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들의 증언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 열려

2017년 5월 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800톤급 골리앗 크레인과 32톤급 지브형 크레인이 충돌하며 붕괴했고, 간이화장실을 덮쳤다. 이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5명이 다쳤다. 사망한 이들은 모두 하청노동자들이었다.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없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트라우마도, 그들의 환경도, 사고 이후 책임자 처벌이나 재발방지대책도, 어느 하나 해결 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한다. 그들이 일했던 조선소와 하청노동자들의 삶, 사고 트라우마와 여전히 멈춰있는 사고 수습 과정까지.

지난 4월 발간된 《나, 조선소 노동자》(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 2019.4.23.)는 당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아홉 명의 구술집이다.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그 날의 사고의 기억과 트라우마, 회사의 사고 수습 과정 등을 구술한다. 6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마창산추련), 여영국 정의당 의원실과 금속노조가 주최한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세 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그 때의 기억과 고통을 털어놨다.


사고 이후 트라우마, 편견과 싸워야 하는 시간

사고 이후, 하청노동자들을 덮친 것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였다. 그리고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북콘서트에 참가한 A씨는 “산재 인정을 받기 전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장면 하나 목격했다고 회사에 나가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심지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찾았던 병원 주치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식이 느껴졌다. 외로웠다”고 말했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유가족이자, 당시 피해자이기도 한 B씨 역시 “사고 당일, 내 손을 동생을 보내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며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종합병원을 찾으니, 주치의가 ‘당신이 트라우마가 뭔지 아느냐’고 묻더라. 2년간 치료 받고 있지만, ‘외과적으로 괜찮으니 당연히 이겨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따라 붙는다”고 털어놨다.

이어서 그는 “오늘도 이 곳에 오는 길에 지하철을 몇 번이나 내렸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 온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직장에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직장을 자주 옮기긴 했어도 이직할 때마다 며칠 이상 놀아본 적이 없어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항상 제 식구들은 제가 먹여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성우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우리가 그런 사고를 당한 거 같아요. 그날이 휴일이니까 쉬어도 됐는데...그애가...소띠거든요. 평생 소처럼 일만 하다가 저세상으로 간 거 같아요. 열심히 일만 하다가. 돈이 중요해서 그렇게 돈을 벌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동생이 가고 나니까, 돌이켜보니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177쪽)

구술집을 엮은 박희정 인권기록활동가는 “B씨의 인터뷰가 마음속에 많이 남았다. 참사를 겪은 분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갖지 않아야 할 자책감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이런 이야기는 단지 자책감이 아닌, 사고가 일어나게 된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된 현장이라면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삼성중공업’은 여전히 ‘무죄’

사고가 발생한 그해 5월 1일은, 대선을 앞두고 한국사회가 변화의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사고 발생 9일 뒤, ‘촛불 정부’라고 불리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아비규환이었던 그곳 사고현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불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사고 발생 후,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책임을 회피했고 산재를 은폐했다. 법정에서 삼성중공업과 관계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골리앗 크레인 및 타워크레인 노동자 등에게는 벌금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하청노동자 C씨는 “특별한 날, 특별한 시기에 터진 사고였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기간이었다. 그 때 지금의 대통령이 저희에게 찾아와 약속도 했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다짐했던 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회에 오면서도 여기에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은주 마창산추련 활동가는 “노동부, 경찰, 산업안전공단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5월 재판이 진행됐다. 삼성중공업의 안전조치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삼성중공업에 취해진 조치는 고작 300만 원의 벌금뿐이었다”며 “재판이 ‘무죄 선고’를 위한 잘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하필이면 크레인이 그 쪽으로 떨어졌다’는, 다른 말로 ‘재수가 없어 발생한 사고’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초로 구성된 ‘국민참여사고조사위’의 조사 역시, 회사 측의 개입으로 하청노동자인 ‘물량팀’에 대한 조사가 배제되기도 했다.

이은주 활동가는 “사고 직후, 백병원에 입원한 30대 초반 노동자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팀장이 전화를 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 다시 삼성에서 일하기 어렵다며 공상 처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며 “사고 이후, 피해 노동자의 이름은 금기시된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가해자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날 북콘서트에는 산재피해자가족모임 ‘다시는’에 참여하고 있는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여영국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책 구절을 낭독하며 노동자들이 안전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북콘서트 사회를 맡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사고 후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는 단지 개인의 아픔을 증언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거기에 용접 불꽃 튀면 큰일 나요. 실제로 불이 났어요. 제가 발로 밟았죠. 근데 안 꺼지잖아요. 안 꺼져가지고 바로 앞에 소화기가 없어서 위층에는 있는 게 기억나서 올라가서 가지고 온 소화기로 바로 껐어요. 그때 그걸 보고 안전요원도 뛰어와서 확인했어요. 제가 큰불을 막은 거잖아요. 그러면 저는 당연히 ‘잘했다, 신속하게 잘했다’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한테 욕을 하는 거예요. 내보고 불이 왜 났냐 이거에요. 저희 회사 소장이고 뭐고 다 불러들였어요. 그라면서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그냥 덮겠다’ 그래요.”(239쪽)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왜 안전하지 않게 만들어놓고, 그 곳에서 일을 시켜 놓고, 왜 다치고 죽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나. 용균이 때도 안전커버 없이 일을 시켜 놓고, 죽음을 본인 잘못으로 몰고 갔다”며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왜 안전하지 않게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지 정말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중공업에서 사고가 났는데, 단순히 삼성이고 말고를 떠나서 크레인 운전 잘못한 신호수들, 크레인 기사들 아니면 담당자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것 때문에 삼성에는 어떤 제재가 들어갔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제가 피해자죠.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제가 죄 지은 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죄 지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힘들어요. 다쳐가지고 죽은 사람들도 있어요. 병원 치료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99쪽)

박세민 실장 역시 “사고가 발생해 6명이 죽었다. 그렇다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이에 따라 기업에 엄격히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하지만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기업은 면죄부를 받았으며,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나온 것이 없다”라며 “국민참여조사위에서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고 결론을 냈지만,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질 수 있게 만들어야죠. 법적으로 제약을 걸어놔서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하고 보상도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중대 사고에 국가적으로도 해결해 개입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얘기를 해 줘야 하는데, 힘들게 일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만 저희한테 도움을 주시는 거잖아요. 국가가 국민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162쪽)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고 노회찬 의원 등이 발의한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을 입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 의원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 입장에서 국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며 “국회에서 법을 만들던, 제도를 만들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B씨는 “삼성 사업장에서 인명사고가 났으니 가장 큰 책임자는 삼성중공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삼성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서 미안하다, 라는 사과 한마디만 했어도 피해자들이 이렇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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