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퇴직금 받기는 산 넘어 산…“잔여퇴직금, 56%만 수령”

고용허가제 15주년 앞두고 차별적인 이주노동자 퇴직금 제도 비판 봇물

이주노동자들의 초과체류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가 효과는커녕 퇴직금만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체 응답자 중 이 제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답한 비중도 3.2%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가 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발표한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실태조사를 통해 알려졌다. 이주노동자들은 2014년 고용허가제 법령이 개정되면서 퇴직금을 ‘출국만기보험금’ 명목으로 출국 이후에야 받게 됐는데, 제도가 까다롭고 악용하는 업체가 많아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또 출국만기보험금은 퇴직금의 전액이 아니라 8.3% 뿐이어서 나머지는 별도로 회사에 청구해야 하지만 이를 아는 이주노동자도 크게 적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입국 전 퇴직금을 어떻게 받는지 교육을 안 받았거나 받았어도 그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퇴직금 계산 방법을 모른다는 응답도 63%를 넘었다. 그러나 계산 방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이주노동자 역시 실제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은 50%에 지나지 않았다.

이외에도 출국만기보험금 절차나 잔여 퇴직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응답자도 각각 12.9%, 42.7%에 머물렀다. 실제 잔여 퇴직금을 받은 노동자는 55.8%로 약 절반에 그쳤으며, 출국만기보험을 받은 노동자는 87.0%로 비교적 높았지만 조사단체는 실제로는 비중이 더 낮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잔여퇴직금을 받지 못한 이유로는 이주노동자가 출국만기보험을 퇴직금이라고 잘못 알았거나 회사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신청과 수령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사실상 수령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걸림돌들 때문이었다. 이주노동자가 이용하기 어려운 이 제도를 악용해 회사가 퇴직금 제공을 기피하는 문제도 상당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잔여퇴직금을 신청했다가 기업이 공제액을 늘려 오히려 회사에 내야 하는 납부액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단체들은 이 제도를 두고 “결국 정부가 사업주를 위해 이주노동자 퇴직금을 깎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차별적이고 노동권을 침해하는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를 폐지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퇴직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장에 참가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MTU) 위원장은 “퇴직금은 땀의 대가이고 임금인데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제도를 운영하여 고통에 빠트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주노동자는 한국이 필요로 해서 오는 것이며 이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지난 2월 말부터 3개월 동안 자체 조사한 결과, 총 149명 중 50명이 퇴직금차액을 지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라며 “영세한 사업장의 부담을 덜어주고 이주노동자가 퇴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솔리나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수녀는 “임금을 체불하고 출국만기보험도 내지 않는 사업주들도 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존스 갈랑 카사마코 필리핀공동체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가 오히려 더 피해를 당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한국에서 퇴직금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며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피해를 입는다. 이런 제도가 더욱 미등록을 양산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오는 17일 고용허가제 도입 15주년을 앞두고 수행된 것이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실태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24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가 이 조사에 참가했으며, 14개국 언어로 진행돼 국내외에서 모두 927건(유효: 789)의 답변을 받았다. 설문 감수는 이주와인권연구소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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