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노동자도 경영할 수 있어

[워커스] 사회주의탐구영역



#1. 국민연금이 사회주의의 첨병?

사회주의자들보다 ‘사회주의’를 더 많이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보수우익집단이죠.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고 있다!’는 식의 아주 격렬한 외침은 태극기 펄럭이는 집회만 기웃거려도 지겹도록 듣게 됩니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이 나섰습니다. 그냥 국회의원도 아니고 원내대표 나경원과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 그리고 얼마 전 입당한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총리 황교안까지 거들어 정부가 ‘사회주의적 발상’을 하고 있다며 비난했죠. 문제의 원인은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 그러니까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것 때문인데요. 이들은 ‘정부가 국민노후자금을 사용해 기업을 길들이려 한다’면서 목소리 높여 ‘사회주의’라고 규탄하고 있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애초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바로 대한항공 때문입니다. 지난해 조현민 전무의 이른바 ‘물컵 투척’ 사건을 시작으로 대한항공 총수 조씨 일가의 갑질과 노동자들에 대한 폭언·폭행, 나아가 횡령·배임 등 온갖 범죄행위가 드러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죠. 그런데 국민연금은 현재 이 대한항공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입니다. 1대 주주는 대한항공이 속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이라는 회사인데요. 국민연금은 ‘한진칼’에서도 8%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3대 주주로 올라 있죠. 그리고 다가오는 3월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총회가 열립니다. 여기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조양호 회장을 해임하는 안건을 상정할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죠. 게다가 근래에는 ‘KCGI’라는 사모펀드가 노골적으로 경영권을 노리며 한진칼 지분을 대량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실제로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일자 청와대와 정부는 ‘오해’라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설령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경영권 문제에 적극 개입한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사회주의적 발상’인 걸까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접근해봅시다. 대주주가 자신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죠. 자본을 소유한 자가 권리를 갖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지상 명제 아니었나요?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2대, 3대 주주 지위를 점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개입을 ‘사회주의’라며 반발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에도 충실하지 못한 자기모순처럼 보입니다. 결국 ‘그 어떤 경우에도 총수일가 경영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강변일 뿐이죠.

#2. 주주는 총수보다 진보적인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는 말 그대로 ‘주주로서의 권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죠.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대기업 지분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일환으로 배당 확대나 주가 부양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에 나서라고 요구합니다. 정부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준 가운데 하나로 배당률이 낮은 기업들을 유심히 살펴보겠다고 한 바 있죠. 그렇다면 총수 일가가 사라지고 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거나, 아니면 총수 일가가 존재하더라도 주주들의 입김이 세지면 기업경영이 좀 더 진보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사례를 하나 보겠습니다.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없는 곳이 있죠. 바로 KT입니다. 원래 공기업이었던 한국통신을 2002년 완전 민영화하면서 정부지분을 모두 팔아치웠죠. 현재 KT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입니다(지분율 약 11%). 그리고 지분의 절반에 가까운 48%를 외국인 자본이 쥐고 있죠. KT 회장을 비롯한 CEO들은 다른 재벌과 달리 직위를 세습할 수 없습니다. 대개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교체되곤 하죠. 총수가 없는 KT는 주주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데요. 가령 2017년 기준 KT의 당기순이익은 4천6백억 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천4백억 원을 배당금으로 나눠줬습니다. 그 이전에도 KT는 2010년대 내내 거의 매년 적게는 1천억 원, 많게는 6천억 원에 달하는 돈을 주주들에게 뿌렸죠. 반면 KT 노동자들은 90년대 후반 민영화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현재까지 4만여 명이 쫓겨났고, 현 회장인 황창규가 취임한 2014년에만 8천 명이 정리해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공공재인 통신망으로 이윤을 거둬들여 경영진과 주주들이 잔치를 벌이는 동안, 노동자들과 국민들이 얻은 이익은 ‘1도’ 없었습니다.

