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되는 체험-가상현실(VR)은 더 많은 자유를 줄까?

[워커스] 기술문화비평


오래 전에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라는 용어만 들으면 마치 실존하는 현실 자체가 모조리 가상화된 디지털 환경이 곧 구축될 것만 같았다. 혹은 마치 현실 자체가 애초 가상인 것인지 아니면 실존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VR이라는 약어로 대체돼, 다소 협소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머리에 HMD라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쓰고 게임을 하거나 인터랙티브 영화를 보는 것으로 말이다.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은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대략 20세기 초반부터 그 원시적 형태가 등장했다. 실질적으로는 재런 래니어(Jaron Lanier)가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를 고안해 낸 1980년대부터 VR은 현실화됐다. 물론 그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엔 〈토탈리콜〉이나 〈매트릭스〉같은 SF영화 속에서 상상을 통해 접해볼 수 있는 것이었고, 2010년대가 돼서야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 기술 및 컴퓨터 기술(그래픽 및 연산)의 발전 덕분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VR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016년 ‘포켓몬 고’ 게임을 통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있었다면, 2014년 페이스북이 VR 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가상현실 기술이 우리의 일상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아직까진 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VR을 체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영화나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외에도 건축, 여행, 의료, 교육 등의 부문에서 특히 VR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자가 마치 바로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현장감’(feeling of presence)을 VR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비록 디지털로 제작된 가공의 현실이거나 360도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한 화면이지만, VR의 사용자 혹은 관람자는 바로 VR이 재현하는 그 공간 내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현장감으로 인해 흔히 말하는 ‘몰입’(immersion)의 경험이 가능해진다. 몰입은 사용자가 가상의 인공적인 공간 내에서 어떤 다른 존재로, 즉 다른 사람이나 대상의 시점을 통해서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VR 게임 속에서 좀비들을 물리치는 전사가 되거나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될 수도 있고, VR 영화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격동의 현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영화는 정해진 스토리텔링 방식 혹은 내러티브의 전개에 따라 관람자를 영화적 환경 속으로 끌어들인다. 물론 다양한 편집 기술이나 특수 효과, 음악 등도 관람자를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VR 영화는 관람자로 하여금 가상의 현실 공간 내에 위치하게 해 직접 세계를 보는 주체로 만든다. 아니, 관람자는 아예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VR 영화를 만들어 내는 카메라로 작용한다. 관람자가 앞으로 나아가고 고개를 돌리면서 만들어 내는 장면들은 바로 관람자 자신이 보고 체험하는 영화가 된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볼지, 어떤 방향에서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오랫동안 볼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영화감독이나 편집자가 아니라 VR 기기를 쓰고 지금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자 자신이다. 그런 면에서 VR은 관람자의 참여를 반드시 필요로 하고 또 영화 자체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요구되는 매체다.

VR 영화의 이런 점은 어쩌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과 상당히 닮았다. 외부와 독립된 공간 속에서 운전자로서의 관람자는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회전한다. 비록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핸들을 돌려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지만 운전자는 실시간으로 도로의 방향과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그것과 일치시키면서 진행한다. 운전이란 것이 사실은 이렇게 신체와 주변 환경과 자동차라는 중간 매개체 사이의 아주 복잡한 상호작용의 피드백 루프인 셈이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과 같은 일은 또한 역사적으로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이 주로 재현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컴퓨터 게임이 VR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게임에서 사용자의 참여가 상호작용의 요소로 게임의 플레이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길을 찾아 나아가는(navigate)대로 게임은 진행되고, 그렇게 나아간 장소는 다시 게이머가 계속 선택하고 더 나아가도록 만든다. 이렇게 이야기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끝이 없는 이야기가 게임 속에서 생성된다.


요즘 종종 관람자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인터랙티브 영화들이 보인다. 예컨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블랙미러:밴더스내치〉같은 영상은 관람자의 선택에 따라 이후의 이야기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이미 흔한 진행방식인데,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가 관람자의 반응이나 결정에 따라 계속해서 변한다는 점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관람자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VR 영화는 말하자면 매순간이 관람자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고 구성되기에 관람자에게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유를 준다. 전체적으로는 이미 구성된 가상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관람자는 이후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진지한 VR 영화들이 다큐멘터리의 양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관람자가 현장감을 느끼고 몰입하여 자신의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테러나 전쟁의 비극적 현장, 난민과 이주민이 겪는 가혹한 상황, 역사적 사건 등이 VR 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된다. 김진아 감독의〈동두천〉(Bloodless)이나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살과 모래〉(Carne y Arena) 같은 VR 영화들은 약자, 소수자, 피해자들의 삶을 관람자들이 잠시나마 살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다른 환경과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간접 경험한 우리는 그들의 처지와 당면한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불화나 혐오의 정서도 이런 예술의 형식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