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편지

[기고] “저는 오늘 파업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편집자 주]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을 맞아, 서울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참세상>에 독자 투고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전문을 싣습니다.

저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학교 비정규직 직원입니다

오늘부터 학교 비정규직 직원들이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파업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파업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파업을 했다가는 고용이 불안정한 저로서는 학교의 교장과 교육청으로 부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학교에 ‘급사’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야간대학,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이 학교의 잡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 ‘급사’의 개념이 지금까지 이어져 파업이나 노동조건 개선등을 요구하면 ‘급사 주제에 큰 대우를 바란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학교 비정규직은 ‘직장’이나 ‘직업’의 개념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한 대우를 받아왔고, 신분과 고용이 보장되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습니다.

물론 지난 20여 년간 민주진보정권 하에서 많은 차별이 해소됐고 일정부분 신분이 보장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교육감 직선제’를 통해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며 학교 비정규직이 ‘노조’를 결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 비정규직의 처우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차별이 해소 됐으며, 그동안 학교 교장이 알음알음 채용하던 ‘급사’의 수준을 벗어나 ‘교육청 공개채용’을 통해 ‘교육감 직고용제’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하며 신분과 고용이 불안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출처: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지금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과거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상황과는 다릅니다. IMF를 거치며 학교 비정규직 직군으로 수많은 여성과 남성 ‘가장’들이 평생직장의 꿈을 안고 유입됐습니다. 매년 2차례씩 교육청 공채를 통해 30대1, 4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학교 비정규직’이 단순히 ‘급사’나 ‘밥해주는 아줌마’의 인식에서 벗어나, 당당한 직업으로서 신분과 고용의 보장, 최소한의 대우를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봄방학,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는 월급이 없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그때 수많은 학교 비정규직 가장들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음식배달, 공사장 막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학교비정규직이 ‘직업’이자 ‘직장’이라면, 최소한의 ‘직업’과 ‘직장’에 맞는 대우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공무원을 시켜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먹고 살 수 있도록, 비정규직(무기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보라고요? 시험을 보고 들어오라고요?

이 나라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대우를 받고, 신분과 급여 대우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나라입니까? 시험에 탈락한 사람, 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차별을 받고 2등 국민, 3등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입니까?

2류 신분, 2등 국민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정당한 투쟁이 왜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욱 황당한 건 학교 비정규직들의 정당한 요구를 가장 비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평등’을 가르치고, ‘차별’은 안 된다고 가르쳐야할, 일부 교사와 공무원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고, 차별과 냉대를 배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부터 이어질 학교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국민여러분들의 이해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서울의 한 초등학교 비정규직 직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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