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워커스] 사전

[출처: US "Judge" magazine, 1896.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225895]

영어 ‘피플people’, 이탈리아어 ‘뽀뽈로popolo’, 프랑스어 ‘뾔쁠peuple’, 스페인어 ‘뿌에블로pueblo’ 등은 모두 인민, 민중, 대중, 민족, 국민을 의미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한다. 포퓰리즘은 인민주의, 민중주의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포퓰리즘의 인민, 민중은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다. 포퓰리즘 속의 인민 개념은 민주주의의 주체, 풀뿌리 민중, 주권의 담지자로서의 인민 개념보다는 우매한 백성이란 의미로서의 우민, 우중, 무리, 떼, 폭민 같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인민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나로드니키 운동이나 미국의 인민당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현대 용어 ‘포퓰리즘’이라는 말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7~80년대에는 포퓰리즘을 중우정치, 선동정치, 대중영합주의 등으로 번역했는데 지금은 그냥 ‘포퓰리즘’이라고 쓴다. 이런 이미지로 각인된 포퓰리즘은 타락한 민주주의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포퓰리즘이란 개념은 사실 인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다. 보통 중남미 지역에서는 포퓰리즘이 ‘진보’나 ‘풀뿌리’와 연결되기도 한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운동 형태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고 좌파적 지향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포퓰리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돼 왔고 무책임한 정책 남발이나 득표, 인기를 목적으로 한 영합 정치로서 민중선동(demagogos)과 포퓰리즘을 구분 없이 동의어로 쓸 때가 많다.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먼저 출현한 것이 극우세력인데다 파시즘의 기억 때문에 좌파와 중도파는 이 말을 더욱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포퓰리즘의 역사

한국에서 포퓰리즘 개념은 미국을 통해 수입됐고 처음부터 매우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우리가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들은 것은 주로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우고 차베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근까지도 포퓰리즘은 라틴 아메리카 정치사의 대명사였다.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 해방 운동과 그 정치지도자들에게는 흔히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라는 딱지가 붙었다. 냉전기의 ‘정치발전론’과 ‘근대화론’ 같은 정치이론은 광범위한 대중 운동 속에서 표출되는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성격을 은폐하고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통해 그것을 정치후진성의 표식으로 만들었다. 정치발전론은 포퓰리즘이 경제적·정치적 미발전 상태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후진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발전 국가의 선진 정치 모델은 안정적인 정당제와 의회정치가 잘 작동하며 성숙한 시민사회가 토론과 합의를 통해 의견을 대의기구에 전달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였다. 정당과 의회라는 대의 장치를 통해 수렴되지도 않고, 시민단체 등을 통해 숙고되지도 않은 채로, 제도 정치의 과정과 절차를 뛰어넘어 인민의 의지와 행동이 날 것 그대로 정치 공론장에 등장하는 것은 서구의 정치엘리트들에게 정치의 질서를 위협하고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포퓰리즘 문제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인 바로 그 ‘정치 후진국 현상’이 서구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득세하고 있는 것이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중부와 북부 유럽, 안정된 정당정치와 성숙한 시민사회로 자유민주주의의 교본과도 같았던 비교적 잘 사는 나라들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이 출현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사회적 통제와 금기 속에서 억제됐던 인종주의와 소수에 대한 차별이 다시 사회의 표면 위로 등장하고 폭력과 혐오 범죄가 ‘유럽 안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 충격적인 일이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극우 정당들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유럽의 전후 30년간의 경제 호황기가 막을 내리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민주주의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들이 붕괴되기 시작한 때다. 대처리즘이 확산됐고 자본주의적 경제 위기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대응은 그동안 유럽 정치의 안정 기반이었던 노동과 자본 간의, 시민과 국가 간의 사회적 합의들을 하나씩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이 시기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 등 각 나라의 좌파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타협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급에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1980년대까지 보잘것없는 군소정당으로 존재했던 극우 정당들이 세력을 확산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우파의 약진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우향우한 좌파 정당으로부터 이탈한 노동자 계급과 하층계급을 흡수하여 기반을 확장한 결과였다.

그 우파의 논리가 포퓰리즘이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좌·우파의 정치 경합이 기본적 정치 구도를 이뤄왔지만 새롭게 출현한 극우 정당들은 전통적인 보수정당이나 우파가 내걸어온 이념이나 가치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기성 정치권으로부터 홀대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우리’라고 호명했다. 하지만 정당정체성은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웠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연합(이전 국민전선)을 이끄는 마리 르펜은 낙태권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이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인종차별주의자다. 또는 정반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동성애와 낙태권에도 반대하며 사회보험 축소에 반대하는 국민전선의 지지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뒤섞임과 가치의 혼돈은 포퓰리즘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이다. 포퓰리즘의 논리는 공통의 가치나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결합되는 정치적 결사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극우정당들은 이념과 가치의 대결이 아니라 ‘우리 대 그들’이라는 포퓰리즘 대립구도를 사용했다. 이 구도 속에서 ‘우리’는 ‘국민(인민)’이고 ‘그들’은 ‘특권층(엘리트)’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이 구도를 그대로 차용하되 이슈를 바꾸는 것이다.

