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방’으로 대동단결, 출구 찾은 웹하드 카르텔

[워커스 이슈②]“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자발성’과 ‘합법성’으로 포장”


웹하드 카테고리에 추가된 ‘BJ방송’

5월 17일 밤 10시, 웹하드에 접속해 BJ방송을 켰다. 생방송 중인 106개 방 중 98개가 모두 여성BJ의 ‘벗방’이었다. 남성BJ의 방송은 10개가 채 안 됐다. 그마저도 여성을 게스트로 초대하거나, 길거리 헌팅을 중계하는 방송이었다. 2000명 이상의 시청자가 접속해 있는 방이 10개가 넘었다. 100명 이상의 시청자가 있는 방도 50여 개나 됐다.

웹하드의 불법촬영물 유통이 사회적 문제로 터져 나온 지 반년. 불법 촬영 피해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던 웹하드 업체들의 근황은 어떨까. 정부가 ‘웹하드 카르텔’을 방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불법촬영물을 미끼로 유저들의 돈을 끌어모으던 웹하드사의 수익 구조에도 균열이 날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동향을 살펴보면, 그들은 나름의 ‘출구전략’을 찾은 듯 여전히 성행 중이다. ‘BJ방송’이 웹하드의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 1년 사이 웹하드 업체들은 ‘BJ방송’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5월 기준 전체 웹하드 사이트의 약 70%(웹하드 86개 중 60개)에서 ‘BJ방송’ 카테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를 연동하는 형태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콘텐츠의 대부분은 여성 BJ의 ‘벗방’이다.

이러한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는 현재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아프리카 TV의 후발주자들이다. 방송시스템도 유사하다. 아프리카TV의 ‘별풍선’처럼, 이용자가 후원금을 충전해 BJ에게 쏘면 BJ가 그에 상응하는 리액션을 보여준다. 유튜브, 아프리카TV와는 달리 성인만 방송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BJ의 단순 노출부터 유사성행위까지 방송되고 있었다.

웹하드에 진출한 인터넷방송 양대산맥

웹하드 업체들은 가파른 성장세에 있는 인터넷 방송, 특히나 벗방 위주의 방송을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현재 웹하드와 연동된 인터넷방송 플랫폼은 크게 두 개 업체로 나뉜다. 우선 양진호 회장 소유로 알려진 위디스크, 파일노리 등의 웹하드 사이트는 인터넷방송 ‘풀티비’를 연동하고 있다. 두 회사를 포함해 ‘풀티비’를 이용하는 웹하드는 모두 22곳이다. 풀티비를 운영하는 여성 BJ의 벗방은 해외 포르노 사이트에 대량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불법 유포를 막기 위해 인터넷방송 업체들이 영상에 심어놓은 사용자 아이디 등이 지워진 채 깨끗하게 축출된 영상이다. 때문에 인터넷방송 업체들이 BJ의 동의 없이 이러한 영상들을 유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 BJ들은 ‘불법 유포 금지’ 등을 배너 등에 표시하고 방송한다.

또 여성 BJ에 대한 시청자들의 여성혐오 발언과 인신공격도 비일비재하다. 벗방 채팅에선 ‘보X 좀 더’ ‘개 같은 X’ ‘내숭떠는 X들보다 훨씬 낫다’ 등의 말이 흔하다.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방송을 하는 여성 BJ들은 저임금이나 불공정 계약을 강요받기도 한다. 현장에선 실제 BJ일을 통해 얼마의 수입이 가능한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을 뿐더러 수입을 인터넷 방송사와 분배하다보니 적은 경우가 많다.

