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독재 끝낸 알제리, 지연된 혁명의 미래

[기고] 아랍의 봄이 연 혁명의 틈새, 어디까지 나아갈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2019_Algerian_protests]

낯선 알제리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 북부인 북아프리카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 나라이다. 아프리카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이며 4,200만의 적지 않은 인구가 살고 있다. 석유와 가스 분야가 경제의 1/3을 차지하는 산유국으로 아프리카 대륙 3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이며 세계적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아온 나라는 아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에도 같은 북아프리카 지역에 속한 튀니지나 리비아와 달리 외부세계에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랬던 알제리가 역시 최근 ‘아랍의 봄’에서 다소 빗겨나 있던 아프리카 동부지역의 수단과 함께 장기집권한 지도자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정치적 격랑에 휩싸였다. 물론 아랍의 봄이 보여주었듯이 지도자의 교체가 곧바로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알제리 시위

알제리에서는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A. Bouteflika) 대통령의 네 번째 임기가 끝나 4월 18일에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2월 10일 부테플리카가 5선에 출마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러나 부테플리카는 2013년 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이후 대통령직 수행이 어려웠다. 이러한 그가 다시 출마한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로 받아들여졌다. 이 발표에 항의하는 최초 시위는 2월 16일에 열렸지만 2월 22일부터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결국 부테플리카는 3월 11일 출마 포기선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안에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는 4월 27일 종료되는 자신의 임기를 연말까지 연장하는 것이라 시위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4월 2일 부테플리카가 사임하게 된다. 4월 9일 상원의장인 압델카데르 벤살라(A. Bensalah)가 대통령 직무대행이 되었고 이제 9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 방식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시위가 발생한 이래 처음으로 경찰의 무력진압이 등장하게 된다.

시위대는 알제리 국기와 함께 다양한 구호가 담긴 현수막과 피켓을 들었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었다. “학살 권력” “마피아” “도둑놈 당신이 나라를 먹었다” “알제리는 공화국이지 왕국이 아니다” “5선은 없다. 부테플리카!” “그들은 백만장자들이고 우리는 수백만이다”. 부테플리카의 퇴진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부테플리카 없는 선거를 요구했다. 그런데 정부는 선거 없는 부테플리카를 주었다” “네 번째 임기의 연장은 있을 수 없다” “제2공화국이 충전되고 있다. 현재 70% 정도 충전되었다” “우리는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포맷을 원한다”.

이 구호들에서도 드러나듯이 시위의 배경은 주로 정치적인 문제였다.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환멸, 한계에 다다른 지배체제를 무리하게 유지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이 표출된 것이다. 이와 함께 사회경제적 요인이 저항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아랍의 봄 당시만 해도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알제리의 석유수입이 늘어났고 이를 토대로 사회 제 분야에서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2014년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유가하락을 배경으로 그동안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늘렸던 사회지출이 줄어든 것이다. 기초생필품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국민의 구매력이 감소했다. 이러한 생활상의 어려움이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다.

지연된 혁명

많은 사람들은 “왜 시위가 이제서야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을 가진다. 아랍의 봄 당시를 회고해보면, 알제리에서도 반정부운동이 전개됐고 1992년 내전 발발 이후 내려져 있는 계엄령이 해제되는 성과도 있었지만 주변국과는 달리 대규모 시위나 폭력적인 양상이 전개되지는 않았다. 당시 알제리는 걸프만 산유국들과 함께 경제적 양보조치를 통해 현 체제를 지켜낸 유형으로 분류됐다. 소위 ‘사회적 평화(social peace)’를 재정지출로 달성한 것이다.

이번 시위에 버금가는 전례를 찾자면 30년 전인 1988년 10월의 반정부시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상황을 보면, 수도 알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발생해 비공식 추산 6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봉기의 성과로 다당제가 허용되고 1990년 6월 12일 치러진 최초의 자유로운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압승을 거두게 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정권과 군은 지방선거 2차 투표를 취소하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지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 간의 내전으로 20만 명이 사망한다.

그 이후의 오랜 공백을 이해하기 위해선 저항을 막아온 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권의 통치기제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1960년대 신생국가 알제리를 이끌었던 민족해방전선(FLN)은 독립운동의 경험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어 장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 동일한 민족해방전선이 1990년대 이후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을 척결한 내전의 경험을 활용해 동력이 떨어진 기존의 정당성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정권을 이끌었던 것이 얼마 전 사퇴한 부테플리카였다. 민족해방운동의 아우라를 넘어서기 어려웠듯이 ‘퇴행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을 몰아낸 영웅을 비판하는 것은 금기에 속한 것이었다. 또한 내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치 갈등을 기피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강력한 저항운동을 어렵게 한 보다 오래된 요인을 찾자면 사회통합이 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알제리인들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라고 평가되었다. 강한 식민지배에서 그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일찍이 전통적인 국가기구와 사회의 유대가 파괴됐고 민족주의 운동 역시 오랫동안 구심점을 가지지 못했다. 인구 구성에 있어서도 베르베르 문제와 같은 종족 갈등이 강하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관념은 지난 두 달 동안의 일들로 인해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는 것이 됐다. 이제 역으로 알제리의 강력한 저항운동을 가능케 한 요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드물게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경험, 비동맹운동의 선봉에 섰던 경험, 북아프리카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경험 등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망

아랍의 봄의 경험은 성급한 전망을 경계하게 한다.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이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지 8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명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아랍의 봄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제문제 전문가 질베르 아슈카(G. Achcar)가 진단하듯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 장기적인 혁명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알제리, 수단에서 장기집권한 대통령이 퇴위한 것은 이러한 경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위 초기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망이 제시되었다. 첫째, 과거 쿠바에서처럼 권력을 동생인 사이드(Saïd)에게 이양하는 방식, 둘째, 시리아의 길, 즉 현재까지 평화로운 방식으로 전개된 시위가 특히 이슬람주의자들의 참여로 폭력적인 양상으로의 전환. 셋째, 이집트의 길, 즉 정권이 계속 버티면서 시위가 격화되고 군이 개입하는 것. 넷째,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부테플리카 진영이 시간을 벌기 위해 헌법에 따르는 것, 적어도 현재로서는 네 번째 시나리오에 따라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시위 양상에 따라서는 군의 개입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정세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번 시위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의 부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의 사례, 또는 1979년 이란혁명의 사례를 떠올리며 민중들이 이루어낸 혁명의 과실을 이슬람주의자들이 거두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전망을 한다. 물론 알제리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 어느 지역의 이슬람주의자들보다도 극심한 탄압을 경험한 알제리의 이슬람주의자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하거나 또는 생존을 위해 친정부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중의 신뢰를 잃었고 이번과 같은 반정부운동에서 이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알제리 안팎에서 기대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혁명이 뒤늦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지연된 혁명이자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직후부터 시작된 민족해방전선(FLN)의 57년 권력 독점, 이번 반정부운동의 목표는 바로 이 극소수 파벌에 의한 독점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1962년 132년간의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던 것처럼 57년의 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