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후 최대의 노조 탄압…“노동운동에 연대를”

[INTERNATIONAL] 2019년 건설노조 방일단 기록

  7월5일 일본 경찰이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동조합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출처: 건설노조]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시작한 때에 일본에 갔다. 7월 4일부터 4일 간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이 일본의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이하 연대노조)와 교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아베 정권 아래에서 우익세력이 발호하고 반한 감정이 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차라 걱정스럽게 일본 땅에 도착했다. 하지만 일본의 시민들은 한국인들에게 친절했고, 동지들도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건설노조와 연대노조는 매년 양국을 오가며 교류를 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선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조(건설운송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여의도 도끼만행과 같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었다. 당시 연대노조 동지들은 자신도 레미콘을 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투쟁을 지원하며 교류가 시작됐다. 연대노조에는 레미콘, 트럭 등을 운행하는 노동자들이 속해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교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연대노조가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다. 이미 70여 명의 동지들이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했으며, 아직도 12명의 동지들이 구속돼 있다. 연대노조는 1960년대부터 시작돼 유서가 깊고, 레미콘 산업에 영향을 줄 정도로 저력이 있다.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환대해주는 동지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베 정권의 공안탄압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게다가 오사카의 노조 건물인 학동관의 센터장이 우리가 오는 날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러야 하고, 공안탄압에 대응하며 우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둘째 날인 7월 5일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직접 본 일본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오전에 교토로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일본의 동지들이 웅성거렸다. 경찰버스들이 노조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차를 돌려 다시 노조 건물로 갔을 때는 무장경찰을 포함해 60여 명의 경찰들이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극우 산케이 신문이 이를 취재하기 위해 함께 왔다.

공안탄압과 함께 압수수색이 비일비재해 더 가져갈 자료도 없다고 한다. 산케이 신문은 연대노조가 폭력적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일삼는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모습을 보이면 더욱 악선전을 할 것이 분명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함께 가던 몇 명의 일본 동지들이 내려서 대응을 했다.

당일 우리는 간사이레미콘지부의 타케 위원장과 유까와 부위원장의 재판이 열리는, 교토지방법원으로 향해야 했다. 연대노조 동지들뿐만 아니라 각 시민단체 회원들까지 모여 있었다. 재판을 방청하는데 좌석 제한이 있고, 사측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서 재판 때마다 많이 온다고 한다. 일본 동지들의 배려로 건설노조 방일단은 모두 재판을 방청할 수 있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인 두 명의 동지가 나타났고 재판이 시작됐다.

판사는 동지들을 구속한 이유가 사측의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위협을 가했고 공갈협박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속하는 이유나 증거는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읽어갔다. 노조 측 변호사가 거세게 항의했고, 방청석에서도 야유가 나왔다. 젊은 판사는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하고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었다. 재판은 한 시간 동안이나 이렇게 진행됐다.

재판이 끝나고 두 명의 동지는 다시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돌아갔다. 법원의 공무원들은 건설노조원들이 투쟁조끼를 입지도, 주변 건물을 촬영하지도 못하게 했다. 기가 차지도 않는 현장에서 판사와 공무원들을 쏘아보는 것만으로 항의를 해야 했다. 그래도 구속된 두 명의 동지가 한국에서 동지들이 왔다고 하니 크게 힘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셋째 날인 7월 6일 오전에는 나라 현에 있는 요시다 레미콘 공장에 방문했다. 나라 현 2개의 레미콘 공장에서 6명의 조합원이 해고됐다고 한다. 연대노조 동지들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규직화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잘리고 해고되고 있다. 공장 건너편에서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하고 있으니, 사측 직원이 캠코더로 우리를 찍었다. 한국 같았으면 바로 항의하고, 달려가서 카메라를 제지하고, 공장 사무실에 쳐들어 갔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몇 년을 감옥에서 썩을지 모른다.

오후에는 오사카 부 경찰본부에 항의 행동을 했다. 유명한 오사카 성 옆에 으리으리하게 솟은 경찰본부 건물. 그 아래 연대노조를 비롯해 지역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평화단체 등 60여 명이 모였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하며 항의를 이어갔다. 연대노조는 자신들의 노동조건 향상에만 갇혀 활동하는 노조가 아니다. 일본의 사회 이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평화행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일본 정부에 찍혔다. 한편,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랭고)는 연대노조의 탄압상황에 함께 대응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함께 하는 세력들이 많지 않으니 더 쉽게, 더 함부로 탄압을 가한다.

마지막 날에 있었던 간담회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동지들 상당수도 구속됐다가 풀려난 상황이었다. 구속 사유 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던 조합원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회사에 취업증명서를 신청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회사의 날인이 찍힌 취업증명서를 요구한 게 공갈협박이라고 본 것이다. 현재 일본 경찰의 조직범죄대책과가 이 사건을 맡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의 사건을 적용해,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구속되는 일들도 많다. 재판에서 보았던 타케 위원장도 그런 사례였다. 또 구속됐던 사람들끼리 만나지 않고, 통화하지 않는 것이 보석의 조건이라고 한다. 조합원 가족들을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기도 한다. 때문에 우호적이었던 지역의 레미콘공장 협동조합들이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극심한 공포를 느낀 조합원들의 탈퇴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조 탄압은 전후 최대 규모이다.

  6일 한일 양국 노동자들이 일본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건설노조]

‘생각을 처벌하는 법’, 공모죄의 시범 케이스

일본 노동운동가들은 처음에는 G20을 치르기 위한 일시적인 탄압으로 여겼다. 그러나 극심한 탄압은 계속됐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연대노조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다. 2017년 일본 정부가 강행한 일명 ‘생각을 처벌하는 법’인 공모죄의 시범 케이스이기도 했다. 연대노조의 간부들이 통화하고 회의한 것을, 폭력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공모로 보고 처벌하기도 했다.

한국의 건설노조도 수차례 공안탄압을 받아왔다. 노조를 불온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운동세력들에 대한 탄압과 언론 통제가 심했다. 일본의 동지들은 우리에게 ‘공갈 친구’라고 농담을 하며 함께 싸우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현재 일본의 상황과 같은 노조 탄압을 겪은 적은 없다. 70~80년대 노동운동을 다룬 역사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장면들을 일본에서 보게 됐다. 게다가 언론 통제로 인해 이런 탄압이 벌어지는 것을 일본 대다수의 시민들이 모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평화가 아닌 군국주의·경찰국가로 나서려는 일본, 우익세력이 발호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막는 일본 정부. 일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에서 노조 탄압을 멈추고,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실천을 한국에서 조직하는 것이 불매 운동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동지들은 11월 한국의 노동자대회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남아있는 동지들이 걱정된다. 같이 어울렸던 동지들 중에 또 누군가가 구속될지 모른다. 함께 싸우며 현재의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워커스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