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키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이슈①] 시각장애인 B씨의 노동

이슈① [누가 나의 노동을 쓸모없게 만드는가] 순서

도비라. 누가 나의 노동을 쓸모없게 만드는가
1. 중증장애인 생산시설에서의 20년
2. 합법화된 가난, 장애인 노동
3. ‘헬스키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노동자입니다
4. “장애인 노동의 가치,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
5. 비혼여성이자 장애여성의 홀로서기



3개월 째 헬스키퍼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 노동자입니다. ‘헬스키퍼’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쉽게 말해 기업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고용한 안마사들을 말합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때문에 주로 큰 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시각장애인들을 헬스키퍼로 고용하고 있지요. 제가 일하는 곳은 누구나 알만한 중견기업입니다. 직원들이 예약을 하고 찾아오면, 저는 그들에게 약 30분 간 안마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네 시간입니다. 파트타임 일이라 점심시간은 따로 없고요. 저 같은 헬스키퍼들이 오전 3명, 오후 3명씩 교대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물론 정규직은 아니고,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이지요. 월급은 기본급과 이런 저런 수당을 포함해서 월 195만 원 가량을 받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꽤 좋은 조건일 수 있지요. 분명 일반적인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일하는 지압원보다는 근무 조건이 좋습니다. 다른 기업의 헬스키퍼보다 임금이 가장 높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경쟁도 치열합니다. 제가 이 회사에 지원했을 때 경쟁률이 40대 1 정도 됐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루 네 시간 노동, 월 195만 원’이 전부라는 겁니다. 아직 아이가 없어 그럭저럭 살긴 합니다만, 출산이나 주거 계획을 세우기에는 빠듯한 월급이지요. 그래서 남는 시간에 투잡을 뛰고 싶은데, 그게 사실 가능치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안 돼 있기 때문이지요. 일례로 현재 회사에서 6명의 헬스키퍼가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에 포함됩니다. 회사가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채워야, 정부에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제가 다른 회사에 중복 취업을 한다면, 저는 그 회사의 의무고용 인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장애인 한 사람 당 한 군데 회사에서만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뒤따라오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에요. 혜택이 없다면, 굳이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지난해 6개월 정도 모 대기업 계열회사에서 헬스키퍼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 곳도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했지요. 그런데 6개월 째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회사가 합병 돼 없어진다며 퇴사를 권하더군요. 퇴사하기 2~3주 전에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았고요. 이미 다른 직원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인데, 계약직인 헬스키퍼에게만 뒤늦게 통보를 한 것이었어요.

사실 회사 내부에서의 차별은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계약직인 헬스키퍼들은 언제나 열외입니다. 성희롱 예방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 등 모든 법정 의무 교육에서 배제됩니다. 사내 소식이나 뉴스도 전혀 공지 받지 못하고요. 저희 헬스키퍼들은 회사 내 ‘00팀’에 소속 돼 있는데, 한 번도 같은 팀원들을 본 적이 없어요. 가끔은 우리의 노동이 기업의 부담금을 덜기 위해 동원되는 잉여 노동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해요.

그래도 과거에 경험했던 직장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죠. 저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2008년, 녹내장으로 시력의 90%를 잃었어요. 20대 후반의 나이었죠.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로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이듬해 정신을 차리고 장애인고용공단 문을 두드렸어요. 공단에서는 저에게 모 공기업의 콜센터 자리를 알선해줬습니다. 콜센터에는 항상 빈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출근했던 그 곳은 공기업이 외주화 한 콜센터 업체였습니다. 4주간 교육을 받고 현장 투입을 앞두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곳의 업무가 인바운드(고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문의를 처리하는 일) 서비스였어요. 전화를 받으면 실시간으로 내용을 검색해 처리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이라 불가능한 일이었죠. 교육이 끝나자마자, 저에게 나가달라는 식으로 권고사직을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뽑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그때는 사회 경험이 별로 없고, 대처 방법도 알 길이 없어서 그냥 속상해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곳에도 항의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일을 그만 뒀지요.

그리고 나서 다른 콜센터 업체에 취직해 1년 6개월 간 일을 했어요. 이후 취업을 한 곳은 장애인표준사업장이었습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으면, 정부에서 건물 공사비 등 10억 원 가량을 지원받습니다. 자기 땅에 20억 짜리 건물을 짓고 싶은데,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들면 10억이 거저 주어지는 거지요. 그 회사는 자신들의 목적이 ‘장애인 고용’이 아닌, ‘정부 지원’이라는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어요. 인력 아웃소싱 업체였는데, 일단 건물부터 짓고 본 거죠. 저를 포함해 30명 정도의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회사는 우리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한마디로 일거리가 없었던 거죠.

우리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본사 사장의 와이프가 우리 회사 대표 직함을 달고 있었어요.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거나, 무료함에 못 이겨 수다를 떨면 대표는 잔소리를 했습니다. 일 안하고 뭐 하느냐고, 업무보고서를 써 내라고요. 그런데 일이 있어야 일을 하고, 업무보고서도 쓸 것 아닙니까.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심지어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를 했는데, 대표는 ‘칼퇴’도 못하게 했어요. 내내 어떤 일도 없이 앉아 있다가 퇴근하려고 하면 ‘일찍 가서 뭐하느냐’며 퇴근을 막았지요. 대표는 우리를 공짜로 월급 받아먹는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결국 제가 본사에 연락해 일거리를 좀 달라고 닦달을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일이 조금씩 생기기는 했는데 그래도 야근까지 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1년여 만에 퇴사를 했지요.


그리고 취업을 한 곳이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관이었습니다. 한 때 ‘이색 체험관’, ‘이색 데이트 코스’로 유행 한 곳이죠. 관람객들이 시각장애인의 안내와 여러 소리에만 의존해 깜깜한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체험이에요. 그 곳의 대표도, 이사도 모두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와 직원들에게 ‘같은 시각장애인끼리 서로 모여 다독이며 오래 같이 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저와 같이 7명이 취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이 끝나자마자 동기 2명이 잘려나갔고, 나머지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로 일방적 근무 배치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제가 “콜센터에서도 교육비는 주고 자르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을 자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돼, 저를 향한 비아냥과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노동조건도 열악했어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8시에 마지막 관람객을 받는데, 관람 코스가 1시간 30분입니다. 마지막 타임에 걸리면 밤 11시에나 퇴근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 한 달 14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일마저 그만둔 뒤, 저도 다른 시각장애인들처럼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헬스키퍼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불안한건 마찬가지지요. 좀 더 미래가 밝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요. 최근 한국사회에서 장애인 고용이 점점 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단순 반복 직무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허드렛일이죠. 그렇다보니 장애인들이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단순히 먹고 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장애인 노동이 ‘부차적인 노동’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고, 직무 교육 등을 통해 장애인에게도 다양한 일자리가 주어지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는 시각장애인 노동자 B씨와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