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낙태 반대’ 정치세력화(1)

[워커스 이슈①]천주교의 낙태반대 운동사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낙태죄 존치를 주장해 왔던 진영은 이번 판결에 대한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유감, 혹은 규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낙태죄’를 포기한다는 항복 선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석에 따라 낙태죄 존치가 가능하다는, 이른바 ‘후반전’ 선언과 다름없었다.

실제로 판결 당일, 한국교회총연합은 성명서에서 “(헌재의 판결은) 낙태의 완전 허용으로 가지 않을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주일 뒤인 18일, 천주교, 기독교 및 보수단체 등 60여개 단체들도 “헌재는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형법의 낙태죄 조항을 고치라는 것”이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김천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해 “그 죄의 면제 조항이 모자보건법에 있는 것이 문제며, 모자보건법 제14조의 내용을 형법 낙태죄 조항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훗날 정권이 바뀔 경우 또 다시 뒤집힐 수 있는 ‘정치적 판결’이라는 경고도 담겼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은, 사실상 낙태죄 논란의 장을 국회로 옮긴 결정이었다. 종교, 보수 단체들이 위헌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판결 당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입장문에서 “태아의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법과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 입법부와 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이들은 향후 국회 입법과정에서 헌재 판결을 후퇴시킬 만한 압력을 행사하게 될까. 이들은 어떤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 왔을까. 《워커스》가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국내외 정치적 세력들의 관계를 살펴봤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1년. 당시 한국형사정책 연구원이 실시한 낙태죄 설문조사에서 국민 81.6%가 낙태를 허용하거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1) 낙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14.1%에 그쳤다. 같은 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참생명학교’가 신자 7백 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83.6%가 낙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2) 낙태를 죄악시하며,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천주교로서는 다소 ‘난감한’ 조사결과 였다. 그리고 2019년 2월 14일. 정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에서, 여성 75.4%가 현재의 낙태죄 처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낙태죄를 폐지해야한다는 국민 여론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무려 30년이 넘도록, 법과 제도는 국민 여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곧 소수의 정치적 집단이 법제도 개혁을 막아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천주교의 낙태반대 복음 운동

정부를 움직이는 천주교의 실력행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2017년 11월 26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고작 3일 뒤인 29일. 조국 민정 수석은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장인 이용훈 주교 등을 찾아가 ‘답변에 실수가 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천주교를 직접 찾은 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전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이기도 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한 것은 한국사회의 임신중지 논쟁에 가톨릭 교단이 가장 적극적 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1971년, 김수환 추기경의 ‘모자보건법 제정 반대’ 성명 발표를 비롯 해 수십 년간 낙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특히 교단은 낙태 문제에 있어 정치적 실력행사도 불사했다. 2017년, 천주교 평신도들로 구성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 협의회(회장 권길중)는 낙태죄 폐지 반대 서한을 현직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79명에게 발송한 바 있다.

‘낙태 논쟁’이 불거질 때 마다 천주교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것이 바로 ‘100만 서명’이다. 천주교 100만 서명의 역사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에서는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조항을 없애고, 형법 135조에 허용규정을 포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100만 서명운동에 나섰고, 결국 1994년 국회 본회의 상정이 유보됐다. 당시 가톨릭 교단은 ‘낙태는 살인 행위’라며 107만 명의 서명을 모아 국회에 제출했다. 2000년에도 청주교구를 중심으로 모자보건법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이 조직됐다. 가톨릭 교단은 124만 명의 서명지와 함께 모자보건법 폐지를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모자보건법 제정 30주년(1972.3.28.일 제정)을 즈음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도 100만 9천여 명의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모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서명운동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가 주축이 됐다.

가톨릭교회는 낙태를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찬물’을 끼얹어 왔다. 한국에 응급피임약 판매가 허용된 2001년부터 천주교는 응급피임약의 국내 시판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보건복지부, 대한약사회와 3개월 여를 치열하게 대립한 끝에, 결국 응급피임약을 전문 의약품으로 유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식품의약품 안전처가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려 했을 때도 가톨릭교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3년간 유예한 뒤 검토키로 했으며, 유예기간을 거친 뒤에도 전문의약품으로 유지됐다.

가톨릭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법

현재 국회의원들의 가톨릭 신자 모임인 ‘가톨릭신도 의원회’의 규모는 5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14일, 염수정 추기경은 국회에서 열린 국회가톨릭신도 의원회 미사를 집전했고, 강론을 통해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미사 후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면담까지 나눴다. 문희상 국회의장 역시 가톨릭신도 의원회 회원이다. 가톨릭신도의원회 소속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낙태죄와 관련한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인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10월,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낙태문제, 안락사 문제 등 가톨릭 정신에 어긋나는 법이 제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추기경님이나 신부님들이 저희를 보면 말씀을 많이 해 주신다”며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 각별히 더 신경을 써서 그런 생명을 경시하는 법이 제정되지 않도록 저희가 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법재판소 판결 전인 3월 1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에 참석해 “우리 사회에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퍼져나갈 수 있는 정치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낙태 반대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회생명존중포럼 소속 의원들이 마련한 ‘생명문화교육지원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나경원 새누리당 대표와 국회생명존중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럼 소속 의원들은 천주교 신자들로 구성 돼 있다.