웹하드 카르텔 하에서 여러 산업은 연결된다. 웹하드 운영업체 기프트엠의 모 사내이사는 지난해 한 디지털장의업체의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이 디지털장의업체는 기프트엠의 옆 사무실에서 운영을 했다. 불법촬영물을 유통하는 웹하드사가, 디지털장의업체를 함께 소유하며 피해자를 이중으로 착취하는 방식은 지난해 양진호 회장의 사건과도 유사하다. 당시 양진호 회장은 웹하드 업체, 필터링 업체, 디지털 장의업체까지 운영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자발성과 합법이란 그럴싸한 가면

‘벗방’이 성행하면서 관련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웹하드 업체가 버젓이 유통해온 불법촬영물이 ‘벗방’이라는 합법적인 가면을 쓰고 나왔을 뿐,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라는 고질적인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벗방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자발성’과 ‘합법성’으로 포장해 유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이런 인터넷방송은 여성의 자발성에 기초한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 동등한 거래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 같은 산업의 발달은 여성에 대한 과도한 성적 대상화, 물상화, 타자화를 당연시하는 사회 문화를 확산시키고 실제로 그것을 이용하는 남성에게 학습시킨다”라고 말한다. 또 “국산야동이 동의 여부조차 물어보지 않고 불법촬영 된, 일방적 폭력의 결과라면 벗방은 자발성으로 포장된 성 착취”라며 “온라인 공간에서 성 착취를 이용한 산업이 여성의 동의를 얻어가는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판매(경험)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는 “현 상황은 불법촬영물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강제’와 ‘폭력’으로만 여론화된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여성을 거래하며 이윤을 착취하는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 “법과 정책은 성폭력과 성매매 피해자를 ‘동의’ 여부와 입증 가능한 ‘거부’, 혹은 ‘강제’ 등으로 구별 지어 왔다”며 “자본은 이러한 몰 젠더적 빈틈을 포착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법촬영물은 주춤해도, 여전한 업체들

정부는 지난 1월 24일 ‘불법음란물 유통 근절을 위한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웹하드 카르텔을 집중 단속하고 엄정 대응하며 동시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종합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중 웹하드 카르텔 근절 제도로는 △모니터링 강화(모바일기반 웹하드까지 확대) △음란물 유통 웹하드 게시판 폐쇄 △공공필터링 도입 △AI를 활용한 음란물 차단 기술 개발 등이, 웹하드 처벌 강화 방법으로는 △가담자 구속 수사, 징역형 형사 처벌 △즉시 삭제조치 미이행 시 2천만 원 과태료 부과 △범죄수익 몰수 및 추징 추진 등이 발표됐다.

그 후 실제 불법촬영물 유통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발표가 나오기는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최근 웹하드 불법촬영물을 삭제해달라는 신청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촬영물로 수익을 내왔던 웹하드 업체 사이트는 대부분 건재했다. 2019년 1월 말 기준 ‘특수한 유형의 부가통신 등록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44개 업체가 PC기반의 53개의 웹하드 사이트(모바일 사이트는 39개)를 운영 중이다. 2018년 6월 말엔 51개 업체에서 57개의 PC기반 웹하드 사이트(모바일 사이트는 44개)를 운영했다. PC기반 사이트로 따져봤을 때 감소한 건 4개다. 로코HD, 샘디스크, 팡디스크, 파일보스가 사라졌다. 올해 1월 말 집계 뒤에도 웹하드의 합병 소식이 들려왔지만 유의미한 숫자는 아니었다. 지난해 위디스크에 대해 ‘등록취소’라는 강력한 행정조치가 최초로 내려졌지만 위디스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불법촬영물’도 여전히 주요 키워드로 검색되고 있다. 웹하드 남성 유저들 사이에서 ‘아직 건재한 웹하드’로 통하는 온디스크에선 ‘스튜디오 촬영’ ‘유출’ ‘헤어진 여친’ ‘유명커플’ ‘국노’ ‘국산’ ‘몰카’ ‘강간’ ‘모텔’ 등 마치 불법촬영물처럼 제목이 달린 영상들이 수없이 많았다. 음란물에 있어서 ‘불법촬영물’ 마케팅은 아직 유효했다. [워커스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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