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을 지켜라

[기고] 5.11 비정규직 대행진을 앞두고

4월 13일 특수고용노동자 2만 명은 “노동3권 완전 쟁취”를 외치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후보시절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용자 대항권 등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3월 25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규모 추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는 221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 2천709만 명의 8.2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일하는 것은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음에도 사업자로 분류돼 노동3권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후, 건강, 산재위험에 대한 보장에서 배제돼있다. 사용자는 노조법 2조를 근거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를 부정하고, 단체행동도 ‘불법’으로 처벌받기 일쑤였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째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은 늘어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보호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노동기본권 보장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을 대신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으로 산재보험 적용과 공정거래법 등 경제법적 보호를 추진했다. 이때 산재보험 특례적용을 위한 기준을 정하면서 ‘일신 전속성, 경제적 종속성, 비대체성’ 등이 기준으로 제시됐고 ‘전속성’ 개념은 이후 ‘하나의 사용자’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아님 판정을 내리는 기준이 됐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산재보험 특례적용 대상에 한 두 개씩 업종을 추가한 것이 전부였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촛불운동의 여파 속에서 치러진 2017년 대선 당시에 문재인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ILO 기본협약(결사의 자유, 단결권 보장) 비준을 약속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입법을 추진하라는 권고를 했고, 고용노동부가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20년의 숙원을 이제 이룰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집권 3년차가 된 지금까지도 약속은 이행되기는커녕 오히려 휴지조각이 되어 가고 있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도 ILO기본협약 비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관련 사항은 ‘향후 모색’한다는 추상적인 문구로만 포함됐다. 따라서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의 권고안을 기반 해 작성된 노조법개정안(한정애 대표발의)에도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내용은 없다.

오히려 경사노위는 사용자 대항권을 논의해 추진하려 하고 한정애, 임이자 등 환노위 의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개악안을 입법 발의하고 있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와 관련해 국회에 제출된 각종 법안이나 정부 정책은 노동3권 보장 보다는 고용보험 적용 등 특수고용직 직종별 보호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돼 있다. 그것도 적용 대상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고용보험도 산재보험처럼 직종을 구분해 제한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기본권도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직종별로 보장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새로운 직종에서 특수고용노동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직종별 보호법안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또한 ‘전속성’ 등 노동자성을 가르는 기준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 마저도 특수고용직 중 일부만 적용받는 법안이 될 것이다. 이 ‘전속성’ 기준에 의해 현재 산재보험 특례적용 대상은 20만 대리운전노동자 중 18명에 불과한 현실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단체인 ILO조차 한국정부의 노동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수차례 권고해 왔고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오는 6월 ILO 100주년 총회를 앞두고 EU의 통상문제까지 거론되면서 문재인정부의 ILO핵심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개악을 통해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어 ILO핵심협약을 비준하더라도 “사용자 대항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직에게는 노동3권 중 단결권이나 단체교섭권의 일부만 협소하게 보장하려는 것이다.

특별법을 통해 노동3권 중 1권 또는 1.5권 즉 단결권과 교섭권 일부만 보장하는 안은 현실에서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기존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이미 설립필증을 교부받은 택배연대노조와 학습지노조는 업체로부터 교섭을 거부당하고 있으며 14개 지자체에서 필증을 교부받은 대리운전노조는 업체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했지만 노동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노조 필증이 현실에서 사용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므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특별법이 아니라 노조법2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ILO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그에 걸맞게 노조법 등 관련 법안을 지체 없이 개정해야 한다. “타인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 모두를 노동자로 규정하고 여기에 해고자와 실직자도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도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노동기본권은 거래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할 것이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온전히 적용하라는 요구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ILO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조치를 지체 말고 즉각 이행하라! 노조법2조 즉각 개정하라!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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