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선택한 사람과 가족하고 있습니까?

[워커스 인터뷰]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뷰

정상가족 신화에 대한 오랜 문제제기는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가족의 비정상성에서 탈출하기 위한 시도들은 꾸준히 이어졌다.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내일의 종언》에서 이미 전통적 가족주의 체제는 붕괴됐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에 따른 정치경제와 사회정책 체계의 총체적 전환을 시급히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이미 10여 년 전 부터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주장하며, 법과 제도의 전면적 수정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워커스》가 가족구성권연구소의 나영정 연구위원을 만나 다양한 가족 형태의 보장이 어떤 점에서 중요하고 시급한지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연구위원은 장애여성공감, 성과재생산포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박다솔 기자]

‘가족구성권’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가족을 형성할 권리다. 가족 구성은 누구나 차별 없이 원할 때 구성하고 해소돼야 하며 그 형태나 기능에서도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이 때 차별이란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가족 내 차별 등을 말한다. 과거엔 인종 간 결혼이 금지됐고, 한국에선 동성 커플의 결혼을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에 의해 결혼이 결정되거나, 결혼 과정에서 여성의 결정 권한이 박탈당하는 것, 이혼 의사가 있으나 이혼하지 못하는 것 등도 가족구성권을 침해받는 것으로 본다. 호주제 폐지 이후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이하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는데 단지 제도 결혼과 혈연을 통한 가족 구성이 아닌, 구성론적 관점에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구성으로서의 가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상정해 온 정상적 생애주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도 많고, 서른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가족구성권 연구소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서른 즈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더 넓은 곳으로 집을 옮긴다’는 국가가 설정한 시민의 정상성에 문제를 제기 하고 있다. 결혼을 하면 드디어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제 신화다. 내가 누구이고, 누구와 살 건지가 핵심이다. 국가와 사회도 이 관점에서 가족을 바라봐야 한다. 낯설게, 새롭게 보기 시작해야 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시작이 된 연구모임이 2006년 처음 시작됐는데 그때와 지금, ‘정상가족’에 대한 기존 담론이나 제도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호주제 폐지는 가족 내에서 부부가 형식적으로 평등한 상태가 됐다는 것, 딱 그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공식적으론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변했는데 정치권에서 의제로 제기한 적도 없다. 사실 여성운동 진영에서 국회의원이 많이 배출돼 가족법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기대했지만 법안이 발의된 게 없다.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지만 좌초됐다. 호주제 폐지와 동시에 결혼 가족과 결혼하지 않은 가족의 평등을 당장 시작했어야 했는데 계속 묻히는 바람에 지금의 현실이 나타났다.

전통적 가족을 강조하며 생긴 문제는 무엇인가?

연구모임에서 2008년에 제도 밖 가족들의 차별을 조사 하고 정책대안을 낸 적이 있다. 파트너를 직장 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올릴 수 없고, 수술동의서에 사인하지 못하고 장례 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성커플의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문제들이 나왔다. 제도 밖 가족들은 주택 공급과정에서 배제되고, 대출 과정에서 받는 불이익도 문제지만 절박한 순간에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고통 아닐까 싶다. 가령 해외에서 재난이 있었을 때 외교부를 통해 가족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것도 제도 가족만이 할 수 있다. 지금 연구소는 한국의 모든 법안에서 제도 밖 가족을 차별하는 사례를 리서치하고 있다.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못한다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나온 지 벌써 15년 정도 됐다. 제도 결혼이 자기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생각을 여성이 먼저 했지만 이제 청년 남성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동시에 개인의 삶은 위기에 몰리고 있다. 가족 내에서 돌봄을 주고받지 못하고, 친밀감을 나눌 수 없으며, 고독사가 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정상가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결혼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자꾸 결혼·출산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니까 코웃음 밖에 안 나는 거다.

