의 현 동맹은 지난 5년 간 사회, 정치적인 권력 균형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복음주의 집단은 수십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브라질 현 인구의 최소 3분의 1이 이 종교기관에 속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빈번하게도 한부모나 아동, 환자 등과 관련된 사회 기관은 이 복음주의 집단의 ‘성전’과 관련돼 있다. 노동자당도 가톨릭교회도 파벨라 지역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빈민가 여성이나 거대한 규모의 불안정 노동자, 교육 소외계층에 가정 규율이나 금주, 개인적인 노력을 고려한 교리는 호소력이 있었다. 복음주의 교회 대부분이 보우소나루에게 표를 주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그는 이 종교권역에서 하위 계층의 주요 표를 얻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새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가장 강력한 복음주의 단체인 ‘하나님의 나라 세계교회(The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의 티비나 라디오방송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단체는 수많은 ‘사원’과 부동산, 토지뿐 아니라 브라질에서 가장 큰 티비 과점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 이 교회 설립자이자 영도자인 에디르 마케도는 보우소나루를 후원하고 비호했다. 이 때문에 보우소나루는 이밖에 이른바 사회 네트워크에만 의존했지만 후보 방송토론과 기자회견에 참가하지 않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최악의 우익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는지 알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더 있다. 세대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듯, 생물학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회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비슷한 경험과 사회화 조건들을 참조하도록 지시하는 사회적인 범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는 계급과 환경에 따라 특징 지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아주 일반적으로만 시대의 전형적인 경험과 이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특정 연령집단의 행동 지향이 말해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치 또는 사회문화적 담론을 채택하는 데 각 연령 집단의 상이한 의향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유권자와 청년 유권자들은 신자유주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에게 페론주의 다니엘 시올리 후보 보다 훨씬 많은 표를 던졌고 이는 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했다.

군부독재 미화

적어도 브라질에서는 보우소나루가 근본적인 반체제 수사로 -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호모포비아에도 불구하고 - 특히 젊은 유권자층에게서 인기를 끌을 수 있었다는 실마리들이 있다. 보우소나루의 사회자유당(PSL)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평균연령은 45세로 의회의 그것보다 낮다. 20-40세 사이의 이 정치 세대는 1964-1985년 사이 군부독재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기간의 소위 ‘긍정적인’ 면(안정, 안보, 평화와 질서, 장기간에 걸친 높은 경제성장률, 다수의 인프라 건설, 대외 영향력 증대 등)이 다시 추구돼야 할 목표라고 불린다. 독재의 부정적인 면(인권 침해, 희생자, 고문, 독재, 극단적인 불평등 증가, 교회 성원과 노동조합 박해와 선주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 등)은 배제되거나 잊혀졌으며 오히려 모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더구나 구세대 다수가 군부독재 시절을 오로지 또는 대게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군대, 경찰과 관청에서의) 이 시절 사적인 경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독재정권의 범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추궁되거나 기소된 적도 없다. (독재가 끝난 뒤) 새 공화국 정치제도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군부독재의 이미지가 더 좋아지고 ‘인구의 실질적인 한층’에는 ‘바람직한 상태’로 여겨지게 됐다고 우르과이 언론인 라울 치베치가 기록한 바 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에서나 외국에서나 호세프 탄핵 기명 투표 때 자신의 찬성표를 독재 시절 이 대통령을 고문했던 악명 높은 한 대령에게 바친다고 천명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 브라질 대법원장 호세 안토니오 디아스 토폴리는 이제는 ‘군사독재’가 아니라 ‘1964년의 운동’에 대해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노동자당의 잘못

단기적으로, 선거결과는 다음과 같은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

우선, 2013/14년 시작된 그리고 올해에야 극복된 것처럼 보이는, 심각한 경기 침체에 따라 불평등, 실업, 빈곤율과 비공식 고용이 심화됐다. 호세프의 후임, 테메르 정부는 이미 낮은 사회보장 예산을 더 삭감했다.

둘째, 브라질, 아마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이 지역의 많은 정부들이 연루된)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사건인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 작전’은 2014년 노동자당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Odebrecht)와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가 결합된, 수십억 규모 스캔들의 전체 범위는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았다.

셋째, 정치 제도와 정당의 문제가 탄핵과정에서 다시 한 번 더 명확해졌다. 하원 및 상원의원과 고위 관리 200-300명이 일순간 형사재판을 받고 있거나 선고를 받았다. 어느 정당에서든, 정책 기조와 유권자의 이해는 모든 종류의 금전 수입, 매관매직과 권력남용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많은 의원들이 이미 십여 번 자기 ‘정당들’을 옮겨갔거나 새로 설립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약 10%만이 이 정당들을 신뢰하고 있다고 하는데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반면, 군대나 교회는 50-60%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넷째, 거리나 파벨라에서 일상 범죄가 극적으로 늘어나고, 은행 강도나 절도가 증가하면서 공권력이 군사화 돼 갔다. 얼마 전 리우데자네이로에서는 군청이 민간정부를 해산했다. 폭력의 원인은 빈곤 증가, 마약카르텔의 영향력 확대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전 각 지역 빈민가에서 실시된 강제퇴거와 철거 때문이다. 예산 낭비와 부패, 메가이벤트는 부유층에게는 이익이 됐지만 중산층까지 이르는 보다 가난한 계층에는 노골적인 무시로 여겨졌고 이러한 명백한 차이로 사람들은 노동자당이 내세웠던 ‘빵과 즐거움’이란 정책에 환멸을 느꼈다. 축구와 다른 거대 스포츠 행사에 대한 관심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적어도 파벨라와 빈민가 하위계층은 보우소나루의 안전에 관한 레토릭을 이미 거짓으로 입증된 노동자당의 약속 보다 더 신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폭력범죄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당은 집권 기간 시대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고 과거 자기 기층을 잃어버렸다. 노동자당은 정부와 해당 지위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이 나라 정치 문화(부패, 후견주의 등)의 지배 질서에 적응하면서 자기비판을 위한 힘을 잃어버렸고 그러면서 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도 불가능해졌다. 노동자당은 ‘계급 화해’라는 비현실적인 정책과 수출지향주의, 사립교육제도 지원 등을 실시했고 애초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겠다고 약속한 공약과는 계속 멀어지면서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뿐만 아니라 호세프 시기 마지막 단계에는 신자유주의적인 긴축정책과 내수 진작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지지자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그래서 임의적이며 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은 탄핵에 맞선 시위는 기층운동과 분리된 채 나약하게 진행됐다. 이는 룰라가 감옥에 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당은 이제 기득권이자 부패로 정의된다. 이러한 노동자당에 대한 거부는 부분적으로 실망과 실현되지 않은 기대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실제 기득권층의 책임보다 훨씬 중대하며 비난 받을 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기득권층은 보우소나루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볼 것이다. 노동자당에 대한 거부는 변화를 바라는 주요 유권자층에 보우소나루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컸던 것 같다.


[각주]
* Favel, 브라질 대도시 주변의 거대 빈민가
**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을 의미
[원문] https://www.jungewelt.de/artikel/342681.faschist-im-amt-d%C3%A4mmerung-in-brasilien.html
[원제] Dämmerung in Brasilien
[필자] 디터 보리스(Dieter Boris)는 사회학자로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하고 있다. 2008년까지 마부르크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
[원문 발행일] 2018년 10월 31일
[번역] 정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