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전소 사망 사고 관련 대책 내놨지만 비판 거세

태안화력 대책위 반발 “본질 모르는 알맹이 없는 대책”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관련 부처가 합동 대책을 내놨지만,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90여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인 태안화력 대책위는 정부의 ‘특별산업안전보건감독’에 유가족, 노동조합, 외부 전문가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수사’의 영역에 외부 민간인을 참여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합동 대책 발표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합동 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질의를 받았다.

노동부는 향후 △사고 원인 조사 및 특별산업안전보건감독 실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의 경우 노사 및 유가족 등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참여시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 역시 △운전 중인 석탄운전 컨베이어 등 위험설비 점검 시 2인 1조 근무 시행 및 낙탄제거 등 위험 설비와 인접한 작업은 해당 설비가 반드시 정지한 상황에서 시행 등의 긴급안전조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특별산업안전감독에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태안화력 대책위에서 저희들에게 특별산업안전감독에 상급단체의 노조활동가, 외부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는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수사의 영역으로 외부 민간인을 참여시킬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2인 1조’ 매뉴얼이 회사 자체의 업무 매뉴얼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산업안전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은 산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떤 유해 위험 작업은 아니다. 또 화재, 폭발, 붕괴 등이나 질식 위험이 있을 때 외부 감시자를 두게 돼 있지만 컨베이어점검작업은 반드시 감시자를 두어야 하는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는데 고장의 우려가 있으면 정비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서 기계를 멈춘 다음에 정비를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점검을 하는 사람이 혼자서 내부에 들어가 어떤 낙탄 처리라든가 이런 작업까지 했다면 그건 안전조치에 약간 위배될 우려가 있어서 그 면에 대해선 추가적으로 조사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나온 동료나 노조의 말을 종합해보면 고 김용균 씨 같은 한국발전기술의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으로부터 수시로 낙탄 처리 지시를 받았으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수시로 낙탄 처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작업 중지 또한 금기시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에 따르면, 현장에는 운전을 정지할 수 있는 장치 ‘풀코드 스위치’가 있었지만 원청은 그 스위치가 작동되면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반응속도를 느리게 설정해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부대책,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정부 발표 직후, 태안화력 대책위는 논평을 발표하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라며 “정부 대책에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고는 공공기관에서도 돈벌이를 위해 외주화를 진행하고, 위험을 고스란히 비정규직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인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태안화력 대책위는 “석탄발전소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 협력사(하청)까지 참여시켜 현재의 인력운용 규모가 적절한 지 전면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 과정은 매우 오래 걸릴 것이며, 그렇다면 정규직 전환은 안 하고 협력사에 그냥 남아있으라는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협력업체의 신입 직원에 대한 교육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를 교육한다면 이는 진짜 사용자가 발전사임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라며 “그렇지 않다면 이는 불법파견으로 이미 발전소에서는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의 업무지시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태안화력 대책위는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면 인소싱이 출발”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을 촉구했다.

태안화력 대책위 “공기업 사망사고, 문 대통령이 사과해야”

[출처: 공공운수노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사망 사고와 관련해 정부의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는 17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대책위의 활동 계획과 요구사항들을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 한국서부발전의 모습에 경악한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헤드랜턴도 없이 일해야 하는 현실,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루어진 고용구조, 산업재해 통계 은폐 등 연일 쏟아지는 발전소 운영 실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며 “이번 사고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가 남긴 참사”라고 지적했다.

시민대책위는 “더욱 심각한 것은 태안화력 1-8호기에서는 아직도 노동자를 잡아먹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서부발전이 뒤늦게 2인 1조로 점검하라고 지시했지만, 인원충원이 없는 조치여서 오히려 노동자들이 점검할 범위가 2배로 늘어났다”라고 비판했다.

  고 김용균 씨의 사진을 끌어안은 어머니 김미숙 씨. [출처: 공공운수노조]

시민대책위는 사고가 났던 9-10호기에 이어 태얀화력발전소의 1-8호기 컨베이어 벨트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여전히 노동자들이 1-8호기 같은 위험에 노출된 곳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멈춰세워야 한다”라며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죽음의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또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김 씨는 “대통령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묻는다. 공기업에서 어떻게 이토록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우리 아들 바람대로 대통령 만남을, 아들은 못했지만 우리 부모라도 만나고 싶다”라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수립 및 배상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안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12월 임시국회 내 처리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현장시설 개선 및 안전설비 완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시민대책위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17일부터 진행되는 태안화력 특별근로감독에 유가족과 함께 직접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오는 2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1차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한다. 범국민추모대회는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된다. 서울 광화문 광장엔 시민 분향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한편 시민대책위는 노동계, 종교계, 인권단체, 시민사회단체, 노동안전보건단체 등 92개 단체로 구성돼 지난 16일 참가단체 대표들이 모여 첫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시민대책위 대표자들은 “사람보다 돈이 우성인 세상, 노동자보다 설비가 더 중요한 세상인 한국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결의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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