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에 대한 진짜 뉴스를 들을 차례

[워커스 이슈①] 윤정원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인터뷰

여성의 임신중지를 반대하는 종교계와 시민단체는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을 호소한다. 임신중지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쏟아내는 각종 자료는 이들의 소중한 근거가 된다. 물론 이 자료들 중 상당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가짜뉴스거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유통기한이 지난 뉴스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이자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윤정원 의사를 만나 사실 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물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 씨는 성폭력피해자 및 성소수자 진료를 맡으며 여성주의 의료에 힘써왔으며, 낙태죄 폐지 등 여성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미프진은 여성이 ‘임신중지’의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의 변화”

Q. 약물적 임신중절에 대한 우려들이 많다. 드물지만 일부에선 ‘독약’ ‘청산가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흔히 ‘미프진’으로 이야기하는 약물은 얼마나 안전한가?

A. 프로라이프 쪽에선 임신중지가 폭력, 위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안전한 임신 중지가 없으니 어떤 임신 중지도 안 된다는 식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임신중지에 대해 도덕적-비도덕적, 합법적-비합법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의료서비스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신중지 과정이 안전하지 못하면 임신중지 당사자의 합병증과 사망이 증가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임신중지는 의료서비스이자 공중의료보건의 중요한 의제다. 미프진은 WHO에 의해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은 약물이다. 임신중지 성공률은 90~98%, 합병증 발생률은 0.1~1%다. 미프진이 유통되는 미국에서 인공임신중지에 의한 사망률은 비아그라를 먹고 사망하거나 대장내시경을 하다 사망했을 때보다 낮다.

Q. 미프진 도입이 시급한 요구로 등장하고 있다.

A. 미프진을 두고 여성들이 직접 임신중지의 주체가 되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공식적인 의료 패러다임이었다. 약이 도입되면 약을 먹을지 말지 여성이 결정한다. 의사의 역할은 부작용이나 합병증, 사후 관리를 조력하는 것에 머문다. 개도국 같은 경우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료적으로 훈련된 조산사나 재생산 활동가들이 약물을 직접 배급한다.

사실 그동안 출산, 임신중지를 비롯한 여성의 재생산이 의료권력으로 들어가 계속 상업화된 측면이 있었다. 여성운동 진영에서 인류 역사상 여성 인권 증진에 가장 큰 도움을 준 발명품으로 피임약을 꼽는 것처럼 유산유도약을 꼽는 재생산 활동가들이 상당히 많다.

임신중지의 진짜 후유증은 ‘임신중지를 거부당했을 때’ 발생

Q. 여성이 겪는 위험한 임신중지의 경험을 두고, ‘지금이 어느 때인데 설마’라는 반응도 나온다. 프로라이프 소속 한 의사는 “70년대 초 미국에서 낙태 합법화 추진 세력이 들고 나온 고리타분한 이야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어떤가?

A. 해외의 안전한 임신중지 사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위험한 임신중지가 이뤄지는 나라다. 의사가 현금만을 요구하고, 수술 후 어떤 상황이 와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제대로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당일 퇴원을 강요하고, 응급상황이 발생해 큰 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할 땐 동행하지 않거나 의료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지 않기도 한다.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이 지체 되는 상황 자체가 여성에게 최선의 상황은 아니지 않나. 그쪽에서 이야기하는 독초와 옷걸이를 이용한 임신중지 만이 위험한 게 아니다. WHO에서도 위생적 환경, 훈련 받은 의료인, 정해진 프로토콜 준수라는 세 개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임신중지만이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출처: 박다솔 기자]

Q. ‘인공 임신 중절’ 후의 후유증을 강조하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천주교에선 임신 중지 경험이 있는 신자들을 상대로 정신적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실제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후유증이 많이 보고되나?

A. 임공 임신 중절에 관한 흔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쌓인 대규모 데이터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한 여성이 가장 흔하게 보고하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죄책감, 슬픔 등의 감정도 있지만 오히려 외부에서 이를 주입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설문 항목을 보면 임신중지 경험 여성에게 부정적 질문만 했다. 임신중지를 경험하고 힘들어하는 여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봐야 한다. 오히려 인공임신중절을 거부당한 여성들이 불안감, 낮은 자존감, 삶의 만족도 저하와 같은 부정적인 심리경험에 처할 위험이 더 높다는 2017년의 연구 결과도 있다. 임신중지 여성과 아이를 위로한다는 종교기반의 천도제, 자조집단의 경우 상당히 시장화 돼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Q.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성교육 현장에 상당히 많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A. 낙태반대운동연합 수입이 기독교를 통해서도 들어오지만 이런 성교육과 상담소 활동도 메인 수입이라고 알고 있다. 여성단체들도 성교육 활동을 하지만 쪽수에서 밀린다. 이런 곳에서 하는 성교육 내용을 보면 비디오를 보면서 임신중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르치고, 트라우마를 주입시키는 식이다.

Q. 낙태죄 유지 쪽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면 결국 남성들은 여전히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실제로 임신중지과정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여성들이지 않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A. 양육비 대지급제도 같은 남성의 책임은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여성의 삶과 몸에 대해 처벌하지 말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남성의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처벌로 나아가는 것에는 반대한다. 원치 않은 성관계, 성폭력, 피임 교육의 부재, 잘못된 상식 등은 공중보건의 측면에서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안전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해야”

Q. 낙태죄를 폐지해야한다는 구호 중엔 ‘국가는 내 자궁에서 손 떼’라는 구호들도 있었다. 본인의 저서에서 이 구호 역시 적절치 않다는 문제의식을 언급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나.

