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폭력, 유성 노동자들은 왜 분노를 이기지 못했나

[기고] 잔인한 ‘맥락’이 삭제된 유성기업 폭행 사건

지난 11월 22일 유성기업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 피해 당사자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 빠른 쾌유를 바라며 이후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언론은 유성기업노조가 이 사태를 기획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일 김00 이사가 아산공장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노조 및 조합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우연하게 김00 이사가 공장에 들어온 것을 목격한 조합원들이 분노해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다.

우리는 지난 8년 동안 사측의 폭력과 탄압 속에 살아왔다. 우리는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목 놓아 외쳤다. 그런데 정부도, 경찰도, 노동부도 노조파괴 사태로 인한 조합원들의 고통을 외면해왔다. 그러는 사이, 노조파괴로 동료까지 잃었다.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현장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맥락은 삭제한 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당일 사건만을 보도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 왜 노동자들이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했는지도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조합원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했을까

사실 이번 사건은 이미 예견 된 것이었다. 2011년, 회사가 주간연속2교대제 합의안을 전면 파기하면서 유성기업 노조파괴가 시작됐다. 때를 맞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에서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귀족 노조원들이 파업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내용의 창조컨설팅이 작성해 준 연설문을 읽었다. 이를 시작으로 청와대, 자동차 공업협회, 경총, 국정원, 노동부 본부, 노동지청, 경찰청 등이 하나가 돼 노조파괴에 열을 올렸다.

  2011년 시작된 회사와 공권력 등의 노조파괴 폭력 [출처: 미디어충청]

노조파괴의 배후에는 현대자동차가 있었다. 현대차 최0현 이사는 유성기업의 주간연속2교대제가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유성기업에 상주하며 노조파괴를 진두지휘했다. 직장을 폐쇄하고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업체인 창조컨설팅과 계약을 맺고, 500여명의 용역깡패를 수개월간 동원해 노조원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무면허 용역깡패가 운전한 자동차가 인도로 덮쳐 노조원 13명을 휩쓸고 다녀도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용역깡패에 의해 매일 20명, 30명의 조합원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도 경찰은 노조원 검거에만 혈안이었다. 항상 표적은 노조원을 향하고 있었다. 용역 폭력에 두개골이 깨지고 광대뼈가 함몰돼도 회사도, 국가도, 언론도 글 한줄 써주지 않았다.

단체협약을 어겨가며 34명을 해고하고, 수백 명을 출근정지 시켜 월급 없이 내쫒아도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리직 사원을 동원해 금속노조원만을 대상으로 관찰일지를 작성해 징계하고, 형사고소하고, 임금을 삭감해도 노동부를 포함해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산 공장장과 영동 공장장은 용역깡패와 창조컨설팅을 모셔와 노조파괴를 지시했던 사람들이었다. 공장 정문에서부터 작업현장까지 CCTV를 깔아 조합원을 감시하고, 심지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알몸 촬영을 해도 이들은 모두 무혐의였다.

가학적 노무관리와 함께, 사측은 자신들이 만든 어용노조원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회사는 어용노조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술 사 먹이고, 밥 사 먹이고, 노래방에 향응까지 제공했다. 그래도 이는 노동자들을 향한 고소, 고발 등 법률적 괴롭힘에 비하면 참 점잖았다. 그동안 회사는 금속노조원들을 대상으로 1300건이 넘는 고소, 고발을 남발했다. 심지어 한 노조원은 60건이 넘는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노조에서 쟁의행위를 하면 회사에서는 시비조, 몸빵조, 체증조를 동원해 시비를 유발했다. 그러다 시비가 붙으면 과도하게 넘어지는 행동을 취하며 이를 체증해 고소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사측의 고소, 고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수사가 착수됐고, 재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조원들이 버스를 대여해 재판에 참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각한 폭력을 가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각한 폭력을 가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관찰일지를 바탕으로 임금을 삭감했고, 임금삭감의 사유를 묻는 조합원에게 자리로 돌아가서 일하라는 말만을 되풀이 했다. 다시금 사유를 묻는 조합원들에게는 명령불복종의 경고장을 보냈고, 자신을 감금했다는 황당한 이유로 다시 고소하는 등 임금삭감과 고소, 고발이 일상화됐다. 조합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서로, 검찰로, 법원으로 불려 다니기 바빴다. 단체협약 해지통보를 받은 뒤 단 한 번의 교섭도 해보지 못했고, 매일 카메라를 든 수십 명의 관리직 사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과 회의실을 비우라며 노동조합에 들이닥쳤다. 급기야 회사는 소송까지 진행했고, 노동조합 사무실 지위보전 가처분이 받아들여졌음에도 해고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으며 매일같이 몸싸움을 벌였다. 노동조합에는 손님도 올 수 없었다. 최소 하루 전에 공문을 통해 방문자를 보고해야 하고 승인을 얻어야만 방문이 가능했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임원이 방문해도, 노동조합의 변호인들이 방문해도 출입을 막았고 소송을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된 재판이 수백 건이다.

