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청년 이주노동자, 자르갈 씨의 퇴직금 찾아 삼만 리

[워커스 이슈②] 근로기준법 부정하는 고용허가제


[이슈②] 순서
1. 몽골 청년 이주노동자, 자르갈 씨의 퇴직금 찾아 삼만 리
2. 삼성화재의 현금인출기, 이주노동자 퇴직금?

몽골 청년 자르갈(가명) 씨는 근로계약서에 자꾸 손이 갔다. 기능과 한국어 시험, 인터뷰를 어렵게 통과해 한국 사업주에게 받은 ‘고용허가서’와 다름없는 증서였다. 몽골 칭기스칸국제공항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그는 혹시라도 입국이 안 되면 어쩌나 영 불안한 게 아니었다. 한국말도 영어도 자꾸 혀가 굳어 몸이 움츠려 들었다. 자르갈 씨가 한국 땅을 밟은 세 해 전 일이다.

자르갈 씨는 입국 뒤 바로 경기도 여주에서 3일 간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실시하는 외국인 취업교육을 받았다. 강사는 한국의 직장 문화와 간단한 한국말 같은 교육을 했다. 들뜬 마음에 강사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회사가 퇴직금으로 주는 출국만기보험과 임금체불에 대비해 보증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챙겨들었다. 또 자르갈 씨가 계좌를 만들어 내야 하는 비용도 있다고 해 우리은행에 한 구좌를 개설했다. 교육비 15만 원에 귀국비용보험 50만 원, 상해보험 2만원이 바로 빠져 나갔다. 모두 합하면, 몽골 공무원 초봉의 3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자르갈 씨를 고용한 업체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용접회사였다. 회사라곤 하지만 공장은 낡은 천으로 여러 번 덧댄 비닐하우스였다. 화재 위험 때문에 용접일은 주로 밖에서 했다. 하루 13시간 씩 쇠를 녹이는 요란한 기계음 속에서 불똥과 씨름하다보면 여름보단 차라리 겨울이 나았다. 보통 아침 9시부터 밤 8시 반이나 10시까지 꼬박 일했다. 토요일에도 오후 3~4시까지는 용접기를 들었다. 숨 돌릴 시간은 식사시간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밥은 입에 구겨 넣기 일쑤였다. 취업 전 회사는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그냥 컨테이너였다. 겨울에는 손발이 얼어 잠에 들었고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로 버텼다. 그래도 누우면 바로 골아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침이 잦아지고 팔뚝 여기저기에 화상이 늘었다. 몽골에 두고 떠나온 아내와 아기 얼굴이 떠오를 때면 가슴 한 켠이 묵직해졌다. ‘5년만 버텨보자.’ 자르갈 씨는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평균 주 70시간에 잔업이 적으면 200만 원, 많을 때는 240만 원까지 받았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을 제하면 매달 200만 원쯤 월급이 들어왔다. 그래도 가끔 서울에서 고향 사람들과 전통음식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1년 반 만에 고향에 다녀온 뒤로 아내가 둘째를 가졌다고 했다. 첫째 아이를 홀로 키우며 임신한 아내는 유독 힘들어했다. 임신 중독증인 것 같다고 했다. 자르갈 씨는 고민 끝에 한국 생활을 접기로 했다. 2년 2개월 만이었다. 돈이 아쉬웠지만 아내가 더 걱정이었다.

사장에게 그만 두겠다고 말하니 성가신 듯 ‘알았다’고 했다. 퇴직금을 묻자 스스로 삼성화재에서 받아가라고 했다. 어떻게 신청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고향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한 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 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활동가는 여섯 개 종류에 여덟 장이나 되는 신청서를 한글로 또박또박 적어 주었다. 그러면서 잔여퇴직금은 받았느냐고 물어왔다. 잔여퇴직금? 금시초문이었다. 삼성화재에 회사가 붓는 월급 8.3%의 보험료 외에 나머지 퇴직금이 또 있고 이 돈은 회사에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센터는 자르갈 씨가 차곡차곡 모은 급여명세서를 보더니 모두 180만 원을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르갈 씨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툰 한국말로 잔여퇴직금을 달라고 했다. 몇 번이나 연습한 말이었다. 사장은 대뜸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 귀국 날짜가 다가오는데, 피가 말랐다. 하지만 사장은 센터가 직접 묻자 당장은 돈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자르갈 씨는 한 달을 기다려 나머지 퇴직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비행기 표도 바꾸고 서류도 모두 다시 써야 했다. 그래도 센터는 자르갈 씨에게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그 말마따나 고향 지인 아무도 잔여퇴직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1)


고용허가제 15년, 또 다른 사슬

8월 17일로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다. 그 동안 사업장 이동의 자유나 비닐하우스 기숙사 문제 등 이주노동자들이 사실상 노예 노동을 하도록 하는 고용허가제의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 실태조사가 나오면서 고용허가제가 얼마나 이들의 노동권을 비웃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제도는 출국만기보험(출만금)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이 보험금의 존재를 아는 이주노동자는 적었지만 알기만 하면 출국 전 찾아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2013년 9월 당시 새누리당의 김성태, 김학용 의원이 퇴직금 지급시기를 퇴직 후 14일 이내에서 출국 후 14일 이내로 변경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고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하면서 지급시기가 현재와 같이 변경됐다. 출국하는 이주노동자만 퇴직금을 수령하도록 해 불법체류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였다. 개정안은 발의된 지 약 3개월 만에 통과돼 2014년 7월 시행됐다.