A.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자, 여성의 권리와 자율성이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씀드렸다. 불법화돼 있는 나라들에선 임신중지 약물을 보급하는 위민온웹, 세이프투추즈 등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야할 부분은 더 많은 사람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 안전하게, 체계적인 공중보건 시스템의 모니터링 하에서의 임신중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적인 틀에서 데이터가 쌓일 것이고 임신중지의 방법은 더욱 개방될 수 있다. 안전성이 쌓이면 나중엔 정말 약국에서 약을 사게 될 날도 오리라 본다.

Q. 앞으로 국가가 임신중지를 어떤 식으로 보호해야 할까?

A. 녹색병원이 성폭력피해자 전담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어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합법적 인공임신중지는 보험 적용도 되고, 국가에서 정해놓은 비용만 받는다. 임신 1 삼분기 이내의 인공 임신 중절 비용이 10만 원 정도다. 시세가 50만 원 정도 한다고 하면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과연 10만 원 받고 할 병원이 있을까 싶다. 투입되는 의료인력, 장비 기구, 입원료 등을 따져보면 그렇다. 이 수가로는 할 수 없다. 합법화 이후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 문제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잘 조정을 해야 한다.

Q. 이런 비용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진 않을까?

A. 보험수가는 보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하는 것이라 사회적 합의로 하기엔 어렵다. 해당 시술에 드는 노력이나 시간, 약물과 비슷한 시술과 비교해서 책정을 하는데 정관시술과 비슷하게 판단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이 비급여화 등을 요구하고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시그널은 보내야 한다. 2016년 검은시위 때처럼 여론은 중요하다.

임신 주수 제한? 우리의 모토는 ‘가능한 빨리’, ‘필요하다면 가능한 늦게’

Q. 국회에서 또 다시 임신 중지가 가능한 주수를 제한하는 법안을 냈다. 임신 주수의 개념은 얼마나 정확(혹은 부정확)하고, 절대적(혹은 상대적)인가?

A. 임신 1분기엔 초음파로 95% 이상 정확하게 주수체크가 가능하다. 그런데 가령 23주 만에 병원을 처음 방문한다면 여러 상황에 따라 주수에 오차가 커진다. 산모의 영양상태가 불량하거나 질환이 있으면 태아가 작을 수도 있고, 당뇨 산모의 경우엔 클 수도 있다. 주수 예측은 기술 발달에 따라 달라지고, 오차가 있을 수 있다. 프로라이프에서도 13주 6일과 14주 1일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동의하는 바다. 우리의 모토는 ‘as early as possible’, 가능한 빨리 하는 것이 좋다는 것과 ‘as late as necessary’ 필요하다면 가능한 늦게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장 진전된 안을 내놔야 할 정당에서 처벌조항이 남아있는 법안을 내서 실망스럽다. 정의당을 더 왼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몇 차례나 사전 미팅을 진행하고, 필요하다는 자료들을 모두 공유했는데 의아하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의사 벌금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외국법들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외국법들에 임신중지 조건이 명시돼 있는 것은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다. 늦은 시기일수록 더 위험해지기 때문에 입양과 같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건복지부, 관료주의의 끝판왕”

Q. 국회에선 비판을 받는 법안이나마 헌재 판결에 대해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정부 부처는 아직 조용하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이 이 시기 나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A. 보건복지부의 피임급여화,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폐기 등 사실 할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직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 헌재 판결 전에는 판결이 아직 안 나서 못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또 공을 국회에 넘기고 있다. 최대 2020년 12월 31일까지 의료 현장의 진료 공백에 대해선 어떻게 할 건가 왜 말을 못하나? 프랑스에서는 시몬베이유에 의해 낙태죄가 폐지됐을 때 1년 시범기간에 비범죄화를 선언하고, 임시법을 시행했다. 그런 식으로 임시법을 공표하든가, 진료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방안을 내놓든가,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지라도 표명해야 현장이 혼란스럽지 않을 텐데 직무 유기처럼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헌재에 의견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빻은’ 것이라도 냈고, 국가인권위나 여가부도 의견을 제출했다. 보건복지부는 관료주의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 같다.

Q. 국회가 성급히 낸 안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나왔다. 국회 법안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방법으로 발의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나.

A. 사실 기대 없다. 2020년까지 법안을 만들지 못하면 아예 법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는 건데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캐나다가 그런 상황인데, 주수제한도 없고 사유제한도 없다. 여성과 의사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1삼 분기 내 임신중지가 93% 정도이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임신중지율 폭등도 없다.

Q. 임신중지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데 용어의 정리나 필요한 활동들은 없을까?

A. 법과 제도가 바뀐 이후에도 상식이나 문화 같은 하부구조가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이나 댓글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게 느낀다. 용어 역시 중요한데 대중이 쓰면 쓸수록 학계도 바뀐다. ‘낙태’라는 말 대신 최근 들어 ‘임신중지’를 많이 쓰지 않나.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양심적 거부’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표현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신념에 따른 거부’나 ‘거부권’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사실 가톨릭계는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할 법적인 근거도 없다. 의료법 15조에서 진료 거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WHO에서도 응급상황이나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때 꼭 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의료인 개인은 거부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은 거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톨릭계 병원에선 이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계 병원이 전국 4, 50개 되는데 상당히 많은 수다. 한국은 다른 병원을 찾기가 쉬워서 이제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 같은 경우 병원에 한 번 가려면 3~4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하기도 해서 한 병원에서 거절당하면 그날 하루를 공치게 된다. 한국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접근성의 문제와 신념의 문제가 충돌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