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 통화정책 체계 변경과 위기 대응

[워커스] 99%의 경제


지난 6월 4~5일 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에서 통화정책 컨퍼런스를 열었다.(1) 이 컨퍼런스는 파월 연준 의장이 밝힌 통화정책 전략, 수단,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리뷰 계획의 일환으로 학계, 금융권 등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개최됐다. 주요 논의 내용은 대안적 통화정책 체계, 제로금리하한(ZLB) 도달 시의 통화정책 수단, 노동시장 평가 등이었다.(2)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 논의를 진행한 이유는 현재 정상적인 통화정책의 효과가 전혀 없고 (실재하는지 의심스러운) 중립금리가 너무 낮아 이자율(기준금리)로 인플레이션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전통적 수단인 양적완화에 의존하고 있는데, 비전통적이라는 말만큼 (속류경제학적으로도) 이론적 기초가 없고 정상적이지 않은 정책수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수단을 언제까지 계속 사용해야 하고 금리정책과 같은 다른 통화정책 수단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그동안 계속됐다. 경기침체(recession)가 다가오는 가운데 연준이 어떤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했다.

통화정책 변경?

시카고 컨퍼런스가 연준의 통화정책 변경을 결정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무엇이 바뀔 것인지 구체적인 윤곽은 보여주고 있다. 첫째, 통화정책 체계로서 현재의 물가목표제(inflation-targeting)를 평균물가목표제로 변경하는 것이다.(3) 지금의 물가목표제는 인상폭에 관한 것이다. 이에 비해 평균물가목표제는 목표 물가의 평균을 설정한다. 그리고 호황기에는 물가가 평균을 약간 웃도는 것을 허용하고, 경기 침체기에는 목표치를 밑도는 것을 허용해 목표치 평균을 따라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통화정책 체계를 바꾸려는 이유는 통화 공급을 늘려도 인플레이션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오히려 연준의 신뢰도만 추락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2년부터 물가 목표치를 2%로 설정해왔으나 현실 물가는 최근 경기 확장기의 상당 기간 목표치를 밑돌았다. 작년 말 근원물가(4) 상승률이 1.9%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2012년 이후 평균 1.6%에 그쳤다. 물가가 연준의 목표치를 계속해서 밑도는 것은 물가기대를 2%에 고정하는 데 위험이 될 수 있다. 또 그만큼 연준의 정책은 신뢰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껏 온갖 수단을 동원했는데도 물가를 목표수준으로 올리지 못했는데 이를 평균치로 조정해 등락을 조절하겠다는 것이 과연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다.)

둘째, 통화정책 수단으로 금리정책을 사실상 폐기(내지는 부차화)하고 양적완화를 공식화했다. 낮은 중립금리, 제로금리하한(ZBL)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금리정책은 실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시기에도 올릴 수 없었고, 사실상 제로 금리 상태라 더 내릴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이런 금리정책보다는 비전통적 수단 즉, 양적완화가 금리인하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어차피 제로금리까지 내려가는 상황에서 금리정책은 무용하기 때문에 양적완화에 더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올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보다는 위기 조짐이 보이는 현재, 차라리 금리를 더 내려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연준은 경기침체 시에 매번 5% 포인트 정도의 금리를 내려왔다. 현재 2%대인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 했지만 경기의 하방 우려 때문에 금리를 더 올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터라 이런 움직임 자체는 연준의 금리 인하와 완화적 기조를 확대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양적완화를 공식화하는 것은 제로금리 하한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의 신용창조능력을 줄이는 것이라 가능한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해 둔 초과지준(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시중은행이 자금을 유치해 두지 말도록 대출을 권장하여 통화량 확대와 인플레이션 유발 조치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미국 은행들은 대규모 초과지준을 연준에 예치해 두고 있다. 연준이 시중은행에 초과 공급한 화폐가 남아서 다시 연준에 예치해 둔 것인데 이를 예금처럼 이자까지 주고 있다. 이 이자를 지준부리라고 부르는데 초과지준부리를 사실상 기준금리 수준인 2.35%나 지급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초과지준에 이자를 주던 것에서 정반대로 초과지준에 대해 수수료 형태로 중앙은행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므로 은행 채널에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연준은 은행의 신용창출을 확대하는 데 여념이 없다. 초과지준이 많아질수록 위기 시에 다시 시중은행에 공급할 명분이 높아지겠지만 초과지준부리는 일상적인 시기에도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화폐를 거저 주는 것이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연준은 지난 금융위기 당시 은행이 가지고 있던 주택저당증권(MBS)과 같은 부실자산과 연준이 보유한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를 서로 바꿔줬고, 투자은행까지 상업은행으로 바꿔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 결과 돈을 더 이상 풀 데가 없었던 시중은행들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에 남은 돈을 대거 예치해 두었다. 연준이 은행에 돈을 사실상 공짜로 주면서 쓰고 남은 돈에 이자까지 붙여 준 꼴이다.