선진국에는 동거 문화가 잘 정착된 것 같다

동거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배제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가 동거 커플을 인정하고 제도 결혼 가정 수준의 혜택을 주고 나서 어떤 긍정적 변화가 있었는지 이야기해도, 한국에선 안 통한다고 입을 막는다. 한국에서 그렇게 행복할 리가 없다고 한다. 이 불안과 불행의 정동이 헬조선과 통하는 것 같다. 주거불안,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며 자기를 돌보는 기술이 떨어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를 존중하지 못하면서 불법 촬영 등의 문제가 함께 터지는 것이라고 본다. 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을까?

장애계에서 이야기되는 ‘위험의 존엄성’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아동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규정하면서,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해로운 것을 할 기회를 박탈한다.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가능성과 그 외의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지 않나. 위험한 경험, 나쁜 경험을 하더라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청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같다.

청년들조차 관련 이슈에서 보수적일 때가 많다

최근 우리가 동거하는 청년 커플들과 인터뷰 한 기사의 댓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동거는 무책임한 일이다. 오직 섹스를 위한 것일 뿐이다. 결국 여성에게 불리한 일이니 정신차려라’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한국 사회가 성인 간의 성애적 결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 결혼은 성애적 결합을 전제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 공동체로 인식된다. 이에 반해 동거는 낭만적, 욕망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현실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된다. 결혼 생활이 현실이듯, 동거 생활 역시 현실인데 말이다. 이런 편견이 강화되면 결혼해도, 동거해도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동거하는 사람들에게 찍히는 성적인 낙인이, 동성 커플의 낙인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합법섹스와 불법섹스를 나누면서 국가는 임신, 출산을 단속해왔다. 비록 실정법에 걸리지 않더라도, 결혼 관계가 중심이 되지 않은 출산과 섹스는 문화적으로 범죄시했다. 성에 대한 정치적 관점이 모든 논쟁의 기저 안에 있다. 낙태죄가 비범죄화 된 상황이라면, 그 다음 어떤 섹스를 보장하고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진짜 논쟁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국가는 동거 가족에 대해선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이다. 동거 커플이 국가의 보호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동거 커플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달라져야 가능하다. 국가는 우선 ‘불쌍하니 보호해야 한다’라고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동거 관계도 좋은 관계다. 하나의 좋은 선택지다.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지 고민해보자’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좋은 논쟁을 하고 싶다. 그 가치 논쟁이 결국 성과 관련된 관점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독립, 주체에 있어서 경제적인 조건이 발목을 잡는다

아직도 ‘자립’이 곧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부를 이전할 때 결혼자금 명목으로만 부를 이전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부모님은 이숙경의 〈담배 피우는 아줌마〉라는 책에서 결혼하는 딸에게 혼수를 해주지 말고, 집값의 반을 해주라는 글을 보시고 ‘지금 전세금을 줄테니 독립하고, 종잣돈으로 살라’고 해주셨다. 그래서 그 돈으로 집을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집을 나가면 문란해지고, 흠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지 않은가. 청년들은 낙인과 리스크를 안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 것인지 혼란스럽고. 혹은 비혼을 결정한 청년들은 대출부터 시작해 인생을 살기 위해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이 기로에 서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월세를 아끼기 위해 동거나 룸메이트를 구해 함께 살기도 하는데 법적인 보호도 없고 낙인이 커서, 어떤 사람에겐 좋지 않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를 이전해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지금 베이비붐 세대들은 위로는 부모를 부양하고, 밑으로는 자식을 부양하는 이중부담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의 3, 40대는 이전할 부조차 없다. 더 이상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기에 결혼을 두고 일어나는 허락과 협상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때쯤이면 결혼이 친족의 결정, 친족 간의 행사가 아닐 것이다. 결혼한 신혼부부가 1억 원의 자산으로 시작해, 자식을 낳고, 주택을 넓혀 나가는 식의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지금의 소득 분배 시스템이나 주거 공급 시스템, 의료서비스를 획기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때가 코앞으로 왔는데 너무나 조용한 게 불안하다.