해당 법안은 낙태와 자살, 출산률 저하 등의 생명 경시 풍조를 바꾸기 위해, 국민에게 생애 주기별 생명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럼 소속 의원들이 가톨릭교회와 1년여 간의 협의 끝에 마련한 법안이다. 법안 발의자 명단에는 새누리당 나경원 대표, 경대수, 김세연, 원유철 의원 등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이종걸 의원 등, 그리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 총 43인이 올라와 있다. 국회생명존중포럼이 마련한 법안 발표 간담회 자리에는 염수정 추기경과 구요비 서울대교구 생명윤리 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낙태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 교구 생명위원회 산하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회(자문위)’ 에는 윤리신학자, 법조인, 의학자, 철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구요비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헌법 재판소를 직접 찾아 ‘낙태죄 폐지 반대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 자문위에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변호사회 소속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자문위에서 법률부문 자문을 맡고 있는 이건리 변호사는 20여 년 간 검사로 재직했던 인물로, 문재인 정부 들어 굵직한 직책을 맡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 후보 명단에 올랐으며, 2017년에 출범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에 참여해 5.18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 의혹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문 대통령이 그를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프로라이프 변호사회 회장이자, 자문위에서 법률부문 자문을 맡고 있는 윤형한 변호사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윤 회장은 헌법 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에는 낙태죄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으로서 ∆결정가능기간’(낙태 허용 기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할 것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구체화하고 확인 및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할 것 ∆유아양육지원법, 남성책임법, 임신갈등지원법 등 모성과 태아 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에 계속 힘쓸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소속인 최안나 국립의료원 난임센터장도 임신중지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다니는 대표적인 의사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진오비)’ 대변인을 거쳐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발족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인 낙태 반대 활동에 뛰어들었다.

낙태 반대 집회 ‘생명대행진’, 오웅진 신부의 지원 덕

2012년부터 프로라이프 의사회를 중심으로 매년 ‘생명대행진’ 행사가 개최된다. 이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프로라이프 청년회, 프로라이프 대학생회, 낙태반대운동연합, 생명존중시민회의, 꽃동네 유지재단 등 범 낙태 반대 운동 진영이 결합하는 대규모 행사로 자리 잡았다. 생명대행진은 1970년 미국에서 시작한 대표적 낙태 반대 운동이다.

생명대행진이 이제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은 꽃동네 설립자로 유명한 오웅진 신부의 지원 덕이 크다. 차희체 프로라이프 의사회 회장은 오웅진 신부가 ‘생명기금’을 기부해 처음 6번의 생명대행진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규모 장애인 집단 시설인 꽃동네는 장애인에 대한 각종 인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오웅진 신부는 과거 꽃동네 운영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으며, 2007년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련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

낙태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오웅진 신부는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12월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다. 지난 2017년 꽃동네 41주년 기념식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오웅진 신부님은 가난했기에 의로운 일을 하신 분으로 오 신부님과 저는 이념과 지역, 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특히 낙태 반대 운동을 위해 함께 일하기도 했다”고 오 신부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오웅진 신부는 생명대행진을 지원하며 낙태 반대를 역설하는 한편, 사후 피임약 논란에도 뛰어들어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내한 당시에는 꽃동네를 찾은 교황과 태아동산(태아동산의 나무 십자가는 낙태된 아기들의 무덤을 상징)을 둘러보고 기도를 했다.

한편 천주교에서 시행하는 성교육의 내용적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공교육 현장에서 실시되는 성교육에서 순결을 강조하거나, 임신중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르치고, 트라우마를 주입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산하 ‘한국틴스타’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빌링스의 배란법을 기초로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지식적, 영성적 측면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 방법은 여성의 배란전후에 분비되는 자궁경부의 점액을 관찰해 가임기와 불임기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권장하는 피임법이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혜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실상 금욕만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피임법인데 현실적이지 않다. 콘돔이나 피임약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배란주기법을 가르치는데 이것의 실패율을 생각하면 무책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며 “이로 인해 임신중지나 피임에 대한 신자들의 죄책감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책임과 태도에 대해서는 무시되고, 여성의 순종과 희생만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커스 54호]

<각주>
1) 한겨레, 1991.03.26.자, 〈“낙태 허용” 국민 82%가 찬성〉
2) 동아일보, 1991.12.20.자, 〈천주교 신자 83.6%가 “낙태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