8년간 이어진 회사의 폭력에 정신건강 악화,
회사는 산재 불승인 요구하며 소송까지


수년간의 노조파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악화돼 갔다. 이혼가정이 점점 늘어 갔고, 자살을 시도하는 조합원들도 늘어만 갔다. 급기야 징계와 고소, 고발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의 장례는 1년이 지나서야 치러졌고, 회사는 단 한마디 사과나 유감의 표현 없이 분향소 철거에만 열을 올렸다.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은 더욱 악화됐고, 급기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서는 유성기업에 대해 임시건강검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이마저도 걷어 차버렸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장과 담당조사관이 두 차례나 담당검사를 만나 회사를 처벌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검사는 노사 간 합의사항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사종결 명령을 내렸다. 금속노조원들 중 이미 정신건강과 관련해 산재 승인된 조합원이 8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이마저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지난 1명을 제외한 7명을 대상으로 산재승인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1심을 거쳐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 산재요청을 하면 신청할 때 마다 회사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불승인을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나서자 회사에서 떼거리로 몰려가 방해를 일삼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실태조사를 방해했다. 인권위원회는 모든 조사를 마쳤음에도, 사건을 진정한지 3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각한 폭력을 가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각한 폭력을 가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유일한 노동사건으로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현재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와 창조컨설팅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보류되고 말았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조사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읽었던 연설문을 창조컨설팅이 작성했다는 것과, 청와대 류0희라는 노동비서관이 창조컨설팅과 연결 되었다는 것, 그리고 검찰의 유성기업 봐주기 수사 등, 국가권력과 연계한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2012년 유성기업 압수수색을 통해 현대차가 어용노조 설립과 조합원 확보에 이르기까지 노조파괴의 핵심 배후였지만, 검찰이 이를 알고도 덮었다는 내용 등도 드러났다. 개혁위는 노조파괴 다발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라’는 등의 권고안까지 내놨으나 노동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어용노조와는 신속하게 교섭을 타결하고, 금속노조와는 공전을 거듭하라”는 창조컨설팅의 컨설팅 내용에 철저히 복무한 사측은 어용노조와는 매년 신속하게 교섭을 타결했다. 또한 금속노조와는 공전을 거듭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단 한 차례도 교섭을 타결하지 않았다. 단체협약까지 해지해 버렸고, 무려 3년 4개월 동안 단 한 차례 교섭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10월 15일 금속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교섭위원들이 교섭을 요구하며 유성기업 서울사무소에 자리를 잡은 지 45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면피용 교섭만 단 2차례 열렸을 뿐이다. 반면 그들이 만든 어용노조와는 매일 실무교섭과 본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사무소에서 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교섭단에게 형사고소와 출입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도 화성실업이란 가면을 쓴 유성기업이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으로 교섭하기 싫은 유성기업 사측에게 교섭거부의 명분이 생겼으니 금속노조와의 교섭은 또 물 건너 간 것일까?

노조파괴의 핵심이자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최초의 사업주인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지난 4월 19일 1년 2개월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하지만 그가 또 다시 사태해결을 거부하면서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징계 등이 병합된 재판이 진행 중이며 배임과 횡령으로도 조사받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차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연일 연기되고 있다.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심각한 폭력을 가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맞다! 폭력행위는 용납 될 수 없다. 노조파괴 8년 동안 회사의 폭력에 노출된 조합원은 100명이 넘는다. 그때마다 언론도, 노동부도, 경찰도, 정부도, 모두 눈을 감았고 귀를 닫았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월급봉투는 얇아져만 갔고, 호적에는 빨간 줄이 그어졌다. 정신건강은 점점 더 병들어갔다. 절반이 넘는 조합원들이 당장 치료를 요하는 중증우울장애를 앓게 됐다.

‘이게 나라냐?’ 라는 구호와 함께 들어선 정부 하에서도,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은 ‘이게 회사냐?’를 외치며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10월 22일 발생한 사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유감을 표명하며, 동시에 8년간 이어지고 있는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사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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