다양한 가족 관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함에도, ‘생활동반자법’ 제정이나 친족 중심의 ‘의료법’ 개정 등은 왜 진척되기 어려운 걸까?

보험 대상자가 늘어난다는 생각에 비용증가를 우려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생활동반자 등록법이 만들어지면 동성애가 허용된다는 사람들 때문에 발의를 못 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건 실제로 돌봄과 주거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독사 문제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무너져서 생기는 사회적 부담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회적 갈등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처벌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국가는 사회적 안전망 미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침해하면서도, 실제로 시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건강, 안전, 주거에 대한 권리가 기본권이다. 그리고 개인이 누구랑 어떻게 살 건지는 자유와 선택의 문제로서 둘 필요가 있는데 개인이 어떤 형태로 사는가에 따라서 기본권에 접근하는 통로를 열거나 닫고 있다. 주거권이라고 했을 때, 온전히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대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까지다.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 정도다. 이것이 총체적 위기의 원인이라고 본다.

듣고 보니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정말 모두의 문제다. 내가 누구를 부양하고, 누구에게 부양받을 수 있을 것인가는 모두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조직된 사람들의 목소리 안에 가족 이슈가 어떻게 포함돼 있는 지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 의제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수록 자기 문제로 연결이 된다. 오랫동안 시설 문제를 제기했던 장애계는 ‘누구와 함께 살 지는 내가 결정하겠다’고 요구하고, 노동계는 일·가정 양립이 라는 여성 노동자의 이중 부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몇몇 NGO에서 비혼 수당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시화하고 함께 얘기할 수 있길 바란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 논의를 함께 하지 못하거나, 혹은 지체하는 부분이 있나?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가족정책에 사실혼도 포함하겠다는 업무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진보진영 남성들이 큰 변화라고 얘기를 했다. 사실혼은 그동안 꽤 보호받고 있었지만, 공식화가 늦었을 뿐이다. 거기서 동거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진영 내 가족 다양성에 대한 생각도 지체된 측면이 있다. 진보적 의제와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진보사회를 그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계속 빠뜨리고 있었다. 대안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지금 문제로 드러나지 않나. 청년들은 고통 받고, 일부 ‘정상 가족’과 국가, 기업만 웃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지난해부터는 ‘탈연애 선언’도 눈에 띈다

조심스럽게 코멘트 하자면, 장애여성 문제를 떠올렸다. 연애가 금지되거나, 박탈된 사람들은 탈연애 선언과 같은 흐름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떠나는 게 중요하지 않나. 탈연애 선언이 이성애, 비장애 여성들이 요구받았던 규범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소위 정상인 여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여성이 연애의 규범에서 탈피한다고 하면 그 규범에서 박탈된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탈’할 것인가.

다양한 가족이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고, 사회적으로 안정되기 위해 법적 제도 말고 필요한 조건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양쪽의 문제다. 우선 실질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호하는 관계들을 인정하는 것. 또 단지 가족이란 이유로 과도하게 책임을 부여 받고, 책임지지 못하면 가족이 해체돼 길거리에 나앉는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해결하는 문제가 있다. 모든 책임과 의무를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또 사회 취약층을 위해 쓰이는 돈이 세금 낭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세금을 조금 더 내서 소외된 사람이 부양과 돌봄을 받고, 그래서 사회적 리스크를 줄여 나가는게 훨씬 더 안심되는 사회이지 않나.

각종 사회 문제를 가족 형태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를 비난하는 논리 안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근거가 가족의 출처가 되곤 한다. 이혼 가정이다,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 미혼모의 자식이다, 라는 식인데 제발 문제를 가족의 형태로 환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평등 해소 방향 안에서 가족 정책이 놓여야 한다. 가족에 대한 매력 어필이 가족 정책이 아니다. 인구정책, 고용정책, 주거 정책과 결합된 의미 있는 가족정책이 나와야 한다. [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