주주환원을 명목으로 엄청난 사회적 부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한 주가 상승이죠. 회사가 자기주식을 사들여 없애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1주당 가치는 올라갑니다. 아무런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지만 기존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은 주식가치 상승으로 이득을 보게 되죠. 또한 지분율이 적어 경영권 유지와 세습이 관건인 총수 일가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지분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 수는 그대로인데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드니까요. 그리고 여기에 드는 돈은 전부 회삿돈, 즉 공금이며 노동자들이 일해서 쌓아 올려준 이윤입니다. 삼성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60조 원의 돈을 이렇게 주식소각에 사용했습니다. 현대차 역시 총수 일가 3대 세습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죠. 지난해만 약 1조 원가량을 투입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주주들이 지배하는 회사라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친화적인 것도,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죠. 앞서 거론했던 대한항공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물론 노동자들의 기본권조차 박탈하면서 이익을 누려온 기존 총수 일가를 쫓아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무엇보다 노동자들 스스로 절박하게 요구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총수 일가가 설령 경영 일선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주주 중심의 경영체제 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는 별반 나아지는 상황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거죠.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이익을 위한 기업통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3. 사회주의에도 사장님이 있을까

국가가 기업을 소유한다거나 어떤 형태로든 공적인 지분을 보유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기업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기업운영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위 경영진이나 기업주의 독재를 노동자들의 민주적 결정구조로 바꾸자는 것이죠. 물론 시시콜콜 모든 사안마다 노동자들이 전부 모여 투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업운영의 주요 직책을 담당할 사람들을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고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통제체계를 만들 수도 있겠죠.

‘전문지식이 없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미 기업운영에서 일상적인 관리와 회계 등의 업무는 수많은 관리직, 사무직 노동자들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항을 일일이 경영진이나 사장들이 챙기고 결정하지는 않죠. 문제는 회사 운영에 중대한 결정을 경영진이 독점하면서 만약 그것이 잘못됐을 때의 책임은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사회주의 기업을 하나 상정해봅시다. 부서별로 노동자들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들이 일종의 이사회 역할을 하는 기구를 구성합니다. 여기에는 해당 기업 노동자들뿐 아니라 기업의 활동에 영향 받는 지역사회나 관련 산업에서도 대표자를 파견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주의에서 기업의 목적은 개별 기업의 이윤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운영은 해당 기업의 구성원에 국한되지 않고 관련된 공동체까지 참여할 수 있어야겠죠. 이 대표기구는 필요하다면 전문가 자문을 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좀 더 높이기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는 기업 외부의 의견을 들을 필요도 있겠죠. 다만 중요한 것은 결정권을 소수의 전문가나 특권을 누리는 고위 간부들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자들이 갖는다는 점입니다.

이 대표기구가 경영의 전권을 쥐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을 선출한 이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죠. 경영상황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주요 결정의 내용과 근거, 그 결과 역시 노동자들에게 공개하고 승인받아야 할 겁니다. 만약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반대의견을 표출하면서 결정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고 대표자를 소환하거나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특정인들이 계속 경영관리업무를 맡으면서 또 다른 차별적 권력을 누리는 집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장치들도 필요하겠죠. 가령 지금처럼 특정 직위에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보수를 받아가는 구조는 사라질 겁니다. 그들에 대한 보상은 책임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따라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수준 내에서 결정할 수 있죠.

#4. ‘누구한테 지배받을지’를 넘어서

앞에서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기업통제가 어떤 형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간략하게 표현해봤습니다. 하지만 각 개별기업이 자체적으로는 노동자들의 민주적 결정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 전체적으로는 조율되지 못한 채 각 기업의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결국 자본주의 기업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전체 공동체 차원에서 사회적 필요에 따른 계획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개별기업이 경쟁해 각자도생하는 체제가 유지된다면 이윤을 내지 못한 기업은 망하고, 그 때문에 경영의 핵심은 수익 창출에 맞춰지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의사결정 구조는 말 그대로 형식에 불과하게 되거나 그마저 비효율적이라고 낙인찍혀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이 통제하는 민주적인 기업은 섬처럼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이 그 일부이기도 한 공동체 전체의 통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죠. 사회 전체 차원에서 기업들이 각자의 수익성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필요와 욕구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조율하고, 여러 차원으로 조직된 구성원들의 민주적 대표체(지역 평의회, 산업 평의회, 전국 평의회 등)를 통해 각 기업이 이 공동의 목적에 따라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감독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된다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면서 기업 활동의 유인이 없어질 거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때 기업과 노동자들은 공동체의 필요, 노동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창발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상태를 벗어나 자신들이 직접 기업운영의 주체가 되고 자신들의 노동과 그 결과물에 대해 통제권을 가질 때, 특권적 극소수가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을 때보다 더 역동적인 아이디어들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부를 생산하게 될 때 그것은 기업주나 주주들의 잔칫상으로 바쳐지는 게 아니라 온전히 노동자 자신들과 사회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습니다. 기업주나 총수의 지배냐, 아니면 주주의 지배냐. 이제 이 악마의 양자택일을 벗어날 상상력이 필요한 때입니다.(워커스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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