지급시기가 변경되면서 이주노동자 퇴직금 신청 절차는 훨씬 까다로워졌다. 우선 ‘외국인 근로자’(비전문취업 E9, 방문취업 H2) 고용주는 매월 통상임금의 8.3%를 삼성화재에 출금만기보험으로 의무 납부해야 한다. 출만금은 평균임금이 아니라 매월 단위의 통상임금에서 8.3%를 적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잔여퇴직금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는 삼성화재에는 출만금을, 사업주에게는 잔여퇴직금을 각각 신청해 받아야 한다. 이 퇴직금은 1년 이상 일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이탈이나 근로계약 해지, 사업장 변경 또는 영구 출국 등의 경우에 받을 수 있다. 출만금을 받기 위해선, 먼저 출국예정신고서와 비행기예약사본, 외국인등록증 사본을 지참해 관할 고용센터에서 출국예정신고를 해야 한다. 관할 고용센터에서 출국예정신고서를 발급받은 뒤에는 이와 함께 보험금 신청서, 보험금 동의서, 여권, 외국인등록증, 거래외국환 은행 지정 확인서 등 6개 종류의 서류를 삼성화재에 보내야 한다. 서류는 모두 한글이나 영문 2개 언어로만 기재할 수 있다. 수령도 출국하는 공항이나 본국에서만 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제도 때문에 처음부터 출만금 제도는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지급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퇴직금 수급을 막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우선 이 절차를 아는 이주노동자부터 드물다. 지난 8월 12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가 발표한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입국 전 퇴직금을 어떻게 받는지 교육을 안 받았거나, 받았어도 그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잔여 퇴직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응답자도 42.7%에 머물렀다. 이외에도 출만금 절차를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12.9%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주노동자 홀로 출만금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출만금을 신청할 때 내는 서류들은 한글이나 영문 2개 언어로만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담은 고스란히 이주·노동단체가 떠안는다. 일례로 충남 아산시 비영리단체인 아산이주노동자센터의 경우, 지난해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모두 640건을 상담했는데, 이 중 150건이 출국만기보험, 100여 건이 잔여금과 관련된 상담이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가한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알파벳 하나라도 틀리면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옆에서 돕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직접 퇴직금을 신청하기란 불가능하다”라며 “공항에서도 어디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몰라 종종 상담사들이 동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삼성화재에 출만금이 얼마나 납입돼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삼성화재는 그 동안 까다로운 퇴직금 절차에 대한 논란을 고려해 올해부터 EPS(고용허가제) 전용 모바일앱을 개설하고 보험 가입내역 조회부터 예상수령액 조회와 신청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구글앱독에 따르면, 설치 건수는 현재 1만여 건으로 설치한 등록자가 모두 이주노동자라고 전제해도 약 50만 이주노동자2)의 2%만 설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주노동자보다 사업주 우선하는 제도

까다로운 제도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을 수령을 방해한다면, 퇴직금 지급이 아예 차단되는 경우도 많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년 이상 근무하더라도 대개 퇴직금을 신청하기 어렵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할 경우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데, 그럴 경우 대개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면 불법체류 기간에 따라 최고 2천만 원까지의 범칙금을 내거나 강제퇴거명령처분을 받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일한 기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퇴직금을 대개 포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퇴직금 제도가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의 또 다른 족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2018년 1월 기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휴면 보험금 중 53%가량이 미등록체류, 즉 불법체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봤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15회 휴면보험금 등 관리위원회의 안건에 따르면, 지난 4년 간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법체류자의 휴면보험금 잔재 비율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국 시 가입해야 하는 귀국비용보험도 지급 대상자 우선순위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제외한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퇴직금을 사업주가 챙기는 경우도 있다. 정주노동자도 근무기간이 1년 이하이면 퇴직금을 못 받는데, 이주노동자의 경우 적립된 출만금은 사업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경우엔 1년 이상 일했어도 퇴직금이 사업주에게 돌아가는 조건이 있다. 삼성화재 외국인근로자전용보험 약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소재를 알 수 없어 출국만기보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는 경우, 사업주가 보험금을 수급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유족에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삼성화재는 사업자에게 처분내역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이주노동자 퇴직금 제도가 노동자보다는 사업주를 우선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있다. 이주노동운동 활동가들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퇴직금을 신청했다가 사장이 신고해 추방되거나 이주노동자들이 잔여퇴직금을 신청했다가 기업이 공제액을 늘려 오히려 회사에 내야 하는 납부액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출국 전날 삼성화재에 퇴직금 지급 정지를 신청해 이주노동자가 출국 때 퇴직금을 수령하지 못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

애초 이주노동자 퇴직금을 출국 뒤에 받게 한 것은 ‘불법’ 체류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체류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불법’ 체류자의 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출만금을 출국 후 받게 한 1년 뒤인 2015년 기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는 214,168명에서 2018년, 355,126명으로 65.8% 증가했다.

백선영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은 “이전에는 퇴직금을 못 받았다고 하면 사업주를 찾아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를 밟으면 됐는데, 지금은 이주노동자가 자기 퇴직금에 관한 정보부터 알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꼬집었다. 또 “임금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으로는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하는데, 출국만기보험은 출국 14일 뒤까지 받도록 해 제도 자체가 근로기준법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현재의 이주노동자 퇴직금 제도는 ‘불법 체류자’를 줄이지도,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권리를 보장하지도 못 한다”라며 “정부는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워커스 58호]

[각주]
1) 이 기사는 나라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활동가가 지원한 한 사례를 익명으로 각색한 글이다.
2) 2018년 12월 법무부가 발표한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비전문취업자는 280,312명, 방문취업자는 250,381명으로 모두 약 53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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