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의 가치,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

[이슈①]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준) 준비위원장 인터뷰

이슈① [누가 나의 노동을 쓸모없게 만드는가] 순서

도비라. 누가 나의 노동을 쓸모없게 만드는가
1. 중증장애인 생산시설에서의 20년
2. 합법화된 가난, 장애인 노동
3. ‘헬스키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노동자입니다
4. “장애인 노동의 가치,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
5. 비혼여성이자 장애여성의 홀로서기



지난 6월 12일, 장애인일반노동조합(준)이 발족했다. 노조 준비위원회는 이날 발족식에서 장애인 노동권 확대와 장애인 노동자 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장애인 의무고용 준수와 장애인 노동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싸움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전태일 열사 기일인 오는 11월 13일, 공식 노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워커스》가 정명호 준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장애인 노동의 현실과 이후 활동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 소개를 부탁드린다.

10년 넘게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여러 노동 운동에도 연대했지만, 그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어 딘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전체 변혁운동의 관점이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왜 이 사회는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왜 장애인은 시설에 수십 년 갇혀 살아야 하는지. 왜 주변엔 장애인 실업자가 넘쳐나는지.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 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2017년 11월부터 장애인일반노조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2018년 2월부터 준비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수십 차례의 회의와 세미나를 거쳐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장애인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도 그 점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세계적으로도 장애인노조가 거의 없더라고요. 아마 다른 나라도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선진국은 노동을 대치하는 복지가 이미 잘 되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의 장애인 운동은 200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등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노동할 권리’ 문제는 약간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노동’은 장애인의 여러 가지 권리(이동, 교육, 자립생활, 편의시설, 문화, 건강 등) 중 가장 핵심적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장애인 노동의 문제를 장애인일반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노동자’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나?

실업 상태의 장애인이 가장 많지요. 일부 경증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놓은 큰 장벽에 가로막혀 취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이 대다수입니다. 간혹 어떤 중증장애인이 취업원서를 잘 쓰면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면접을 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휠체어를 탄 채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갖 차별을 당합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왜 이 직종을 선택했느냐’, ‘그 육체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듣기 마련입니다. 그 장애인은 투명인간이 됩니다. 해당 직종에 아무리 적절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 시장에서 배제당하고 있는 거죠. 예를 들어 현재 장애인고용공단에서 각 유형의 장애에 맞는 편의시설 설치 등에 1인당 1천만 원, 최대 3억 원까지 무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조그만 턱 하나 없애기, 높이 조절 책상 설치 같은 대안을 세우기보다 장애인 고용을 회피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준비위가 말하는 ‘장애인 노동에 대한 재정의’는 무엇인가?

노동은 복지 개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이라는 것을 생산력 하나만 보고 판단합니다. 자본가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줘야 하고,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유 만으로요. 그런데 헌법에서 보장하는 4대 권리와 의무에 ‘노동’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일례로 몇 가구만 사는 도서 지역 아이를 위해 분교를 세우고 선생님을 보냅니다. 아이의 교육받을 권리와 의무 교육을 위해서죠. 그러나 장애인은 노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게 자본주의 구조입니다. 어떠한 권리나 의무 따윈 없죠. 따라서 ‘장애인 노동에 대한 재정의’는 자본의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준과 시각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자본주의를 거부합니다. 이 같은 방향을 잡고 준비위원들이랑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장애인노동 담론팀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치열하게 논의 중입니다.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 노동시간 등 노동 조건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 우리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에 이윤을 가져다주는 노동이 아닌, 우리 몸에 맞는 노동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대원칙 속에서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이나 노동시간, 노동 조건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고타강령비판초안에서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욕구)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살아 숨 쉬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노동입니다. 이는 자본가가 생산한 것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떼어주는 자본주의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장애인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두는 법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보편적 권리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헌법에는 인종, 성별, 장애 등의 문제로 노동을 차별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어떤 노동을 하든 그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돈 아닙니까? 이를 ‘생산력’이라는, 자본의 이익에 얼마만큼 기여하느냐 하는 기준에 맞추어 재단하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차별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단 3개국뿐입니다.

저는 ‘노동의 평등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최근 가사노동을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하듯, 장애가 있는 노동자의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을 사용가치가 있는 노동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의 노동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일단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하고, 국가 또는 기업이 이에 대한 재원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의 장애인 노동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장애인은 어떤 부문보다 실업자가 많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도 잘못됐고, 기업들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2%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정 고용률 3.1%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장애인의 노동 문제를 책임지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도 뚜렷한 해결책 없이 고용부담금으로 방만한 운영에만 몰입한다고 봅니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의무고용률이 조금 오른 것 말고 장애인 노동자, 특히 중증장애인의 노동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저 명패만 장애인고용공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정부기관이 ‘부담금’까지 감수하면서 장애인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법을 제정하는 국회(1.40%), 공교육을 책임지는 각 시도교육청(인천광역시교육청 1.32%) 등이 앞장서서 장애인의 고용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올해 법정 의무고용률 3.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죠. 지난 2016년부터 국가와 지자체 등도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서 결국 국민 세금으로 벌금을 내는 형국이죠. 정부기관부터 장애인의 노동 차별에 앞장서는 꼴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기업 또한 대기업일수록 의무고용률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한 마디로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시장에서 쓸모없는 존재이니 차라리 벌금을 내고 고용을 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헌법에 규정된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립니다. 실효성 있는 의무고용제도를 위해서는 먼저 의무고용률을 장애인등록률 수준인 4.5%까지 대폭 올려야 합니다. 또한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는 고용부담금(벌금)도 최저임금의 두 배 정도로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준비위가 역점을 두는 사업은 무엇인가?

7월 19일 현재 준비위원으로 함께한다는 의사를 밝히신 분들은 약 30여 명입니다. 준비위원은 본 조직이 출범할 때까지 강령, 규약, 조합원 자격 등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함께 논의합니다. 준비위원과 더불어 현재 조합원도 가입 받고 있는데요. 노동조합은 조합원 숫자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 일할 의지가 있는 장애인 실업자 등 최대한 많은 조합원을 모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 조직 출범식 때까지 장애인일반노조를 최대한 많이 알리기 위해 각 단체 및 지역별 간담회, 장애인 고용을 지키지 않는 대기업 앞 1인 시위, SNS를 활용한 홍보, 카드뉴스 발행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구글독스(https://forms.gle/3vf8rwNzJDD2nRuZ6)로도 준비위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사회는 속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속도는 곧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속도도 느리고 노동을 아예 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들도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쓸모가 없는 중증장애인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을 원합니다. 자본가 관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가치가 없는 노동 즉,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틀을 깨려고 합니다. 장애인 노동자든 비장애인 노동자든 모든 ‘노동’을 평등하게 만들 것입니다. 일하고 싶은 장애인 실업자, 아예 노동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못 내는 중증장애인,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차별받고 해고당하는 장애인 노동자 그리고 평등한 노동을 꿈꾸는 많은 동지를 기다립니다. 함께 만들어 갑시다.[워커스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