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는 효능이 없지만, 사회주의는 다릅니다

[워커스 사회주의탐구영역] 인보사를 키운 건 정부


#1. 관절염 치료제라더니, 웬 신장 세포를 넣어놨어?

친한 친구가 주식을 합니다. 작은 푼돈이라도 ‘괜히 헛짓하지 말라’고 몇 번 얘기했는데, 한 번 재미 들리면 빠져나오기 어려운가 보더군요. 그러다가 결국 얼마 전 본전도 못 찾고 손을 털었습니다. 주로 바이오 기업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폭락했기 때문이죠(‘떡락’이라고 하던가요). 그 한가운데 ‘코오롱생명과학’이 있었습니다. 관절염 치료제‘라던’ ‘인보사케이주(통칭 ‘인보사’)’를 개발한 업체죠. 실제로 8만 원을 호가하던 코오롱생명과학 주가는 2달 전쯤 인보사 ‘사태’가 터지면서 절반 이하로 폭락, 요새는 2~3만 원대를 오가고 있더군요.

의약품이나 생명과학에 관한 전문용어들이 튀어나와 갈피를 잡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관절염 치료제를 만들었다면서, 원래 주장했던 연골세포가 아니라 왜 엉뚱한 신장(콩팥) 세포가 들어가 있었던 걸까? 어쨌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애당초 연골을 재생할 수 있는 세포 물질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저 세포배양을 위해 생명공학 실험실들에서 많이 사용하는 유전자 조작 세포(신장에서 유래한)가 있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 신장 세포는 종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 몸에 투여하는 걸 엄격히 규제한다고 하더군요.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주사를 맞았더니 오히려 암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 주사 한 대 맞는 데 무려 7백만 원이나 했던 이 ‘신약’은 이렇게 또 다른 희대의 ‘사기’로 끝나게 될 모양입니다.

코오롱은 이미 2년 전인 2017년에 이 상황을 인지했다고 합니다. 연골재생물질은 없고 엉뚱한 위험물질이 들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들에게 투약했다는 거죠. 이들의 후안무치는 끝이 없습니다. 사태가 벌어진 지금에 와서는 ‘애초 연골재생물질은 없었고 시판 전에 임상시험도 모두 신장세포로 했던 것이니, 별 문제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는 건 한국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의 태도입니다. 신약을 개발하면 이 약품을 사용해도 될지 심사해서 허가를 내주는 담당 기관이 식약처죠. 원래 2017년 4월만 하더라도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는 인보사 허가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연골재생 효과가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죠. 그런데 불과 두 달 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데 오로지 심의위원들만 바뀐 중앙약심은 인보사에 허가를 내줍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심의였던 걸까요.

#2. 인보사를 키운 건 정부였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국내개발 최초 유전자치료제(인보사케이주) 보유,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후속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 확보하는 등 성과를 보유.”

불과 반년 전인 지난 2018년 12월 말, 보건복지부가 직접 발표한 내용입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을 비롯한 6개 기업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신규 인증한다는 것이었죠. 박근혜 정부가 ‘창조’에 열을 올렸듯, 문재인 정부는 온갖 분야에 ‘혁신’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그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일정 규모 이상 신약 개발 투자를 하고 있는 제약기업’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증하는데, 이렇게 지정되면 국가연구개발에 우선 참여권을 얻고 규제 완화, 세금감면, 정책자금 융자 특혜도 받습니다.

인보사를 키운 건 정부였습니다. 뉴스타파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인보사 개발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무려 139억 원. 인보사뿐만 아닙니다. 범위를 넓혀보죠. 지난 2월 정부는 ‘바이오 경제 성과 창출’을 위해 2019년 3조 원에 달하는 바이오 R&D 투자예산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 ‘실적’이라고 자랑하며 거론한 대목을 보면, ‘혁신 신약 개발 지원을 통해’ 코오롱을 비롯한 주요 제약기업들이 2.9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성과를 냈다는 내용입니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매출액은 2018년 12조 원에서 2019년 13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놓았죠.

정부의 지원은 재정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월 13일, 보건복지부는 ‘2019년도 혁신형 제약기업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정부 보도자료에 나온 언급을 바탕으로 이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를 재구성해보겠습니다.

제약기업 CEO: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세금 혜택을 늘려달라.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를 신속하게 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

보건복지부 담당자: 연구개발 지원하고 세액공제 확대하겠다. 신약 임상시험과 허가를 신속하게 심사하도록 적극 추진하겠다.


업체에서 요구한 내용을 정부 관계자는 그대로 인용해서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금전적으로도 지원하고, 신약을 개발하면 시험과 허가 절차도 간소화해서 빨리 이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거죠. 문제는 인보사의 경우처럼, 이 과정에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발표한 조사 결과(‘의약품 임상시험 약물 이상 반응 통계’)에 따르면, 임상시험 사망자 수는 2013년 10명에서 2017년 29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5년간 사망자 수는 매년 늘어나 도합 85명에 달하죠. 입원을 비롯한 기타 피해도 2013년 147명에서 2017년에는 28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약기업들은 임상시험과 허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라며 이 요구를 그대로 받아줬습니다. 사람이 죽어 나가든 말든, 판매 실현이라는 ‘실적’ 앞에서 정부는 업계의 충실한 대변인이 돼 주었죠.

