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 역설과 배제의 국제정치

[워커스] 한반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장면 [출처: 트럼프 트위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한이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소 수준에서의 합의를 예상했기 때문에 결렬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일괄타결’에 대해 북한의 ‘단계적 접근’으로 맞섰기 때문에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자 비건, 볼튼, 폼페이오 등을 놓고 결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의미없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트럼프의 발언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폼페이오가 ‘결렬 카드’를 트럼프에게 적극적으로 내밀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그 동안의 과정을 보면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18년 7월 7일 3차 방북에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를 주문하면서 핵·미사일 관련 시설 등의 신고와 검증, 시간표 합의 그리고 생화학무기에 북한 인권 문제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볼튼이 제시한 요구안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다. 이에 북한은 회담 종료 후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미국의 변함없는 일괄타결 입장에 대해 북한이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북미관계의 역사와 우여곡절 끝에 열린 6.12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고려하면 후속협상이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비건의 등장과 볼턴의 반격

그러나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등장함에 따라 상황이 변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자신의 대북 협상 로드맵을 공개했는데, 북한과의 단계적 협상에 동의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협상안을 제외한다는 파격적인 안이었다. 비건의 구상은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론을 수용함으로써 접점을 찾고 이로부터 신뢰 구축 정도에 따라 협상을 진전시켜나간다는 논지였다. 비건이 실무회담에서 ①영변 폐쇄, ②영변 이외 지역의 핵물질 생산 시설 폐쇄, ③추가 미사일 문제 협의 등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영변 폐쇄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수용불가라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영변 폐쇄에 대해서는 종전선언으로 ②, ③번에 대해서는 연락사무국, 남북경협 등의 조치를 준비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실무 합의안에 북한은 영변만 폐쇄하고 미국은 위 세 개를 다 내주기로 돼 있었던 것이다. 북측 실무팀에게 비건이 협상에서 밀린 것이다. 당연히 워싱턴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볼턴과 폼페이오가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직접 김정은 위원장과 담판 짓겠다며 밀어 붙였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팩트다.

물론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볼턴 보좌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장악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가 북한이 거부할 게 뻔한 ‘빅딜’ 카드를 꺼낸 배경에 대북 강경파인 그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상황을 돌이켜보면 볼턴은 오랫동안 대북 강경론을 펼쳐왔을 뿐, 특별히 그가 행정부 내에서 권력 지위가 상승된 징후는 없다. 이번 회담 결렬은 2월 27일 만찬장에서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트럼프가 사전협의 없이 무례하게 볼턴을 회담장에 앉힐 때부터 2차 북미회담 결렬은 확정된 것이었다.

폼페이오와 국내정치

아니면 트럼프의 자신감 넘치는 협상태도에 비쳐보면 그 이전부터 결렬은 예고돼 있었다. 트럼프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발언은 평소 밝혀왔던 북핵 협상에 대한 기본 입장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번 회담에서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목표로 상정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단계적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의미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이 대북 협상의 목표치를 낮춰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트럼프가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동결이나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감소시키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상원의원 출마를 준비 중인 폼페이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단계적 해법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폼페이오 장관이 결렬 카드를 내민 배경에는 미국 국내 정치적 상황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헨사건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트럼프는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완화를 교환하는 합의 정도로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기존의 강경한 원칙인 ‘빅딜’로 돌아섰다. 이를 들이밀어서 김정은이 양보하면 대박이고, 아니라면 이른바 ‘노딜’이 향후 국내정치적 공세를 피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계산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INF 탈퇴와 중국

한편, 미국이 2월 1일 러시아와 맺은 INF(중거리핵전력) 조약 탈퇴로 이미 북미회담 결렬 가능성이 높았다는 분석도 있다. INF는 1987년 당시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단거리(사정거리 500~5000㎞)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데 합의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냉전시대의 종말을 고한 역사적 협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INF 조약을 탈퇴한 것은 러시아 때문이 아니고 중국 때문이다. 상대의 핵군사력이 위협이 되는 것은 선제공격 후 보복공격으로 야기될 전쟁을 유지할 경제력이 뒷받침 되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증강된 중국 중단거리 핵미사일 군사력이 북미회담 결렬의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INF 탈퇴로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에 관한 족쇄에서 풀린 미국은 이제 한국에까지도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할 거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미국과 소련의 비핵화와 군축 협상은 두 나라의 핵무력이 공포의 균형에 도달했을 때부터이다. 이 균형을 깨고자 한 것이 미사일방어체제이다. 이에 맞서서 중국과 러시아도 핵무장을 고도화/현대화 하는 데 박차를 가해왔다. 따라서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미사일방어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와 사드 배치를 고려하면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북미관계와 북중관계