셋째, ‘수익률 곡선 관리(Yield Curve Control)’가 새로운 통화정책수단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익률곡선은 미국 단기 국채와 장기 국채의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곡선이다. 평시라면 단기 국채 금리가 장기 국채 금리보다 높아야 하는데, 위기 조짐이 확산되면 단기 국채 금리가 떨어지고 경기 침체와 함께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상당히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 때문에 수익률 곡선은 위기를 예측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됐다. 그런데, 이 수익률 곡선을 미국 연준이 관리한다는 것은 단기 국채의 수익률을 조정한다는 것으로 미국 재무부 단기 채권을 연준이 정책적으로 매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가 다가올수록 단기 채권 금리가 떨어지고 그게 또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연준은 위기 대응을 위해 단기 채권을 매입하게 된다. 그런데 위기가 현실화되면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위해서도, 은행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연준은 (2008년과 같이) MBS와 같은 부실자산과 미국 국채를 교환해줘야 한다. 따라서 이는 연준이 시장보다는 정부로부터 국채를 매입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위기 시 정부에 화폐 공급을 확대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제로금리 하한 속에서 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은 사실상 민간 부의 증가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고 중앙은행이 이를 매입해서 재정정책 수단을 공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보면 이는 국가가 중앙은행을 동원해 국채 발행으로 정부 재정을 조달하는 ‘재정의 화폐화(monetization)’와 같다. 과거 70년대에는 중앙은행이 정부에 종속돼 재정의 화폐화 현상이 벌어졌다면 이제는 정부가 중앙은행에 종속되는 것인가 또는 이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처럼 연준의 최근 논의들은 인플레이션율을 올리고 연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통화정책 체계를 평균물가목표제로 변경하고, 제로금리 하한 속에서 금리정책은 사실상 포기하고 양적완화를 공식적인 수단으로 두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제로금리 하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한 통화량 조절은 이제 양적완화로 완전히 이동했고 공식적인 위기 대응 수단이 된 것이다. 또한 앞으로 정부로부터 국채 매입을 확대해 정부에 유동성 공급을 늘려 양적완화와 함께 위기 대응 수단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위기는 더 큰 위기를 낳는다

2008년 이후 따뜻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4차 산업혁명 등 말은 많았으나 자본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전략을 상실한 채 10년이 넘게 흘러가고 있다. 또 세계화에 균열이 생기고 자본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WTO는 기능을 상실한 채 무역 갈등을 당사국끼리 알아서하라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지난 경기순환에 대해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고 자평하는 주류경제학계에서도 빠르면 2019년 하반기 또는 2020년 이후 다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연준의 이런 논의들도 경기침체 시의 대응 조치를 공식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시 양적완화와 정부의 화폐 공급 확대를 통해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에서 다시 양적완화라는 수단으로 연명 치료를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지난 10여 년의 양적완화에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회복되지 못하고 다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풀려나간 돈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일시적 호황을 맞았지만 여전히 생산성은 침체되어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정상적인 경기회복의 조건인 과잉자본의 퇴출이나 한계 기업의 청산도 일어나지 않았다. 썩은 세포를 죽이거나 도려내야 하는데 양적완화는 그야말로 죽어가는 자본에 생명연장 장치를 붙인 것과 같은 꼴이 됐다. 매년 이자도 못 갚는 한계 기업들은 죽지도 않고 낮은 금리로 차입을 늘려가면서 목숨을 부지 하고 있다. 이런 좀비기업은 2008년 세계대공황 이전 보다 2배 이상 늘었다.(5) 더 큰 문제는 과잉자본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큰 과잉상태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아담이 금단의 사과를 먹은 이후 가장 많은 자본과 가장 많은 돈이 지구에 흘러넘치고 있다.(6)

부채를 줄이고 환부를 도려내지 않는다면 (이른바, 창조적 파괴) 지속된 위기를 벗어날 계기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양적완화와 낮은 이자율로 기업부채도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이어 양적완화와 같은 위기 대응이 더 큰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또한 가계 부채는 모른 채하며 양적완화로 은행과 대자본 살리기에 몰입하면서 노동자 대중의 지속적인 반발에 직면했던 지난 10년을 기억해야 한다.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운동은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양적완화는 물론이고 현재 초과지준에 대한 이자지급도 맹목적으로 은행을 구제해주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와 서민을 희생시켜 자본을 구제하려는 미국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은 결국 자본에 더 큰 위기와 침체를 그리고 저항을 낳을 것이다.[워커스 58호]

[각주]
(1) https://www.federalreserve.gov/conferences/conference-monetary-policy-strategy-tools-communications-20190605.htm
(2) “연준의 시카고 컨퍼런스 내용에 대한 투자은행의 견해”,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2019. 7.
(3) 연준은 평균물가목표제와 명목GDP목표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명목GDP목표제는 물가 관리라는 연준의 법적 의무 범위를 넘어서 직접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에 회의적이다.
(4) 물가 변동을 초래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일시적인 공급 충격의 영향을 제외한 기초적인 물가
(5) 전 세계 기업의 10% 이상이 좀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상장사 4곳 중 1곳은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대출금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다. 이 ‘좀비기업’은 2015년 451곳, 2016년 463곳, 지난해 506곳 등 수년 째 증가세다. 저금리 기조에서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6) 국제금융연구소(IIF)에 따르면 2018년 1분기 현재 전세계 부채는 247조 달러(28경 2049조 원)에 이른다. 이는 비금융기업 부채 74조 달러, 정부 부문 부채 67조 달러, 금융 부문 부채 61조 달러, 가계 부채 47조 달러 등이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318.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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