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스》 편집위원회 대나무숲

[좌담] 청(장)년 활동가로 살아가기

《워커스》가 재 창간한 지 어언 2년. 그동안 《워커스》가 여차여차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협업과 지원 덕분이었다. 그 중 지난 2년간 드러나지 않게 잡지에 힘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매달 기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잡지의 기획과 방향성을 논의하는 ‘편집위원회’ 위원들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느라 허덕이면서도,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각 분야의 전문가답게 생생한 이야기와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러다보니 기자들 사이에서는 ‘편집위원회 때 나온 얘기가 지면에 실리지 않는 게 아깝다’는 아쉬운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야심찬 좌담회를 열어 편집위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 보기로 했다. 주제는 ‘청(장)년 활동가로 살아가기’다. 노동, 정치, 성소수자 인권, 정보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워커스》 편집위원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좌담
오승은(공공운수노조)
오진호(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윤지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이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정용경(사회변혁노동자당)
미루(진보네트워크센터)

사회·정리 : 윤지연(워커스)

사진 : 김한주 기자

  왼쪽부터 오승은, 이종걸, 윤지선, 정용경, 오진호, 윤지연, 미루 [출처: 김한주 기자]

윤지연(이하 사회) : 먼저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린다.

윤지선(이하 지선) : 헌법에 보장 된 노동3권을 침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손배가압류’이다. 이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손잡고’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루(이하 미루) : 진보넷 정책활동가다. 정보인권 관련 정책이나 법안에 대응하기도 하고, 개정안이 나오면 문제점을 분석하는 활동도 한다. 시민사회와 연대활동을 통한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다.

오승은(이하 승은) : 공공운수노조에서 일하고 있다. 조합원은 20만 명이고, 상근자는 70명이 넘는 꽤 큰 조직이다. 노조 중에서도 국내 최대 규모다. 나름 큰 직장의 정책실에서 일하고 있다.

정용경(이하 용경) : 사회변혁노동자당, 줄여서 ‘변혁당’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2016년에 창당한 신생 정당이다. 사회운동국장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1년간 상근 활동을 했다. 사회운동위원회는 주로 여성, 인권,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빈곤, 탈핵 등 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다.

이종걸(이하 종걸) : 게이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단체 전반의 운영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인권상담팀장이기도 해서 차별 및 인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무지개행동’이라는 연대체 안에서 집행위원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도 전략조직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진호(이하 진호) : 비없세 집행위원이다. 비정규직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공론화하는 여러 기획과 연대 사업을 하고 있다. 사회 오늘 주제가 ‘청년 활동가로서 살아가기’다. 청년 활동가로서 겪는 문제나 고민을 나누고 싶다. 우선 활동 공간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미루 : 상대적으로 편하게 다니고 있는 내가 먼저 이야기하겠다. 아직까지 큰 의제가 터지지 않아 10시 출근, 6시 퇴근을 칼 같이 지키고 있다. 늦게 퇴근하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할 수 있고, 늦은 퇴근이 예상되면 늦게 출근하기도 한다. 마이웨이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앞으로도 쭉 이 분위기를 지킬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나 말고 다른 상근자들은 단체 초창기부터 있던 분들이라, 이런 것들로 눈치 보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휴가도 미리 말하면 이유를 묻지 않는다.

승은 : 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쉰다고 해도 아무도 막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각자 맡은 일이 있다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라’, ‘못하겠으면 좀 줄여야지’라는 말에 모두 동의를 하지만, 기한이나 결정 구조 같은 게 따로 없다보니 그런 말이 실제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내가 욕심을 부려서 못하고 있나’, ‘너무 성명을 오래 쓰나’, ‘쓸 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고 있나’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일이 터지면 채용 공고를 내고 상근자를 뽑지만 들어오는 사람보다 사업이 더 많아지는 구조다.

지선 : 5년 넘게 혼자 상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정부분 자율성이 있다. 하지만 혼자 회계 처리를 하다보면 총회 때 인건비 같은 것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 가끔 회원들 중에 상근이 나 혼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회원으로서 사업이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운영비를 많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도 한다. 회계 보고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크게 잘못한 게 없어도 신경이 좀 쓰인다. 손잡고는 내규, 정관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이상의 상근비와 수당을 보장하고 있다. 상근자 1명에 대한 상근비와 운영비가 겨우 맞춰질 정도의 예산이다.

종걸 : 지난해 단체 상근자가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서 상근자 소진 방지를 위한 TF를 가동해 상근자 휴무규정을 싹 정리했다. 특별 휴가, 연차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했다. 휴가 규정이 확실해지면 상근자들 마음도 편해진다. 사실 단체 활동을 하면 토요일, 일요일 행사가 많지 않나. 그래서 우리 조직 안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대해서는 대체 휴무를 쓸 수 있는 규정을 정했다. 임금 기준도 정했다. 그 전에는 명확하지 않았고, 대체로 최저임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식이었는데 생활임금으로 바꿨다. 사업도 중요하지만 상근자들과 조직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업무를 세부적으로 나누고, 몇 명의 상근 활동가가 더 필요한지를 논의한 후 활동가를 채용할 계획이다.

사회 : 인력이 부족한 노조, 단체가 많기 때문에 활동가들의 업무량도 상당하다. 그래도 재생산을 위해서는 좀 쉬어야 할 텐데, 각자 어떻게 재생산 시간을 확보하고 있나.

