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이제는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

[기고] 시민대책위, 서울시에 ‘시민공청회’ 요구

1.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곳

"요즘 ‘노량진 구 수산시장’상황 어떤가요?" 수많은 사건·사고로 눈코 뜰 새 없는 대한민국 이다. 조금만 잠잠해져도 기억 속에서 금세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하루에도 수차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남성 평균 키와 체격을 훨씬 뛰어넘는 건장한 청년들이 검은 유니폼과 군화로 무장하고 시장 안을 휩쓸고 다닌다. ‘공실 관리’라는 이름으로 상인의 물건을 발로 걷어차거나, 노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을 내뱉는다. 폭력도 일상이 되면 면역력을 갖기라도 하듯, 경찰의 반응도 무덤덤하다. 더 자극적인 뭔가의 그림을 쫓듯 묻는다. “그래서 진단이 몇 주 나왔죠?”

상처는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저들의 만행에 견디다 못해 떠난 자리는 웅덩이처럼 군데군데 패여 시장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덧칠한다. 한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가장 크고 번성했던 노량진수산시장이 불과 몇 개월 사이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남루한 뒷골목과 같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바뀌어 보인다.

[출처: 최인기]

2.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수협과 노량진수산시장 주식회사의 만행이 극점을 찍은 것은, 지난해 수차례 명도집행에서 실패한 이후다. 수많은 방송과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흥미진진하게 몰고 갔다. 수협은 실추한 명예를 되찾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11월 5일 물과 전기를 끊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단전과 단수’는 수산물을 파는 상인들의 목을 조이는 비열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 시장으로 상인을 입점하도록 압박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저들의 탄압에 맞서 수협의 물류 차량을 저지하는 강공책을 구사했다. 벼랑 끝 전술은 유효했다. 수협은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폭력의 마수를 드러냈고, 그제야 언론은 수협의 횡포에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게토’마냥 어둠에 휩싸였던 구 수산시장을 상인들은 스스로 돈을 들여 ‘전기선’을 잇고, 해수차로 물을 공급해 불을 밝히고 시장의 숨통을 유지하게 된다. 가까스로 노량진 구 수산 시장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게 됐다.

수협은 오래전부터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신 시장 이주를 결정하고 추진했다. 수천억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었지만, 충분히 소통되지 못한 채 건설됐다. 특히 최순실이 개입됐다는 의혹마저 제기됐고, 구 시장 부지에 카지노를 비롯한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투기적 발상은 상인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우리 사회 곳곳이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됐던 것이 이곳에서도 재현되었다. 2015년 9월 상인들은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신 시장 입주 신청을 거부하며 현재에 이르게 된다.

3. 고등법원 판결 구 시장 관리·감독 권한은 ‘노량진수산시장 주식회사’에 없다

노량진수산시장 투쟁의 이해를 위해 윤헌주 씨는 이렇게 전한다. “지난 2018년 11월 손해배상소송 관련 고등법원 판결 결과를 보면, 구 시장 관리·감독 권한은 노량진수산시장 주식회사에 없다고 판결이 났습니다.” 이 말은 노량진수산시장 주식회사는 수협중앙회에 위탁을 받고 신 시장을 운영하는 권한만 있을 뿐 폭력적으로 현재 구 수산시장 부지에 대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노량진 구 수산시장 상인 윤헌주 씨는 또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여의도 근처 이곳 수산시장 터전을 상인들에게 순순히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켜켜이 쌓인 유무형의 가치를 한낮 쓰레기로 치부하는 저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폭력’ 뿐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보다 돈이 우선일 수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장을 살리고 유지했던 상인들이기에 이곳에 ‘점유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상징적인 건물을 중심으로 ‘부분존치’를 주장한다.

4. 수산시장 개설자는 서울특별시장이다

농안법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는 서울특별시장으로 명시돼 있다. 그리고 노량진수산시장의 정식 명칭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시행규칙에 따라 ‘서울특별시 노량진 수산물 중앙도매시장’이다. 이법은 “농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 생활의 안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민들의 먹거리와 연관된 매우 공적인 사업이기에 국고보조금이 1,540억 원이나 사용된다. 그러니까 수산시장을 수협중앙회의 소유만으로 퉁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도 상인들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용역과 직원의 만행에 맞서 24시간 농성장을 유지하며 밤과 낮으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한겨울 밤을 새우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 잠시 쉬고 또 장사하러 나온다. 생선을 파는 상인 한상범 씨는 "을지로 변 35년 된 냉면집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시민여론이 팽배한 지금 70년이 넘도록 서민들의 애환이 담기고 기억이 서려 있는 서울 최대 수산시장 부지를 그것도 ‘미래유산’으로 등록해 놓고 왜 부수고 없애려 하는가? "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5. 노량진 구 수산 시장 상인, 시민대책위를 결성하다

수협은 현재 선거 중이다.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현재로서 3명의 후보가 등록한 상태다. 이들 가운데 노량진수산시장을 둘러싼 공식적인 입장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대부분 구 수산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1월 30일 오전 11시 시청 앞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함께 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결성하고, 서울시민 공청회 청구 운동 선포’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제부터 반격의 고삐를 단단히 쥐는 자리다. 대책위원회 명칭도 ‘함께 살자’다. 이에 대해 상인 한상범 씨는 “구 시장 신 시장 모두 상권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취지로 시민들이 우리의 뜻을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시민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각계각층 많은 이들이 참석할 것을 권유한다.

몇 년 동안 ‘동작 주민공동대책위’소속 단체 활동을 통해 구 시장 보존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여론을 형성해 왔다. 여기에 작년 상반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철거민연합’으로 결성된 ‘빈민해방실천연대’ 즉 대중조직으로 재조직하여 명도집행을 막아냈다. 이밖에도 ‘민주노총’과 ‘전농’ 등이 참여하고 있는 ‘민중 공동행동’ 그리고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변혁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이 총 망라되어 시민대책위를 결성했다.

6. 대책위는 시민공청회를 개최한다

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시장개설자인 서울시를 상대로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공청회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렸다. 현대화 사업의 이름으로 문을 연 신 시장의 3년을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벌써 신 시장 곳곳에 배수 문제가 발생해 시장의 위생과 안전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에는 신 시장 상인들도 좁고 폐쇄적인 환경으로 기존의 물류시스템과 도매시장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임대료 급등으로 상인의 피해는 결국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게다가 수협은 오랫동안 구 시장에서 저항했던 점포를 상대로 수천만 원대의 부당이득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신 시장으로 입주한 상인들마저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공청회는 <서울시 주민참여 기본조례> 제9조 ‘서울시의 중요한 정책 사업에 대하여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토론, 공청회 및 설명회를 서울시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 진짜 현대화 사업이 제대로 되었는지 검증해 보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 수협선거가 끝난 후 새로운 회장은 노량진 구 수산시장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수산시장이 개발자본과 기득권세력의 이윤과 이해관계를 위해 개발될 수 없다고. 시장 현대화사업의 방향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하루빨리 도매시장의 기능을 되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시민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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