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로 나이 들기

[워커스] 레인보우


마흔을 넘기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내 몸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피부의 탄력이나 기본 체력, 시력, 기억력, 집중력에도 현저한 변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건 호르몬의 변화다. 지난 2월 말, 평생 규칙적이던 월경 주기가 처음으로 일주일가량 늦어지더니 지금까지 한 달 반째 이유를 알 수 없는 하혈이 계속되고 있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특별히 하혈을 유발할만한 다른 요인은 없었다. 최근의 신상 변화 등에 따른 스트레스로 호르몬 체계에 오작동이 있겠거니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내 나이 즈음에 나와 같은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 친구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나의 파트너는 일 년 전쯤 노안이 생겼다. 파트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동물들도 이제 노견, 노묘가 되었다. 그리고 몇 주 전, 고양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는 핸드폰을 볼 때마다 안경을 추켜올리는 옆지기와 마주 보고 앉아서 하혈이 계속되고 있는 몸에 대해 불평하던 어느 밤, 먼저 떠난 고양이의 사진으로 제작한 팔찌를 손에 들고, 여전히 지나치게 발랄하지만 전보다 훨씬 자는 시간이 많아진 우리의 노견들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생애전환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20대 초반에는 서른 중반이 넘은 레즈비언의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40대가 넘은 레즈비언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 사는 레즈비언 할머니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유니콘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성적지향을 인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혹은 동성의 연인과 같이 살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상향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거의 없었다. 주위에는 주로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는 서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을 때나 그나마 살지. 결국 30대만 지나면 남들 다 결혼하고 애 낳아서 가정 꾸리고 사는데 혼자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이, 심지어는 더 이상 만날 수 있는 동성 파트너도 없이, 차별뿐인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

하지만 막상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보니 현실이 그렇게 암울하고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성적지향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전부가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나만의 자원을 확보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20대 초반이던 90년대 후반과는 달리 퀴어 운동과 커뮤니티는 크게 성장했고, 보다 다양해졌고, 사회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정보나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성, 자원의 차이에 따라 격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내 또래의 퀴어들은 40대의 퀴어들이 사회 속에서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아마도 몇 년 더 지나면 우리는 불행한 상상으로만 가득한 미래 대신에, 제 멋대로 살아가는 재밌는 퀴어 노인들의 모습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전에도 존재했을 테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던 그런 모습들을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의 장벽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노동, 주거, 의료, 연금 등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결혼한 시스젠더 이성애자 가족 중심의 보장 체계들, 고용과 노동 환경에서 부딪히는 복합적인 차별,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고 따라서 누군가 사고가 나거나 큰 질병에 걸렸을 때 또는 사망했을 때 무엇도 보장받을 수 없는 파트너 관계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써 다른 주민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 혈연가족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 등. 최근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주거권 실태에 대한 보고에서 빈곤과 고립을 야기하는 성소수자의 주거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모든 요소들은 퀴어로서, 특히 사회적,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년기에 진입할 때 실질적으로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전처럼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다. 40대의 삶을 살고 있는 주변의 퀴어 친구들이 열심히 함께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으로 공동주택을 만들고, 성소수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며, 제도와 판례를 바꿔나가고, 노동조합이나 지역사회의 일원이 된다. 서로 가까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도 하다. 20대의 나는 40대 레즈비언인 나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 40대의 나는 막연한 두려움 보다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기에, 소수자들은 항상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나간다.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는 비슷한 조건에 처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몇 년 후, 우리는 아주 재밌는 레즈비언 할머니들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이 알게 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만들어왔던 내 주변의 씩씩하고 멋지고 유쾌한 퀴어 선배들처럼. [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