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단체의 남다른 사회서비스원 반대

[어린이집 기획연재④] ‘사회서비스원’이 ‘블랙홀’이 될거라고?

[편집자주]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로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정부도 사립유치원의 비리 척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는데요. 이 사태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치원보다 약 2천 억 원의 국고지원금이 더 많이 투입되는 보육시설,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지금까지 국고지원금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마냥 어떤 제약 없이 유용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유치원 원장들이 ‘국고지원금은 보호자를 거쳐 들어오니 원장의 사유재산’이라며 밀고 있는 판례도 바로 어린이집 원장들 작품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어린이집 원장들이 그간 정부에 지금보다 더 느슨한 회계규정을 요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이라는 ‘사유재산’에 목숨 거는 원장들, 이들을 비호하는 교수와 변호사, 국회의원들. 이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보육의 공공성’이 아닐까요.

지난 29일, 보육지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을 운영 중인 공공운수노조는 ‘보육의 공공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철옹성 같이 굳건했던 ‘민간 중심의 보육’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참세상>은 오승은(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워커스> 편집위원의 ‘어린이집 기획연재’를 4회 연속 게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어린이집 원장의 ‘사유재산 보장’은 ‘세금횡령 보장’
② 어린이집 원장 ‘부동산 기회비용’까지 보상하라고?
③ 어린이집 원장단체의 스피커가 된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④ 사회서비스원이 ‘블랙홀’이 될 거라며 막아낸 어린이집 원장단체


사회서비스원 공약, 어린이집 원장단체 눈치 보며 뒷걸음질

국공립 어린이집‧요양원 등을 운영‧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지자체별 사회서비스원(공단)을 짓는다는 국정과제가 발표된 게 작년 7월.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요양원의 거의 100%가 민간위탁 운영이니, 사회서비스원 공약은 곧 민간위탁을 없앤다는 공약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복지부가 내놓은 첫 종합계획에는 ‘우수한 민간위탁’은 그대로 둔다는 문구가 담겼다. 지자체가 지은 기존 공립요양원이 약 90개, 국공립어린이집은 3천 개가 넘는다. 결국 보육을 염두에 둔 단서였다. 그로부터 1년이 더 흘러 지난 9월에 공개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계획에는 보육 사업이 아예 빠져 있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앞서(1편) 지적했듯 시도교육청이 운영‧관리하는 공립유치원과 달리, 국공립어린이집은 97%가 민간위탁으로 운영 중이다. 전문성 핑계를 대곤 있으나 교육계에는 민간 전문가가 없어 국가가 떠맡았겠는가?

민간 원장에게 일단 운영을 위탁하면,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게 된다. 운영실태에 개입은커녕 파악조차 힘들다. 가끔 표본조사를 하고 무언가 적발되면 시정과 경고 조치로 마무리한다. 평가인증 취소나 위탁 해지 조치라도 하면 행정소송이 들어올 게 걱정이다. 원장에게 유리한 판례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그 결과 현재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원장들은 ‘재위탁률 99%’를 기록 중이다.

지자체가 움츠리는 동안, 위탁원장들은 뭉치고 강해졌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도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원장 단위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사회서비스원 보육 사업 저지에 앞장선 것도 이 위탁원장단체들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은 계속 민간위탁 하라’는 원장단체

지난 3월 복지부 주재로 ‘사회서비스포럼’이 시작됐다. 공급자, 노동자, 공무원, 전문가가 모여 복지부의 사회서비스원 계획을 함께 검토하고 토론한다는 취지였다. 민주노총에도 참석을 요청해 필자를 포함한 정책 담당자 2명과 보육교사‧요양보호사 조합원 2명이 참석하게 됐다.

민간요양기관 측에선 사회서비스원 산하 공립기관들과의 경쟁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에 민간기관의 지난 기여와 경영난을 강조하며, 정부의 시설 매입(공립 전환) 절차나 이용자 쏠림 방지대책을 촉구했다. 정부의 의지와 세부계획이 관건일 쟁점이다.

문제는 어린이집 원장단체였다. 한어총은 사회서비스원의 보육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이미 특별위원회를 꾸렸고, 한어총 출신인 최도자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의 주최로 ‘저지’ 국회토론회까지 치른 상태였다. 이들의 사회서비스원 반대 입장은 확고했다.