#3. 사회주의 신약 개발

정리하자면, 정부는 나랏돈을 들여 민간 제약기업의 신약 개발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규제를 완화해 하루라도 더 빨리 그 신약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돕죠. 민간 제약기업은 그렇게 개발한 기술을 팔거나 신약을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립니다.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 예산을 쓰는 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물론 ‘어떤 기술인가’도 중요한 문제지만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나랏돈을 들이면서도, 기술수출이든 매출이든 결국 이익은 바로 그 정부 지원을 받았던 민간 제약기업들에 돌아간다는 겁니다. 심지어 규제 완화로 잘못된 유해약품이 ‘신약’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환자들이 뒤집어쓰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기업은 실제 환자들에게 효능이 있는가와 상관없이 이 상품을 팔아 수익을 남겨야 했고, 정부에게는 그렇게 산업의 몸집을 불려 기업 이윤이 늘어나는 게 ‘성과’였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에서도 관절염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신약을 비롯해 질병을 치료할 연구개발과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도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이뤄져야겠죠. 하지만 사회주의에서 신약 개발의 목적은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오직 사회구성원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질병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실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죠. 수익을 낼 필요가 없으니 실패한 물건을 억지로 꾸며 내놓을 일도, 정부 당국이 새 물건 허가해주기에 급급할 일도 없습니다.

앞서 봤듯 정부는 이미 막대한 예산을 ‘바이오 부문’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자원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각자 이윤 추구를 위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에 돈을 지원하죠. 게다가 최근 보건의료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실제 의료적 효능이나 과학성을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상품으로 개발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으면 ‘바이오헬스’나 ‘웰니스’ 같은 딱지를 붙여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정작 정부가 책임지고 수행하는 연구 부문은 초라하죠. 박사학위를 딴 연구인력이라 해도 국책연구원이나 대학에서 자리를 얻기도 어렵고, 가까스로 취업해도 비정규직이 되기 십상이기에, 기업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보건의료를 포함해, 사회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구성원의 필요와 통제’입니다. 가령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차원에서 보자면, 가장 먼저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를 정해야겠죠. 의료인과 환자 단체, 연구자와 보건의료부문 단체를 포괄하는 당사자·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도움을 받아 소비자 평의회 같은 사회구성원의 대표체가 이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환자와 소비자를 현혹해 돈을 벌 수 있는 ‘상품’ 개발은 애초에 배제하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선출된 대표자들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연구개발이 무엇인지’ 대계를 마련하는 겁니다.

이 계획에 따라 실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은 철저히 정부가 책임집니다. 사회적 필요에 근거해 내린 결정이니, 마땅히 사회적 자원을 충분히 투입해 연구개발의 성과를 공공의 자산으로 만드는 거죠. 지금까지 개별 민간기업에 퍼주던 자원을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활용하는 것이니, 사회적 낭비도 없고 국가 책임으로 안정적인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기관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연구원이나 대학이 될 수도 있고, 기업체가 담당할 수도 있겠죠. 자본주의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사회주의에서는 이 기관들이 각자의 수익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원을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투입해 안정적인 연구개발을 보장하되, 그에 걸맞게 공적인 통제로 개별적인 이익 편취를 막고 목적에 충실하도록 하는 거죠.

이렇게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 심사도 공개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합니다. 현재 약품 심사와 허가를 맡고 있는 식약처 자문기구 중앙약심은 얼마 전까지 구성원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심의위원 선임 역시 선출이 아니라 식약처장이 임명하는 형태죠. 물론 모든 공직 하나하나를 전부 선출하자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이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 역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4. 자본주의는 당신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결과물이 심사를 통과해 약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치료가 필요한 사회구성원들은 비싼 댓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이 약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비용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특정 집단이 지금의 특허처럼 이 결과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누리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신약개발에 특허와 특혜를 주지 않으면 누가 연구개발에 나서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사회적 자원을 어떤 원리로 배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개발에 성공한 특정 기업이 소유권을 쥐고 사회구성원들로부터(혹은 ‘건강보험’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갑니다. 환자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한편, 대다수 연구자는 기업에 속하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생계조차 꾸리기 어렵죠.

하지만 이렇게 개별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용되는 돈, 그리고 현재 국가가 민간기업에 지원하는 돈을 사회적 책임으로 공적 연구개발과 연구자 재생산에 투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작업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중복투자로 인한 낭비도 막고, 환자에게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는 부도덕한 범죄 행위도 막을 수 있죠.

인보사 사태는 개별 기업의 ‘부도덕’이나 ‘실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지난 수년간 보건의료 부문이 이윤 창출의 새로운 노다지로 떠오르고 정부가 앞장서 규제를 풀어주면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 같은 문제들이 다시 발생할 수 있겠죠. 자본주의는 당신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같은 사회적 비용을 들이더라도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고 누가 통제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자신 있게 사회주의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워커스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