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선 수익률 곡선(yield curve) 평탄화 문제로 내부 논쟁이 격화됐다. 장기 금리인 미국채 10년물 수익률과 단기 금리인 미국채 2년물 수익률의 격차를 표시하는 수익률 곡선이 제로(0) 수준에 근접해 평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시라면 장기 채권 수익률은 당연히 단기 채권보다 높아야 한다. 하지만 미래의 상황이 불안하다고 여기면 장기채권의 수익률이 낮아진다. 심지어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볼 경우 장기 채권과 단기 채권의 수익률이 역전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수익률 곡선은 경기 동향을 살피는 주요지표로 활용돼 왔다.
수익률 곡선이 역전되고 짧게는 8개월, 길게는 14개월 이후 침체가 시작됐다.1) 연준이 현재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어 단기 채권 금리도 오르게 된다. 현재 10년물 수익률은 3.041%이고 미국채 2년물 수익률은 2.787%로 그 차이가 0.258%에 불과하다. 6개월 전 0.5%포인트의 절반 수준이다. 2007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좁혀진 셈이다. 다시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수익률 곡선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2019년 하반기나 말에 미국에 경기침체가 찾아온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한 반론도 상당하다.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통제에서 벗어나 연준이 긴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경제는 리세션(경기침체)에 놓였다”며 이 때문에 일부 수익률 곡선 역전이 리세션의 전조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지난 몇 년간 각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로 장기 금리가 크게 낮아진 상태라 현재의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가 미래의 리세션 여부를 가늠할 신뢰할만한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익률 곡선 논쟁은 경기 침체에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문제다. 이런 논쟁은 연준 뿐 아니라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한국경제가 침체에 접어들었는지를 놓고 연일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IMF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7%로 낮췄고, 한국경제 성장률도 올해 3%에서 2.8%로 낮췄다. 2019년도는 이보다 더 낮은 2.6%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제에 대해 최근 3%대에서 내년 상반기 2%대로, 하반기에는 1%대로 크게 둔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내년도 세계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모든 기관에서 일치하고 있다. 지난 금융위기에서도 확인된바 경기 순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겨울이 언제쯤 찾아올지, 얼마나 추워질지다.
장기불황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계 수준에서 볼 때 금융적, 실물적 과잉자본으로 인한 불황 요인은 거의 제거하지 못했다. 이른바 ‘창조적 파괴’도 일어나지 않아 이자도 못 갚는 한계 기업은 그대로 남아 과잉자본을 유지, 확장시켰다. 투자나 소비 수요도 반짝 상승은 있었지만 2008년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시 곤두박질 쳤다. 글로벌 부채는 축소되기는커녕 위기 이전보다 더 커졌다. 불황이 제거될 요인은 아무것도 없다. 양적완화로 인해 각국의 금융시장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만 호황을 누렸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황이 만성적이고 구조적이라는 데 있다.2) 금융위기가 터지자 문제의 원인이 된 모기지담보채권(MBS) 같은 악성 채권을 중앙은행이 매입하면서 양적완화를 지속시켰다. 그런데 이 양적완화는 은행과 금융자산의 건전성을 강화(손실의 사회화)시켜 주면서 동시에 실물부문으로도 흘러들어갔다.
이 양적완화의 결과로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가 폭증했다. 국제금융연구소(IIF)에 따르면 2018년 1분기 현재 전 세계 부채는 247조 달러(28경2049조 원)에 이른다. 비금융기업 부채 74조 달러, 정부 부문 부채 67조 달러, 금융 부문 부채 61조 달러, 가계 부채 47조 달러 등이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318.1%다. 특히 기업은 차입경영을 확산하는데 일조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 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빚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한계 기업(좀비 기업)의 비율은 2008년 위기 전 5%에서 2015년 말 10.5%로 두 배가 늘었다. 기존 한계 기업에 더해 더 많은 기업이 같은 처지가 됐다. 과잉자본이 청산되기는커녕 덩치가 더 커졌고 더 부실화됐다.
