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기획연재]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③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점점 박탈됐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차별과 위계화에 익숙하여 비정규직을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의 목표는 단지 고용형태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비정규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비정규직 사회헌장' 18개 조항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 봄 출판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그 중에서 네 개의 조항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제13조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 적용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실업을 당했을 때 실업부조도 제공되어야 한다.

반쪽의 권리만 보장받는 노동자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 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법, 이것이 바로 헌법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근로기준법을 모두 적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우리의 상식을 배반한다. 제11조(적용 범위)에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근로기준법을 완전하게 적용받으려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받을 수 있다. 도대체 5명은 적용되고, 4명은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조항이라는 건 뭘까?

먼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장 근로의 제한이 없다. 연차 유급휴가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연장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사용자는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으며,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노동자는 사용자의 부당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은 노동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과 해고 등에 있어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5인 미만 사업체 수는 320만개로 전체 80.2%를 차 지 하고, 종사자 수는 580만으로 전체 27.0%를 차지한다. 임금 노동자의 4분의 1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리를 쪼개서 보장하겠다는 법으로 인해 반쪽의 권리만을 보장받는 노동자들이 이렇게나 많다.

노동조합 밖을 서성거리는 노동자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0.7%에 불과하다. 30명 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밖에 안 된다. 300명 이상인 57.3%와는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왜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규모가 있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걸림돌이 더 많아서 그렇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직이 잦다. 사업장을 전전하며 임금과 노동조건을 맞춰가고 있어서다. 고용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고용형태도 다양하다. 사업장에서 노동 분쟁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을 통해 변화를 꾀하기보다 차라리 퇴사해버린다. 지금 사업장에 대한 기대가 없으므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해 환경을 바꾸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작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되지만,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이 유지되지 못하는 이유도 된다. 때문에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사업장을 넘어선 조직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업장을 넘어선 조직화에 대한 경험이 많지가 않다. 기업 단위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리해와서다. 현재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전략조직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관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형편이다. 기존의 일상적인 조직화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조직되지 못한 채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돈과 시간과 사람을 쏟아 부어도 그 노력만큼 성과를 보기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들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고 노동운동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는 중요하다

자본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을 쪼개고 나누고 있다. 사업장의 규모로 분할하고, 고용형태로 위계화하고, 권리의 박탈을 법과 제도가 승인해주고 있다. 이 같은 자본의 노동자 분할 전략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투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져만 간다. 그러나 기존 단위 사업장 중심의 조직화와 투쟁으로는 노동권을 보장받기란 역부족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조직되지 않은 조직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더 많은 조직화의 경험을 쌓아나가기 위해서다. 노동 상태가 균일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해나가며 노동권을 획득해갔을 때, 아직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럴 때 우리의 노동 운동은 미래를 갖게 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에 나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 운동이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해만 대 변하는 데 그친다면,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배제한다면, 노동 운동의 미래는 없다. 조직화가 어렵다고 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미뤄둘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할 때다.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적용을 위해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 봉착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제도적인 문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라서 권리가 박탈당함을 당연시하는 법·제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 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적용은 캠페인을 넘어 현장을 조직하면서 투쟁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 문제다.

앞서 밝혔듯이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이라는 기준이 위헌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감독능력의 한계를 고려하면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도무지 합리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기준은 불변의 법칙도 아니다. 2000년 노동부의 ‘근로기준법시행령 제·개정 발자취’를 따라가면,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범위는 상시 16인 이상에서 상시 10인 이상으로, 그리고 현재 상시 5인 이상으로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정한 법이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예외 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사업장의 규모로 노동자의 권리가 제 한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는 허락받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의 힘없이 노동권의 보장 또한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의 힘으로 노동권을 획득해가는 수밖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완 전한 적용을 위한 싸움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