회담이 결렬한 또 다른 원인으로 북중 관계를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갈등 그리고 미러 갈등으로 인해 항상 불안정하다. 미국과 중국은 공식적으로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협상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시진핑만 만나고 오면 북핵 협상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지난 1월 7일 또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미국의 무역협상단도 베이징에 있었다. 원래 1월 7~8일 이틀만 협상할 계획이었는데 하루 연장해서 9일까지 했다.

워싱턴은 자연스럽게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정은이 베이징 도착하고 나서 열두 시간 동안 관련 보도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비공개였는데, 이게 미국의 긴장감을 높이는 중국의 심리전이다.
미국은 무역협상에서 중국을 밀어붙이려다가도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취임 초기에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조해주면, 무역문제에서 중국에 소프트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북한의 ‘새로운 길’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2019년 1월 1일 북한의 신년사)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길’의 의미가 4차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교적 명확해졌다. 미국이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를 거부할 경우 미국과의 협상에만 의존하지 않고 ‘중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통해 새로운 경로를 모색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초 방중 이후 북한의 공훈예술단이 베이징에서 공연 행사를 열었다. 3년 전 베이징을 찾았다가 중국 측의 공연 내용 수정요구에 반발해 철수한 이후 이번에 다시 찾은 것이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예술단은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차례 공연을 했다. 27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관람하고, 이례적으로 리수용 단장과 면담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 자리에서 북·중 수교 70주년의 의미와 양국 간의 우의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공연이 열리던 시기, 베이징은 마치 주요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한 듯한 삼엄한 경호 분위기가 연출됐다. 공연 참관자들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에서 직접 관리했으며, 공연 티켓도 엄청난 가격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중국이 최선의 대우로 북한 예술 공연단을 맞이한 셈이다.

북중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진 것은 북한의 국가전략노선의 변화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및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건설 선언을 새로운 양국 관계의 출발점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향은 중국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북한이 핵개발에 매달려오는 동안 북한은 중국의 통제 밖에 있었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동북아시아에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등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아시아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중국이 북한의 국가전략노선 변경을 환영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중국이 북한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하려면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중국에 경제와 안보를 의존하는 ‘강력한 친중 국가’가 된다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미국에게 상당한 메시지가 됐다.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는 명분을 만들면서, 북·미 협상의 틀 안에서 풀지 못한다면 북한은 중국과 함께 가면서 비핵화를 추진하고 국제사회의 공론장에서 인정을 받으려 할 것이다.

중국이 대북제재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사실상 대북제재는 무너진다. 여기에 러시아까지 합세하면 대북제재는 의미가 없다. 올해 북·중 고위급 교류가 굉장히 활발할 것이다. 가장 관건인 것은 과연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탈하는가이다. 중국은 미국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도움 없이 절대 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선택은?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었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건 아니다. 지난 싱가포르에서의 1차 회담이 서로의 의지를 확인한 탐색전이었다면 이번 2차 회담은 구체적인 욕망을 드러낸 회담이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일괄타결을 원했고 북한은 단계적 해결을 원했기 때문에 쉽게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입장이 의심스럽다.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가 기만일 수도 있다. 북한을 힘으로 굴복시킬 것을 포기했는지도 의심스럽다. 2차 회담에서 드러난 ‘영변+α’는 이제 주요한 의제가 됐다. 이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기존의 영변 폐쇄만으로는 어렵고, 북한의 추가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되려면 비핵화 합의는 포괄적으로 하되, 이행 부분에서는 싱가포르 선언에서 합의된 4가지 조항을 동시적, 병행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

미국은 한 번도 리비아 모델을 포기한 적이 없다. 리비아 모델은 ‘선비핵화 후보상’을 원칙으로 한 일괄타결 해법으로 미국의 입맛에 가장 맞는 해법이다. 북한은 미국이 리비아 모델을 계속 강요할 경우, ‘빅딜’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다.[워커스 53호]

[각주]
* 권경애, 페이스북, 20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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