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넘어,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

[워커스] 레인보우


‘신속’한 밀어내기

“A씨에 대한 메디컬테스트 과정에서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양성반응을 이날 통보받고 신속히 계약을 해지했다.” 지난 7월 13일 한 축구팀에서 언론사들에 배포한 자료에 실려 있었던 — 그리고 많은 언론들이 여과 없이 받아 쓴 — 문장이다. ‘A씨’라고 적어둔 자리에는 전날 이미 계약 사실이 보도된 해당 선수의 실명이 그대로 언급돼 있었다. 상징적인 문장이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이에 감염된 사람 중 일부가 겪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을 구분하지 못하는 용어 사용, 개인 의료 정보의 무분별한 공개, 마치 필요한 일을 적기에 수행했다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신속한’이라는 말의 사용까지, HIV/AIDS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흔한 모습이 집약돼 있다.

그러니 낯선 풍경은 아니다. HIV 감염을 빌미로 진료나 입원 거부, 본인 의사에 반한 감염 사실 공개, 불필요한 강제 검사 요구 등의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관련 사례에 대한 진정이 꾸준히 접수 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1월에는 HIV 감염인에 대한 건강 검진을 거부하고 내과 외래 방문을 요구한 대학병원 건강검진센터(2017년 진정), 7월에는 HIV 감염인들을 한 방에 격리 수용하고 운동 시간과 공간 또한 여타 수용자와 분리한 교도소(2019년 진정)에 대한 개선 권고가 나왔다. 교도소에선 표식, 발화 등의 방식으로 HIV 감염인들의 감염 사실 노출하기까지 했다.

스무 해 가까이 전에도 축구계에서 ‘에이즈 선수’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K리그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는 외국인 선수의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당시 모 대형언론사가 낸 기사에는 같은 구장을 썼다는 것만으로 찝찝하다거나 뒤늦게 알게 돼 기분이 나쁘다는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의 인터뷰가 기명으로 실렸다. 물론 비판을 위해 실명을 거론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을 얻는 발언이므로 굳이 익명 처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기사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과학적 사실이야 어쨌건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공포는 당연한 것이기에 사전에 철저히 걸러내지 못하면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져 결국 K리그 자체가 인기를 잃고 말 것이다.”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조금 양보해 말하자면 저 당시는 정부조차도 HIV 감염인의 인권에는 이렇다 할 관심이 없었다지만,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질병관리본부가 감염인 인권 보호 및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10년의 일이다. 또한 HIV는 약물 복용을 통해 관리할 수 있어 감염자 본인과 주변인 모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의 ‘과학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2019년의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 혹은 그에 관한 세인들의 말들은 여전히 인권침해가 아니라 그저 신중하지 못한 업무 처리를 비판하기에 바쁘다. 보다 ‘프로’다운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어야 한다는 말들만이 넘친다. ‘검증’을 마친 후에 영입을 공표했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낙인 너머, 삶

축구선수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HIV 감염 여부는 아무 관계가 없다거나 HIV 감염인에게도 체육 활동 및 직업 선택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말, 또한 애초에 직무 수행과 무관한 항목에 대한 검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실려야 할 자리를 저런 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마치 HIV 감염인을 배제하는 것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라도 한 양 말하지만, 실은 그 배제야말로 큰 위험요소다. 인권에 있어서도, 신체적 건강에 있어서도 말이다(물론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더 이상 절대적 위협이 아니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HIV/AIDS는 여전히 중대한 사안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낸 〈세계 HIV/AIDS 통계〉 2019년판에 따르면 2018년의 에이즈 관련 사망자 수는 2010년 120만 명 대비 36% 가량 감소한 77만 명이며, 같은 해 HIV 신규 감염자 수 역시 2010년 대비 16% 감소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추산 HIV 감염인수는 여전히 적게는 3270만 명, 많게는 4400만 명에 이르지만, 이 중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를 받은 사람의 추산치는 겨우 2050만 명에서 2430만 명에 그쳤다. HIV 예방 백신이나 완치제는 없지만, 감염시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며 관리할 경우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떨어져 에이즈 발현이나 타인에게의 전염으로 이어지지 않게 되며 비감염인 역시 복용을 통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적어도 천만 명 이상, 많게는 이천만 명가량이 이 요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경제적 이유나 기술적 이유로, 아니면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큰 이유 하나가 있으니, 바로 사회적 낙인이다. HIV/AIDS에 대한 무분별한 공포를 확대재생산하고, 감염 사실이 알려질 경우 직장에 다니는 일부터 병원 진료를 받는 일까지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는 사회에서는 검진도 치료도 효과적으로 행해질 수 없다. ‘구제불능’의 병이라는 낙인과 ‘성적 방종’에 대한 대가라는 낙인을 함께 가하면서 치료나 예방을 위한 공적 예산 투입을 세금 낭비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넘치는 사회에서 이는 동시에 약값 등의 차원에서 직접적인 경제적 장벽이, 연구 등의 영역에서 기술적 장벽이 되기도 한다.

HIV/AIDS 예방은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과업이며 HIV/AIDS ‘퇴치’는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감염인의 삶을 차단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병을 퇴치하는 것이 그 병을 가진 인간을 퇴치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종종 잊혀 진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예방하고 퇴치해야 하는 것은 특정한 바이러스나 병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 삼아 행해지는 차별과 배제,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삶의 질 저하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이자 HIV 감염인 인권의 날을 맞아 거리에 모인 이들이 외쳤던 말을 되새긴다. “질병을 넘어,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워커스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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