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의 본질, 제국주의 패권 쟁투

[워커스] 한반도


지금 동북아는 거대한 지각 변동 중이다. 2019년 국제 정세가 마치 100여 년 전 한반도 상황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많은데,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반도는 분단 상황이고 주변 국가들은 더욱 강하며,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됐다. 그 어느 때 보다 정세는 더욱 격렬하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아베에 의해서 촉발된 한일갈등은 무역전쟁, 경제전쟁, 역사전쟁이 분명하지만,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이다. 이는 2008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쇠퇴가 가속화하면서 격화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패권쟁투다.

미 제국주의의 패권 약화

이번 사태는 트럼프의 미 제국주의의 패권 약화가 근본적인 동학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미중 양 제국주의 강대국의 무역전쟁이 관세에서 환율로 확대되면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주요 열강들의 경제가 경기침체 벼랑에 몰렸다.

게다가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등 주요 거점에 대한 미국의 패권 전략이 동시 다발적으로 난맥상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정치스타일에 기인하는 것인데, 정책 목표와 수단에 대한 충분한 내부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갈등과 긴장만 높이는 한계를 보인다.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즉흥적인 면과 전략적인 면이 섞여 있어서 분석하거나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정책들이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중국 측의 협조가 필요조건인데, 미중 무역전쟁은 이러한 협조 의지를 약화시킨다.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은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을 키우는 역설적 결과를 만들면서 주변국들의 동의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의견을 수용했지만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쉽게 굴복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는 트럼프가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는 것에 집착하면서 과거와는 다르게 정책에 대한 우선 순위 없이 동시 다발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다 보니 조바심을 내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일본의 본격적인 전쟁국가화

이렇게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미국의 패권 약화는 미일 동맹과 주일 미군을 근간으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일본의 안보전략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거나 미·중이 협력관계로 갈 경우,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될 수 있다는 일본의 두려움이 커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인해 일본의 국력이 수십 년 동안 정체된 것도 불만이었다. 이 때문에 미·중관계가 갈등 국면일 때 미국의 대중 봉쇄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재무장을 빠른 속도로 추진함으로써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입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의도는 오바마 재임 8년간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함께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을 수정하면서 이미 본격화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이 불가측성을 재점화했고, 거기에다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가 아베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아시아 정책도 한 몫을 했다. 그의 아시아 정책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접근법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본 구조는 아베 총리가 제안한 내용이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에서 한·일 공조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 견제를 위한 아베의 아이디어다. 아베가 총리에 취임하기 직전인 2006년 말부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지역을 하나의 전략공간으로 간주했다. 아베의 주장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일본은 이 전략을 자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수용해서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으로 확정했다. 비록 일본의 아이디어를 수용했지만 이 전략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아베의 도발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아베는 2006년에 집권 1기를 시작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형성된 ‘전후 체제에서의 탈피’를 공언했다. 태평양전쟁의 일본인 A급 전범을 단죄했던 도쿄 재판에 대해서도 강력히 비판하는 역사 도발을 저질렀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까지 부정했다. 원자력 대국으로 잠재적 핵보유국의 야망까지 드러냈으며, 해석개헌으로 평화헌법까지 무력화하는 등 아베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이러한 입장은 아베가 재집권한 2012년부터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다만, 대북강경론만 외치며 ‘미국의 푸들’ 노릇을 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심은 아베로 하여금 특별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핵 보유국가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은 미·일 신밀월시대를 표방하며 ‘트럼프의 푸들’을 자처하며 자위대의 지위변경과 전력 강화 그리고 방위력 강화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바로 최첨단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북미 협상과정에서 일본이 지속적으로 배제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트럼프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아베가 미국의 중재까지 거부하며 남한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호르무즈 자위대 파견조차 거부한 것이 직접적인 증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배제되면 동아시아에서의 역할은 더욱 축소될 것이고 아베가 원하는 정상국가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는 일종의 보복조치이다. 아마 사전에 트럼프에게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그 동안 아베 정권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방해와 이간질을 일삼았다. 현재 일본의 대 남한 압박과 미국의 대 중국 압박은 정치·외교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력을 무기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당분간 미국은 자신들의 전략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일본을 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아베 정권은 극우 포퓰리즘과 군국주의 세력의 전형이다. 최악의 시니라오는 북한이 미·일에 대항하는 중·러의 최전선기지가 되고, 남한이 중·러에 대항하는 미·일의 최전선기지가 되어 남북한이 군비경쟁에 매달리고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격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일갈등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가 새로운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발화점이 돼야 할 것이다. 일본은 남한을 적대국으로 돌리고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남한의 역할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한 단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건설하려면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경우에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남한의 경우에는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를 줄여 한반도가 날로 격화하는 미·중 대결이나 또는 미·일 대 중·러간의 군사적 대결구도를 완화하는 완충지대이자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앞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한일관계, INF 폐기 이후 후폭풍, 방위비 분담 등의 쟁점이 동시에 놓여 있어서 제한된 시간 내에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선택이 그 어느 때 보다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진보-좌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에 의해서 촉발된 ‘반일 민족주의 대동단결’은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인 명제이지만 이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과거의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대대적으로 민족감정을 선동하면서, 현재의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서는 극심한 사대주의의 모습을 보인다.

지금이 1894년도 아니고 1919년도 아니지만 일반대중은 일제 강점기와 식민통치의 역사적 재현과 민족적 감성에 동원되고 있다. 냉철한 이성과 한일 노동자 시민 연대의 구축, 동북아 평화와 선린, 호혜에 입각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강조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진보-좌파는 불매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를 제어하거나 통제할 힘도 명분도 없다. 대중은 일본에 의해서 강요된 선택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것뿐이다.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인데, 그것이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라고 사고하기 때문이다.

진보-좌파는 노동자 국제주의와 한일 민중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 남한의 시민사회가 반아베 전선에서 반일본 전선으로 확대되지 않게끔 내부 투쟁을 통해 견지하면서 대중들의 동의를 획득해야 한다. 특히 경제전쟁을 명분으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려는 남한의 독점자본과의 투쟁을 선포하고 대중들을 설득해서 동참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중들을 가르치는 엘리트주의 시대가 아니다. 일반 대중보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결코 낫지 않기 때문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카우츠키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조선합병을 예로 들어 제국주의의 본성을 고발했다.

“한 일본인이 미국의 필리핀 병합을 비난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문제는 이렇다. 그 일본인의 비난에 대해서 사람들은 과연 그가 필리핀 병합의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병합 그 자체를 진정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오직 그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 병합에 반대하여 싸우고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분리될 자유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그가 진정 성실하게, 또 정치적으로 정직하게 병합에 반대하여 투쟁한다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