원칙상 사회서비스원이 위탁원장들에게 불리한 정책은 아니다. 사회서비스원이 국공립어린이집을 이관한다고 해서 기존 원장이 쫓겨나는 것은 아니고, 원장과 교사 모두 사회서비스원 직원으로 신분만 바꿔 똑같이 일하면 된다. 재무, 회계, 인사, 민원 등 책무를 사회서비스원 본부가 담당해가니 보육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구조기도 하다.

그러나 포럼 내내 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아이들 때문에’, ‘세금낭비라서’ 사회서비스원은 안 된다고 했다. 보육이 경직될 것이라고도, 복지부가 지방자치를 흔들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말 저런 말의 요는 ‘국공립어린이집을 공영화할 생각 말고 지금처럼 민간위탁 하라’는 것이었다.

‘보육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보육 관계자만 따로 모인 ‘보육소포럼’으로 옮겨가자 원장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한어총이 지역별 육아종합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대학도 국공립어린이집을 위탁 운영하는 마당에 보육 관계자를 한어총, 육아종합지원센터, 대학교수로 나눠봐야 입장은 다 같았다. 모두 간판만 다른 원장단체인 셈이다.

한 보육학과 교수는 보육을 ‘일자리 문제’로 접근하는 것부터가 틀렸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회서비스원 설립이 정부의 복지 공약인 동시에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 창출’ 공약인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한 육아종합지원센터장(한어총 소속)은 보육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딱 잘랐다. 이 포럼 자체가 보육 정책의 후퇴라고 했다. 다른 한어총 참석자는 노조의 포럼 참석 자격을 문제 삼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조 입장에서 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조직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서도 위반 사실을 인지 못한다는 게 특징인 사용자단체다. 국공립어린이집도 근기법 위반이 심각하다는 노조 주장에 원장단체들은 극히 일부 사례이거나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어린이집의 연차휴가 대체 강요나 휴게시간 임금체불 관행은 이미 언론이 수차례 다루었다. 최근엔 CCTV를 악용한 부당징계, 해고 사례도 기사화되고 있다. 원장단체에서 이런 불법 행태들은 ‘보육의 특수성’으로 통한다.

‘블랙홀’, 원장단체도 아는 사회서비스원의 잠재력

원장단체들의 사회서비스원 반대 이유로 ‘블랙홀’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회서비스원이 그 바깥 어린이집들에 블랙홀이 될 거라는 우려였다. 어떤 블랙홀일까? 사회서비스원 정책에는 어린이집의 회계기준과 표준운영모델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돼 있다. 그 표준은 사회서비스원 내부만 아니라 민간 통제 기준에도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서비스원은 민간어린이집의 회계투명성, 서비스 질, 일자리 질도 함께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원장단체들의 ‘블랙홀’ 우려는 사회서비스원의 이 잠재력을 정확히 예측한 셈이다.

7월의 보육소포럼 마지막 날, 한어총 참석자가 곧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다고 했다. 8월 말 박 시장이 한어총 서울 간부들과 만나 사회서비스원 사업에서 보육을 빼기로 확답했다는 소식이 돌았고, 9월이 되자 보육이 빠진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계획이 발표됐다.

사회서비스원이 ‘공공 주도 보육’의 출발

사회서비스원으로 어린이집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다만 작게라도 국공립-공영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지금의 ‘민간 중심 보육’을 뒤집는 출발이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공공 운영 데이터를 토대로 국가가 보육의 기준을 세우고 보육 공공성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말하자면 어린이집의 노동기준은 더 이상 원장단체들의 노무관리 수법과 ‘교사 블랙리스트’에 맡겨져선 안 된다. 말하자면 서울시 보육 정책은 서울시장과 원장단체의 비공개 만남이 아니라,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업무보고와 서울시민들의 참여 속에 수립돼야 한다.

보육 공공성을 요구하는 노조, 시민단체, 연구자가 힘을 모아 사회서비스원 공약까지 왔다. 그러나 실행계획에 이르러 보육 사업은 축소되고 심지어는 사라질 위기다. 원장단체가 아닌 공공이 주도하는 보육, 충분히 가능하다. 사회서비스원으로 제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