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해결하겠다던 대통령 어디 갔나”

[인터뷰] 한국지엠 고공농성 해고자 이영수 씨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이영수 씨 [출처: 김한주 기자]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이영수 씨가 지난 25일 부평공장 정문 앞 ‘하늘 감옥’에 올랐다. 다음날 또 다른 해고자 25명은 그 밑에서 집단 단식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불법파견 철폐를 위해서다. 8100억 원의 정부 지원, 불법파견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도 왜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바뀌지 않은 걸까. <참세상>은 고공농성 노동자 이영수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공은 어떤가. 힘든 점은 없는가?

고공 높이는 9m 정도다. 그렇게 높진 않다. 그런데 철로 된 구조물이어서 낮이면 햇볕이 쇠를 달군다. 열을 온몸으로 받다가 그나마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식히곤 한다. 면적은 약 1.5㎡다. 누워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구조다. 가장 힘든 점은 혼자 농성한다는 점이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고공농성을 결심하게 됐는가?

내가 일했던 부평공장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해고자가 38명이다. 또 지금은 폐쇄된 군산공장 비정규직 8명이 복직을 내걸고 싸우고 있다.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해고 기간이 4년을 훌쩍 넘었다. 수년 동안 복직을 위해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렇게 많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8100억 원 정부 지원을 받았다. 또 올 하반기 부평공장은 현행 1교대를 2교대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따라서 사측이 추가 채용에 나설 텐데, 이번만큼은 비정규직 해고자가 반드시 복직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공농성을 결심하게 됐다.

본인은 한국지엠 비정규직으로 어떻게 일해 왔는가?

나는 2006년 엔진공장 하청으로 입사했다. 중간에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다가 해고됐고, 부평2공장 차체 공장으로 다시 복직했다. 복귀하고 일하는 동안 하청업체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업체가 바뀌는 주기는 계속 짧아졌다. 지엠대우 시절엔 원청 관리자가 퇴직 후 하청업체를 차려 운영하는 식이었다. 웬만해선 업체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원청이 최저입찰제를 시작하면서 하청업체들이 단가 낮추기 경쟁을 시작했다. 하청 공장가동률, 수익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는 틈만 나면 하청이 자주 바뀌고 비정규직만 내쫓기는 신세다.

과거엔 한국지엠 1차 하청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기본급은 낮아도 상여금이 임금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과 비슷한 지역에 있는 인천 남동공단, 부평공단의 비정규직보다 조금 더 높았다. 물론 그때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임금 차이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진 게 문제다. 재작년 회사가 비정규직 임금에서 교대제 수당을 뺐다. 또 최근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녹였다. 이렇게 1차 하청 비정규직 임금은 최저임금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2~3차 하청은 저임금 문제가 더 심각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구조조정을 어떻게 지켜봤는가?

2006년경 부평공장 1차 하청 비정규직은 1500명에 달했다. 지금은 500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부평에서만 1천 명 이상 사라진 것이다. 군산공장도 폐쇄되면서 1500명 이상이 쫓겨났다. 언제나 지엠은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노동자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데, 이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업체를 바꿔서 비정규직을 자르든지, 노조가 없는 하청일 경우에는 그냥 내보내든지, 어떻게든 비정규직 숫자를 먼저 줄였다. 그리고 ‘수익성 향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비정규직에 희생만 강요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출처: 김한주 기자]

1조 원에 가까운 정부 지원도 있지 않았나. 왜 비정규직 현실은 그대로인가?

8100억 원을 어디에 쓰는지 알 길이 없다. 일단 당연히 구조조정에서 벗어나는 데 썼을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이 희망퇴직하면 또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사측은 대외적으로 신차 투자를 확대하고 위기를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신차에 많은 돈을 쓰는 것처럼 들리는데 현실은 다르다. 부평1공장에서 신차 한 종을 생산한다는 계획만 있다. 현재 생산 차종은 창원공장 스파크, 부평1공장 트랙스, 부평2공장 말리부에 불과하다. 수입 차종은 여전히 늘고 있다. 허술한 신차 계획만 있을 뿐 비정규직 노동 조건은 언급도 없다.

한국지엠 자본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현대기아차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 지엠 전체로 보면 적자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유럽에 이어 러시아, 인도, 미국, 한국에서도 공장을 빼고 있다. 선제적이며 공세적인 구조조정을 세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글로벌 지엠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를 든다. 동시에 흑자일 때 미래차에 대한 자금 투여를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무슨 잘못을 하고 있나?

불법파견을 방치하고 있다. 불법파견 문제는 15년째 이어지고 판결도 잇따르는데 정부가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나 또한 2015년 1월 근로자지위확인 소를 제기하고, 지난해 2월 1심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다. 오는 11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민사11부도 지난 29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05명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한국지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인정하고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여러 번 내렸는데도 정규직 전환은 요원하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사용자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차를 보면 검찰이 직접공정, 간접공정을 구분하고 직접고용 범위를 최소화하지 않느냐. 노동부도 검찰을 따라가며 시간만 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는 똑같다.

불법파견은 한일 갈등만큼 사회적 큰 이슈라고 본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전국 300만 명에 달한다.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도로공사 등 모든 분야에서 불법파견 문제가 터져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 일자리 40만 개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약속한 대통령은 지금 어디 갔느냐.

비정규직지회는 사측과 교섭을 하고 있는가?

현재로선 교섭 구조가 없다. 한국지엠 원청은 비정규직지회와 교섭하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 하청업체와 교섭을 하긴 했는데 원청이 아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청 교섭으로는 고용조건이나 임금, 복지 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청 사장들도 자기들은 권한도 힘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원청과 교섭해야 한다. 그런데 원청은 법적 근거를 대며 자기는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

한편으로 한국지엠지부(정규직 노조)가 원청 교섭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지부는 조합원도 많아 교섭에서 힘이 있다. 올해 지부가 임금교섭에서 비정규직 문안을 넣고, ‘2교대 전환 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복직시킨다’는 요구안을 세웠다. 추석 전 지부 임금교섭에서 비정규직 문제도 타결되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해고자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법을 저지른 한국지엠 카허카젬 사장은 처벌받아야 한다. 곧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지금껏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추석은 ‘절망의 날’이었다. 한국지엠이 명절 휴가를 틈타 비정규직 대거 내몰기를 반복한 까닭이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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