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갉아먹은 임금피크제 3년, 폐기 요구 거세

공공기관 노동자들 성토이어져… ‘임금 피크제’ 두고 노정 대화 시작

[출처: 공공운수노조]

박근혜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공공기관에 도입한 임금피크제. 당시 정부는 정년연장법을 빌미로 앞으로 2년 간 정년으로 인한 퇴직자가 생기지 않으니, 신규 채용 인건비는 그 안에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2016년 1월부터 임금피크제를 강행했다.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전국 338개 공공기관과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114개 지방 공기업이 대상이었다.

그리고 임금피크제 도입 만 3년이 도래하는 현재, 공공기관에선 이를 두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만 임금 삭감의 피해를 보는 것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하향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별도정원으로 분류되는 임금피크제 대상자 등이 늘어나면서 총인건비를 잠식하는 문제다. 또 세대 간 갈등, 강제적 임금 삭감에 따른 차별의 문제, 제각각인 기관별 임금삭감율로 인한 형평성 문제도 줄줄이 얽혀있다.

공공운수노조는 30일 오전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도 문제점을 고발하고,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철도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서울교통공사노조 등 공공운수노조 산하 사업장의 정책 관계자들이 모여 해당 기관에서 일어나는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정진화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별도 정원 관리로 인한 정부의 책임 방기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정 국장은 “임금피크제 대상자 또는 임금피크제로 인한 신규채용자를 기관 총정원 외 ‘별도 정원’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별도 정원은 예산 편성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에 따라 총인건비 내에서 이들의 인건비를 해결하도록 하면서, 정부가 고용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내년부터 정부의 임금피크제 지원금이 중단됨에 따라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손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철도공사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는 2년간 40%에 이르는 임금이 삭감된다.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별도정원으로 분류돼 있는데 이들의 인건비를 전 직원이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 2016년 총인건비의 75억 원이 별도직군의 인건비로 쓰였고, 해마다 늘어 2017년엔 301억 원, 2018년엔 542억 원을 기록했다. 2019년엔 763억 원(총인건비 예산의 4.07%)이 소요될 예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별도정원이 1175명으로, 338개 공공기관의 총 별도정원(18년 기준 9.049명)의 13%를 차지한다. 타 기관 대비 공단의 별도정원이 과다하기 때문에 임금 삭감률도 높은 편인데 정년 2년 전부터 임금이 35%가 삭감된다.

조창호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자의 유일한 노후보장인 국민연금이 임금피크제라는 일시적 제도 때문에 흔들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라며 “기준소득월액 감소에 따른 기여금 하락으로 향후 국민연금 수령액 변동이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이재복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임금피크제 대상의 임금이 많이 삭감되면 재직자의 부담이 줄고, 대상자 임금이 적게 삭감되면 재직자 부담이 늘어난다”라며 “어쩔 수 없이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 노조차원에서도 고민이 깊다”라고 말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흔들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의식했던 탓일까. 정부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 적합한 별도의 직무를 개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경우 기존의 업무 외에 특별히 별도의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는 것이 어렵고, 많은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이 기존의 직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연령차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근조 철도노조 정책국장은 “별도 업무를 부여한다는 지침 자체가 열차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정책국장은 “신입사원이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업무를 동일하게 인수인계받아 수행하지 않는다”라며 “결국 임금피크제 전에 수행됐던 업무는 인력공백으로 이어지고, 이는 안전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처 분석에 따르면 실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270개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 63%에 해당하는 170곳은 임금피크제 대상자에 기존 업무를 그대로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거꾸로 임금피크제 직원에게 적합한 별도 직무를 개발했다고 답한 기관은 65곳(24%)뿐이었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강탈

월 최저임금의 150% 미만(236만 550원)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장시간 노동으로 모자란 임금을 벌충하게 되는데, 시간 외 노동, 각종 수당을 합친 임금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안두찬 우체국물류지원단지부 지부장은 “우체국물류지원단은 공공기관 중 급여가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임금피크제 삭감률로 인해 임금피크제 마지막 해에는 최저임금수준으로 하향된다”라며 “게다가 삭감된 임금만큼 노동강도 및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근로형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임금삭감만 이뤄지고 똑같이 근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우체국물류지원단 소속 노동자들은 소정근로시간인 월 209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월 27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철도노조 역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5, 6급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에 준하게 임금이 하락했다. 5, 6급 노동자의 기본급에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 31%가 감액돼 6급 11호봉은 168만 2000원, 5급 13호봉은 186만 8100원을 받게 된다. 이근조 정책국장은 “임금피크제를 5, 6급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면 실제 기본급은 최저임금의 150%미만으로 떨어지지만 수당과 성과급 때문에 최저임금 수준이 유지되는 것”이라며 “임금피크제 적용 제외 기준인 최저임금 150% 미만이라는 기준을 더 상향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청년 일자리 창출, 실질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능”

노조는 최종적으로는 임금피크제 지침을 폐기시키는 것이 목표지만 한번에 지침 폐기가 어려우니 내년부터 별도정원을 일반정원화 시켜 총인건비로 인정하고, 임금 삭감율 조정 및 노동시간 단축 등의 단계적 방법을 밟자고 요구하고 있다.

김철운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팀장은 “노조는 조합원의 실질임금 감소를 감수하면서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라며 “실질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으로 단축되면, 청년 일자리도 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공운수노조는 임금피크제 폐지를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오는 12월 5일부터 양대노총 공대위가 임금피크제 폐기를 원포인트로 놓고, 노정 협상을 진행한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국민건강보험노조·서울교통공사노조·철도노조,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국민연금지부, 발전노조를 비롯한 16개 단위노조는 3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기획재정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