[출처: Museo Che Guevara.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988651]

좌파 포퓰리즘

좌파 포퓰리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좌파의 인민과 우파의 인민에는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확실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민 개념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이 말이 정치적 의미의 시민, 인민이라는 집합체(예컨대 ‘이탈리아인populo italiano’이나 ‘시민재판관(배심원)giudici populare’)뿐 아니라 하층 계급의 성원들을 동시에 가리켰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민중 출신의 인사 homme de peuple’, ‘서민 구역 rione populare’ 또는 ‘인민전선 Front Populare’ 같은 경우가 그런 용례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영어 ‘피플people’은 그보다는 다소 덜 차별적인 뉘앙스를 갖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유층과 귀족에 반대되는 ‘일반 서민 ordinary people’이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할 때의 인민주권론에 입각한 시민적 집합체로서의 인민과 풀뿌리, 민초, 민중 등으로 표현되는 소외된 집단으로서의 인민이 이중적으로 존재한다. 전자는 민족과 국민 정체성으로 수렴되지만 후자의 인민들은 국가 속에서 국가 없는 자들로 계급적 자기의식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현상 속에는 분명 후자의 인민이 결부돼 있다. 그렇다면 우파 포퓰리즘이 호명하는 인민이 ‘자격 있는 인민’으로서의 국민 혹은 완전한 시민권자이고 그래서 배외주의나 국수주의로 귀결되는 것인 반면 좌파 포퓰리즘의 인민은 반대로 하층 노동계급과 정치적 영역에서 소외된 소수와 약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시리자는 코뮤니스트 좌파를 뿌리로 하고 있지만 2012년 선거에서 포퓰리스트 전략으로 변화를 꾀한 후의 치프라스 연설에서는 ‘국민’이란 말을 끊임없이 언급했다. 2009년만 해도 치프라스는 국민이란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포데모스도 저항운동은 ‘아래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 la gente과 특권층 la casta’ 간의 갈등을 기본적인 사회 대립 구도로 설정했다. 하지만 결국 포데모스의 인민도 ‘우리 스페인 국민들’로 귀착한다.

좌파와 우파의 구도가 결국은 상층부의 엘리트들에게 한정된 것일 뿐이며 특권층에 자리한 좌·우파는 모두 인민들의 삶과 분리된 층위에서 자기들만의 이념적 대결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은 분명 타당했다. 하지만 인민의 삶과 좌파 정치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해 포퓰리즘이 정말 전략적으로 올바른 접근일 수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글레시아스와 에레혼은 포데모스의 목표를 사회주의가 아니라 북유럽식 복지국가에 더 가깝게 설정했다. 이 포데모스의 지도자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포데모스 모델은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 더 가까우며 다른 유럽의 좌파들처럼 신케인즈주의적 해결책을 통한 복지국가와 소득 보장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좌파 포퓰리즘’ 전략을 제안한 라클라우와 무페는 인민의 재구성과 민주주의 급진화 전략을 제안하지만 어떤 인민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급진화 전략이 ‘사회주의’와는 더 이상 관련성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민주주의 급진화가 자본주의 위에서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재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인민의 재구성 역시 ‘유럽의 시민들’을 재구성하는 문제가 된다.

인민의 재구성은 프롤레타리아의 재구성이어야

포퓰리즘 전략이 위험한 것은 언제나 여기에 누가 포풀루스인가 하는 인민의 자격과 범위가 문제 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그들’을 나눌 때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인민(국민-시민)이 아닌 자들’을 배제시킬 수 있는 위험성은 우파나 좌파나 다르지 않다. 아무리 인민을 통합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는 일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페 역시 좌파 포퓰리즘을 제안하면서도 최근 펴낸 책에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서유럽에만 한정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지금 포퓰리즘의 주요 이슈인 이민, 난민, 인종 문제가 이미 유럽적 문제로 한정할 수 없는 것이며, 내부의 복지국가를 위하여 외부의 식민주의를 용인한 사민주의적 합의의 결과라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런 노선이라면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분명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은 극우 집단의 정치세력화 전략이었다. 그들은 좌절한 인민의 분노를 낚아채서 분노의 방향을 엉뚱한 외부 집단으로 표출시켰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반정치 문화가 이 세력의 기반이었다. 이 우파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좌파의 전략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동일한 포퓰리즘 형식을 차용해서 좌파적 이슈로 인민을 집결하고 재배치하는 전략이 아니라 반정치적 포퓰리스트 선동과 노동계급 민중과의 결속을 해체하는 전략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민(데모스)의 재구성은 좌파 시민의 재구성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재구성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포퓰리즘이라 명명되는 현상 속에 존재하는 인민들이 포퓰리즘의 문법을 다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자생적 자발적 민중의 저항운동, 의지와 힘들, 정치적 의사 표현을 ‘포퓰리즘’이라는 인식틀로 묶어버리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구분해야 할 것은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이 아니라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다. 전자는 포퓰리스트 정치고 후자는 포풀루스의 정치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유럽의 경로보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워커스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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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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