또한 이렇게 경영성과가 좋지 못한 기업은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 회사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인수 합병 과정에서도 투자자의 돈을 끌어오기 위해 인수 대상 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뒤 회사 자산을 매각해 이를 갚았다(LBO). 이런 레버리지 론(leveraged loan)은 부채가 많은 투기등급 기업들이 회사 자산을 담보로 추가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2008년 당시 미국 레버리지론 시장 규모는 7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이는 1조1000억 달러 규모로 늘었다. 레버리지 론은 채무불이행(디폴트)의 위험이 높고 그만큼 이자율이 높다. 그래서 연준과 IMF에서는 레버리지 론이 지난 금융위기 당시 위기의 진앙이었던 MBS 같은 주택담보채권과 파생금융상품을 대신할 새로운 위기의 진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3)
다른 한편 양적완화를 탄 자금은 이자율이 좀 더 높은 신흥시장국으로 흘러 들어가 그쪽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웠다. 그러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신흥국에 들어갔던 자금이 빠져나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해당 신흥시장은 외환위기 위험이 커지면서 새로운 위기의 발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국 등도 비슷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불황 속에서 투자가 확대된 것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소리는 요란했지만 오히려 IT산업에 대한 투자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와 배터리 등 일부 부문은 호황으로 투자가 확대됐지만 나머지 부문은 모두 축소됐다. 한때 자영업의 기반이 되는 도소매업 대출이 확대됐지만 이마저도 과잉 상태가 돼 현재 자영업은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한국, 구조적 장기침체에 들어서
한국에서도 과잉자본의 퇴출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해운과 조선 등 글로벌 과잉 상태의 업종 일부가 축소됐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실제 제조업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미만(영업이익이 이자비용보다 적은)인 한계기업 비중은 2011년 7.1%, 2012년 7.3%, 2013년 8.8%, 2014년 9.4%, 2015년 9.3%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상황(2018년 9월) 자료를 보면 작년 말 한계기업은 3,112개로 전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법인(외감기업)의 13.7%에 달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설비투자는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 속에서 가까스로 반등했다. 설비투자 축소는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긴 감소세다. 이미 조선업과 해운 등의 불황은 지속되고 있고 자동차, 철강 등은 대기하고 있다. 반도체가 꺾이면 제조업 전반의 불황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오르고 성장이 확대되는 선순환 메커니즘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최근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 노동을 기계, 즉 자본이 대체하며 보다 자본집약적인 산업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현재는 중간 소득의 노동을 기계가 주로 대체하고 있지만 기술발전으로 기계 도입비용이 더 저렴해지면 하위 소득의 노동까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 부문 일자리가 줄고 서비스업 중심의 일자리 구조로 가져가는 상황이 됐다. 이미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수준인 80%에 육박하고 있고 제조업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일자리 축소 및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줄어든 노동공급을 대신할 생산성 있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서 노동생산성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4)
정부가 얘기하는 혁신성장은 생산성이 높고 임금 수준도 높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성장을 추구할수록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해당 산업의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다. 특히 서비스업에서 더 생산성이 낮고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게 된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산업재편을 겪고 있는 산업부문을 대체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다 해도 이제까지의 성과를 뛰어 넘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재벌체제로 형성돼 온 경제구조도 전혀 바뀌지 않아 차세대 바이오 산업도 삼성 중심으로 이미 재편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등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국경제도 구조적 장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투자와 수요의 부진, 노동생산성 악화와 성장의 정체 등 만성적, 구조적 불황에 빠졌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 새로운 위기는 양적완화와 같은 평화적 수단으로 관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의 차입경영과 차입매수를 용인하고 한계기업을 더 키우는 것은 불황을 더 장기화하고 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금리 수준으로는 위기 대응력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다. 연준은 위기 시에 기준금리를 5%포인트 떨어뜨려 왔다. 현재 연준의 금리인상 목표는 2.5~3% 정도로, 다음 위기 시에는 예년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양적완화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금리 정책은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5)
결국 과잉자본 해소를 위해 사활을 건 자본간 투쟁이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이 투쟁의 전초전의 성격을 가질 뿐이며, 진정한 투쟁은 위기와 함께 본격화 할 것이다.
그러나 과잉자본 해소는 단순히 자본의 총량을 줄이는 수학적 과정이 아니다. 과잉자본 해소는 노동자의 삶과 일터를 빼앗는 과정이며,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고, 산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대체하는 학살의 과정이다. 또한 이 위기 속에서 제노사이드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을 개선하고 새로운 축적체제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생산성 향상 없는 성장’이 이뤄져 노동력 가치는 더 하락하고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 진다. Winter is coming. 좀비와의 전쟁이 시작되려 한다.[워커스 49호]
[각주]
1) https://www.rbcwealthmanagement.com/gb/en/research-insights/payingattention-to-the-yield-curve/detail/?utm_id=wm1528198069495
2)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로랜스 서머스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명명했고, 영국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장기불황(long depression)’이라고 불렀다.
3) https://blogs.imf.org/2018/11/15/soundingthe-alarm-on-leveraged-lending/
4)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3502
5) 만약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를 취한다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금융위기 시에 등장한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과 개인이 아니라 은행간 거래에만 사용됐다. 중앙은행이 개인을 상대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게 된다면 관리통화제도의 질과 수준에서 완전히 그 의미를 달리하는 문제가 된다. 비전통적 정책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완전히 새로운 정책적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