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식 사건을 통해 본 중국의 사회운동 문제

[워커스] INTERNATIONAL

중국 광동에서 벌어진 제이식 사건은 올해 글로벌 이슈였다. 이미 한국에서도 지난 겨울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중화권 언론뿐 아니라 BBC를 비롯해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언론에서도 심층 분석 기사를 내놓을 정도였다. 사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여름 제이식(Jasic Technology, 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이라는 용접기계 생산 기업에서 비인간적인 처우에 저항해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려 했다. 그 후 지역 당국과 기업의 탄압이 거세지자 중국 여러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학생들이 연대활동에 나섰다. 그때만 하더라도 중화권의 SNS 상에서 여러 노동운동 지원 단체들의 연대요청과 진행 상황 정도가 공유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뒤에 노조설립에 앞장섰던 노동자들과 연대활동에 나섰던 학생 활동가들이 당국에 구금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졌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됐다. 현재 50여 명이 넘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당국에 구속돼 있고, 일부는 가택연금 상태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 국제민주연대 등 33개 단체와 개인 13명은 1월 31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정부가 노동자, 학생활동가들을 체포, 탄압하고 있다며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출처: 동아시아국제연대 페이스북]

이 제이식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여러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조금 흥미로운 경향이 발견된다. 보수 매체들은 이 사건을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매우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반인권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반공주의적 시각을 확대하는 쪽으로 보도한다. 진보 매체들은 연대활동에 나섰던 중국의 대학생들이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을 읽으며,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학연대 경험을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을 많이 부각시켰다. 두 경향 모두 일정하게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곡절을 거친 중국의 현대사와 개혁개방 이후 현재 복잡하게 형성돼 가는 사회 조직 및 사상 경향을 배경으로 살펴보면, 이 사태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선, 제이식 노동자들과 연대했던 학생들은 반체제 인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일부 서구 언론은 이들을 기존의 자유주의적 반체제 인사들과 연결시키기도 했지만 이들 사이에는 당국의 강력한 탄압에 고통 받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중국이 일당 독재를 폐지하고 서구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기존 반체제 인사들의 입장이지만, 제이식 활동가들은 그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왜 그 체제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도리어 자본가의 편을 들어 탄압에 나서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혁명 역사와 공산당의 통치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상적 기반은 여전히 마오쩌둥주의이며, 자신들의 투쟁은 현 체제 속에서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법적 조직’을 결성하고 서구의 NGO들로부터 불법적인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딱지가 억울할 만하다.

다음으로 노학연대에 나섰던 학생 활동가들이 한국의 사회운동 경험을 참조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그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자본주의를 수용하며 권위주의적인 발전 모델을 통해 경제 성장을 추구했고 그 가운데 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발전 경로와 흡사한 측면이 많다. 그렇기에 이들이 농촌 출신 여공들에게 헌신했던 전태일 열사의 삶과 사상에 감동받고, 노동 현장에 진출해 조직을 결성하고 투쟁을 통해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낸 한국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참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의 사회운동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반체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들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 당국이 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길을 가는지에 대한 비판이지 정권을 타도하자는 논리까지 가지 않는다. 이들이 요청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자신의 혁명적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는 당국의 반성과 성찰이다. 심지어 베이징대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를 이끌었던 웨신(岳昕)은 시진핑의 청년 시절 농촌 하방 경험이 자신을 감동시켰으며, 현재의 연대 활동이 외부의 사상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5.4 운동과 혁명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중국적 혁명 전통의 착종

그렇기에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의 경로에 의존하는 근대화론에 입각해 경제성장과 더불어 중산층 확대에 따른 민주주의 요구라고 해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따른다. 그뿐 아니라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이 따라 간다”는 식으로 기본적인 자본과 노동의 동학 논리에 의존해 중국의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해석에도 한계가 있다. 좀 더 깊이 들여 봐야 하는 것은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단속적으로 일어났던 사회운동의 맥락이다.

1957년 반우파 투쟁 당시 우파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중국의 이단적 사회주의 전통은 물론이고, 문화대혁명 당시 조반의 경험과 1989년 천안문 사건 때 자신들을 ‘애국적 사회주의자’로 칭했던 학생운동 사례 등의 연속선상에서 지금의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수용 속에서 전개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보편적 모순과 더불어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던 기층으로부터의 저항 운동이라는 중국적 혁명 전통이 착종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분기점에 서있다. 시진핑 체제는 이를 ‘신시대’라고 명명하는 동시에,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빈부격차, 부정부패, 생태 위기, 부채 증가, 경제성장 둔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의 갈등 등 여러 산적한 국내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으로 권력을 일원화했다. 이 과정에서 당 중앙은 다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조하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단속에 나섰지만, 기층에서는 조금씩 그 본질적 성격이 무엇인지,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주의인지 질문하고 있다.

현대사 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된, 권력 유지를 위한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와 해방을 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다시 한 번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노동자와 학생들은 다시 어려운 길에 나섰다. 제이식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에 나섰던 후난 출신의 노동자 미지우핑(米久平)은 “항상 누군가는 앞서 가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한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자유의 날을 쟁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변에 얘기했다고 한다. 이는 너무나 잘 알려진 루쉰의 오래된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희망은 땅 위에 난 길과 같아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워커스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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