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의 죽음

[워커스] 사진

전국철거민연합 김소연 씨가 기자와 통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듣게 됐다.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왜 그 나이 먹도록 집 없이 떠돌았는지, 가족과 친구와 이웃은 그의 죽음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장례식은 언제인지….

역설이지만, 철거민과 노점상은 누군가 죽어야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다. 그 관심이란 것도 대부분 ‘동정’에 가려져 좀 더 구조적인 문제는 비정한 사회 탓으로 돌려지거나, 신파적 결론을 끝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이미 박준경 열사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11월 6일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이 용역 폭력에 엄중하게 대처했다면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왜 결국 누군가 희생을 당하고서야 뒤늦게 수습하려 드는가? “다 필요 없다”는 유가족의 절규가 귓가에 쟁쟁하다.[워커스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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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철거연대

    문재인 정부는 친노동이 아니다. 세입자를 못 살게 구는 것은 건설자본에 빌붙어서 자한당을 밀어주는 세력을 위해서다. 파시즘과 협치는 잘못이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 재개발을 강행해온 세력이다. 용역깡패를 앞세워 토건기업의 욕심을 채우는 세력이 자한당이다. 이들과 협치하기 위해 세입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세입자들은 건설노동자와 단결해야 한다. 철거민, 건설노동자 이 둘 다 똑같이 독점 건설자본의 착취를 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