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해보이는 플랫폼 산업, 그 안의 노동은 ‘헉’스럽다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 주최 ‘플랫폼 테크놀로지, 문화산업, 노동집담회’ 열려

각 영역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현재 어떤 처지에 있고,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대기업과 스타트기업이 뒤섞여 만들어지는 플랫폼 산업은 4차 산업혁명으로 들뜬 이 시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도 기대받지만, 종사자들의 지위는 불안해지고, 처우 역시 악화하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출처: 문화연대]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 20일 오후 경의선 공유지 기린캐슬에서 ‘플랫폼 테크놀로지, 문화산업, 노동집담회’를 열고 각 영역의 플랫폼 산업들이 가진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날은 7명의 발제자가 각각 게임노동, 방송제작노동, 문화노동인권, 예술교육노동, 플랫폼노동, 청소년노동, 출판노동을 맡아 각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노동환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는 기존 노동 시장에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인 사업자로 포장된 이들은 각종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감당하며 어렵게 버티고 있었다.

하신아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지회장은 웹툰 작가들의 기형적인 고용 형태와, 임금 지급 방식을 증언했다. 하 부지회장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사는 웹툰 작가들이 죽지 않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고, 현재 케이툰(KT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을 상대로 투쟁을 하고 있다”라며 “웹툰 작가들은 장시간 노동, 그에 따른 건강 이상, 불투명한 임금 테이블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MG(Minimum Guarantee)라 불리는 최악의 계약 조건”이라고 토로했다. 하 부지회장에 따르면 MG는 미래의 수익을 당겨와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만약 플랫폼 사업자와 웹툰 작가가 수익 분배를 7:3으로 계약하고, 작가에게 월 200만 원의 MG를 지급하기로 했다면 수익이 666만 원 이상이 나야한다.

하 부지회장은 “누적 MG 체제 하에서 666만 원 수익이 안 나면 그 다음달 그만큼 더 실적을 내야 하고, 그래도 못 채우면 연재가 끝날 때까지 채워야 한다. 그 다음 작품까지 누적되는 경우도 있고, 브랜드 MG라고 해서 같은 소속사 웹툰 작가들이 함께 연대 책임을 무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케이툰은 이 MG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면서 투니드(웹툰 작가들이 소속된 에이전시)를 정리해 작가들을 정리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노동 통제를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술교육노동 환경 발제를 맡은 박이현 씨는 “2015년 이래로 여러 플랫폼이 생겨나고, 스타트업의 성공 기준인 투자 유치 규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라며 “예술 교육 플랫폼은 크몽, 숨은고수, 탈잉 등 3~4개 정도가 있는데 악기, 미술 등을 다루는 예술 교육 시장은 플랫폼 테크놀로지로 갈아탄다고 해서 기존 정규직 영역이 비정규직화 되거나 불안정화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라고 진단했다. 박 씨는 다만 “보따리 장수 일을 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추가 노동이 생긴 것 같다. 플랫폼 사이트에 사진과 부연글을 쓰고, 홍보와 별점에 신경쓰면서 생기는 추가 노동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최근 방송 제작의 눈에 띄는 흐름을 짚었다. 김 씨는 “최근 영상 제작 방송시장에선 기획, 촬영, 편집 등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인력들을 찾고 있다. 유튜브가 대세가 된 후 나온 현상들인데, 이 모든 것을 혼자 다 떠맡아도 급여는 면접 후 결정”이라며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면서도 저임금으로 책정된 일들을 지적했다.

김 씨는 또 “한 학생이 CJ 웹드라마 알바를 한다며 계약서를 들고 왔는데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사업자들끼리 주고 받는 하도급 계약서였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개인사업자로 일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영상을 만들었을 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여론을 만들 수 있는지보다 제대로 대가를 챙겼는지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된다”라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플랫폼에선 생존해야하는 문제 이외에 또 다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또 다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우려했다.

‘여성’이라 더 위험하고 취약해진다

플랫폼 노동, 문화산업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각종 차별과 폭력에 더 취약했다.

게임 노동 관련해 ‘크런치 모드’ 등으로 나타나는 노동자 부품화와 불공정한 생태계를 지적한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게임 산업 내 소외된 젠더 문제를 꼬집었다. 2016년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을 올렸다가 게임 <클로저스>에서 성우 김자연씨가 하차한 사건을 비롯해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논란까지 게임 업계의 여성 혐오 이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 편집위원은 종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2017년 필요한 입법을 모색하는 국민내각 특집편에서 한 여성 게임 개발자가 남성 개발자들이 본인들의 스트레스를 여성 개발자에게 푼다고 하소연했다. ‘군대 안 갔다 왔잖아’ ‘사회 생활이 모자라네’ 등의 불합리한 이야기를 듣고, 회사에 도움을 요청해도 조치가 없었는데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두 개의 답도 의미심장했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신고센터 등을 이야기하는데 예방이 아닌 사후 조치에 불과했다”라고 지적했다.

출판노동에 대한 발제를 맡은 정원옥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출판업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전국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여성위원회가 여성 출판노동자 25명을 3년 간 심층면접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로 지난해 발표됐다.

정 연구원은 “차별과 성폭력 문제가 심각했다. 여성에 대한 배려로 포장된 차별이 만연했다. 여성이 많이 종사하지만 승진이 안 됐다. 성폭력도 만연하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고학력의 남성 출판사 대표들은 페미니즘 책을 내면서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라고 하면 왜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냐고 따지는 모순된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정 연구원은 또 “정규직이면서도 임금이 낮았는데 연봉도 1800에서 2500이라는 저임금을 받았다. 노동 환경이 열악하니 근속 연수도 짧게는 3개월에서, 길어도 3년을 넘어가는 노동자들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두나 희망을만드는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영화산업의 경우 네트워크와 평판으로 굴러가는 만큼, 각종 성착취가 심각하다”라며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지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산업 여성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영화 산업에서 노동구조는 많은 부분 성별화 돼 있으며(조명, 촬영, 동시녹음, 연출, 제작에서 남성 비중이 다수, 분장/헤어, 의상, 미술은 여성 비중이 다수), 여성이 남성보다 동일한 학력 수준과 동일한 직책을 갖더라도 고용의 형태는 더욱 열악했다.

성희롱, 성폭력 문제도 심각했다. 영화계 입문 이후 성희롱, 성폭력 피해 경험은 여성이 40.2%, 남성이 15.0%를 차지했다. 최근 1년 기준으로 여성은 28.5%가 성희롱,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연구자들은 “영화산업에서의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가 여성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집담회는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가 주최하는 2019 기술+미디어문화포럼의 첫번째 시리즈로,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는 올해 플랫폼, 문화산업 관련해 위태로워지는 노동형태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생 비정규직 등을 살펴보는 포럼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많이 이슈가 됐던 플랫폼 노동 뿐 아니라 주목하지 않은 그림자, 돌봄 노동 등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자리들을 들여다 볼 예정이다. 이들은 매월 포럼을 진행하며 플랫폼 노동 시장에 대한 점검 뿐 아니라 실태조사, 정책제안까지 내다본다. 문의는 문화연대 사무국 02-773-7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