지선 : 단체 운영위원 중 한 명이랑 이야기하다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밥 먹으면서도 일 얘기, 차 한 잔해도 일 얘기, 눈만 마주쳐도 일 얘기, 전화해도 서로 안부도 묻지 않고 바로 일 얘기부터 튀어나온다고 했다. ‘너는 왜 취미가 없냐. 그러다 너 죽는다’더라. 자면서 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서 올해부터 그림일기를 시작했다.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하루 중 그 정도의 시간은 그림을 그리면서 보내기로 했다. 집중도 잘 되고, 거기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웬만하면 일과 아무 상관없는 소재로 일기처럼 그리다 보니, 일과 상관없는 풍경들을 많이 보게 되더라. 나름 만족스러운 취미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근데 충격적인 것은, 그림을 그려서 SNS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손잡고 사업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딴 생각하려고 그린 건데, 일과 연관을 지어서 당황했다.

종걸 : 2009년부터 10년 째 단체 안에서 커뮤니티 구성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성소수자 스스로 자력하고 긍정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활동들이다. 문화 활동 등을 매개로 자주 모이고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지보이스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만나는 교회 같은 조직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쌓인 것들을 풀고 있다.

용경 : 반차별이라는 넓은 범주를 이야기하고 있고, 핵심 노동현안에는 항상 연대를 하다 보니 언제나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상 업무가 존재하기 어렵다. 사실 재생산 시간은 생각의 범주 바깥에 있다. 활동가로서 어려움을 서로 보듬고 새로운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도 일을 많이 해봤다. 돈을 많이 받아보기도 했고. 그런데 결국 노동의 소외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자기착취를 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도 내가 나를 달래는 과정으로서 음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학원을 그만 두고 앨범을 내기도 했다.

사회 : 가끔 페이스북에 개설된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을 들어간다. 노동조건을 비롯해 청년 활동가들이 겪는 단체 내 위계나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한 것 같다.

진호 : 얼마 전 직장갑질119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 노조 상근자 면접을 본 사람이었는데, 노조 위원장이 면접관으로 들어와 ‘우리는 근로계약서를 안 쓴다’고 했다는 거다. 너무 황당해서 노조에 욕을 써서 보낼까 생각 중이다. 면접 단계 등의 형식을 갖춘 채용이지 않나. 반면 누군가 나에게 ‘너 비없세랑 근로계약서 쓸래?’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거다. 비없세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분명 애매한 문제다. 청년 활동가들 혹은 운동을 시작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낮은 처우에 시달리고 혹사당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경험에 대한 이상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등한시하기도 한다. 분명히 문제지만, 그것이 단지 세대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 청년 활동가라고,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받는 상근비가 최저임금이 돼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기준이 돼야 하는 거다. 누가 나에게 ‘잘 쉬느냐’고 물으면 필요할 땐 쉰다고 답할 거다. 일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 보니 며칠 밤을 샐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낮에 막걸리를 먹기도 한다. 스스로 조율하고 컨트롤 해 가고 있다.

종걸 : 일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일까 혹은 자신의 역량일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계속 평가에 신경 쓰고,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조직 안에서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분담할 것인지 사회 운동 안에서 앞으로 더 많이 논의돼야 한다. 역량이 있고 경험이 있다고 모든 걸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조절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 임금도, 휴식도 중요하지만 또 그 만큼 중요한 것은 일을 더 하고 싶고 역할도 하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주어지지 않을 때 힘들다는 것이다.

미루 : 내 기준에서는 활동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마치 상사인 냥 명령을 하달 받을 때가 가장 비참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초창기의 그런 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 않나.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을 보면 아직도 이러는구나, 싶다. 주변에 아직도 그런 문화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문화인 것 같다. 진보넷의 경우 내 스케줄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으니, 이쯤 쉬어도 펑크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쉴 수 있는 거다. 그런 주도권이 주어지지 않으니 ‘진보 운동의 꼰대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갉아먹게 되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의 문제는, 당사자에게 프로세스나 학습 없이 ‘처음이니까 이렇게 해’, ‘일단 시키는 대로 해’라며 동원의 대상으로 본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주도적으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승은 :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 조직은 다들 너무 바빠서 꼰대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오리엔테이션도 바빠서 못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니 부담이 된다. 사수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해도 다들 정신이 너무 없으니 이 조차 쉽지 않다. 자율성과 주도권은 있지만, 자꾸 내가 조절을 잘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불안감이 있다.

미루 : 사수가 신입에게 명령하듯 일을 주는 관계여서는 안 된다. ‘실수해도 내가 백업할 수 있으니 한 번 해 봐’라는 태도가 이상적이긴 하다. 그런 식으로 관계를 쌓고 활동 경력을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선 : 예전에 활동했던 단체는 30년 전에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30년 간 사람만 바뀌고 그 특유의 문화와 제도는 그대로 있더라. 새로 들어오는 활동가들이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잘 안 바뀐다. 아무리 중견 활동가가 청년 활동가에게 주도권을 준다고 해도 결정권에 있어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우선인데, 자꾸 ‘동료’라고 우긴다. 평등마저 말로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들이 위계가 없다고 전제를 해버리면, 실제로 위계를 느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짓눌릴 수밖에 없다. 결국 바꿔보려다 튕겨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못했던 사람들은 또 남아서 그 문화와 제도를 재생산한다.[워커스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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