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의 일그러진 초상

[워커스 세 줄 요약] 김가영, 「‘밀레니얼(Millennial)’ 만들기와 청년성의 전유」, ≪인문사회과학연구≫, 20권 1호, 2019년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접해봤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의 일독 권유를 통해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 전부터 1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라던데 이제 더 나가게 생겼다. 이 책은 X세대 이후 밀레니얼 세대의 독특성을 다뤘지만 막상 읽어보면 별로 얻을 게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청년담론 연구자 김선기는 이 책의 화제성을 두고 “이런 방식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 내 파트너를 알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세대를 잘 식별할 수 있도록 ‘90년대생’ 또는 ‘밀레니얼 세대’라 이름 붙인 뒤 서로 잘 지내도록 하자는, 딱 그 정도 이야기인 셈이다.

어쨌든 이 책 자체가 아니라 이 책을 둘러싼 현상에 대해선 조금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만큼 기성세대들이 새로운 세대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분석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겠고. 혹시 모르니 밀레니얼 세대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요약하면 대강 이렇다.

— 전세계를 풍미했던 X세대의 다음 세대로 이른바 Y세대로도 불린다.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생년은 대략 1990년대생에서 2000년대생 쯤에 해당. IMF 구제금융을 구전으로만 들었을 뿐 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 그들의 부모세대가 바로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식으로 하면 바로 386세대.
— 일반적으로 대학진학률이 높다. 그렇지만 저성장의 여파로 사회경제적 행위 패턴이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이를테면 N포세대 담론이 적시했던 몇몇 특징들을 공유한다. 결혼에 대한 유연한 태도, 주택 소유보다는 임대를 선호 등등. 오히려 자아실현에 관심이 더 많다.
—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서 미디어 감각 자체도 이전 세대와 많이 다르다.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접하고 또 그 안에서 사회적 행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세대 담론이 그랬듯 밀레니얼 세대 담론도 마케팅 분야와 관련이 깊다. 구매층의 특성을 잡아야 상품도 기획하고 홍보도 가닥이 잡히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면 386세대, 88만원세대, N포세대처럼 정치사회적 특징을 포착하려는 예외적 경우도 있긴 하다. 그래야 청년이라는 표상을 통해 사회 전체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 밀레니얼 세대 담론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얼마 전 다른 지면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특별히 ‘일터’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이들에 대한 세대적 특징을 포착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회식은커녕 잔업에도 칼 퇴근하는 세대, 업무 지시를 하면 어디서 수가 틀렸는지 이상망측한 반응을 보이는 세대, 근무 시간 외에는 카톡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는 세대. 놀랍고 또 두려운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특징을 목록화한 것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김가영의 논문 제목처럼 ‘만들기’ (making)의 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밀레니얼 세대론은 이제 그 지점에까지 이른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밀레니얼 세대의 초상을 통해 이 담론이 실질적으로 어떤 맥락에 놓여 있고 또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관심에 ‘노동’이라는 문제가 연루돼 있다면, 우리는 이 담론을 두고 앞으로 노동을 특정한 방식으로 재조직하려는 모종의 집합적 프로젝트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김가영의 「‘밀레니얼(Millennial)’ 만들기와 청년성의 전유」를 거칠게 요약하면, 밀레니얼 세대론은 ‘플랫폼 경제에 조응하는 자아집중적인 노동 윤리’이다. 일단 이렇게 정리를 하긴 했는데 역시 쉽지 않은 말인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일까? 논문을 따라가 보자.

1. 연구자 김가영은 혁신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느 청년 집단과 어울리며 참여 관찰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밀레니얼 세대답게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한편 타인들과 서로의 참된 자아를 상호존중하는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2. 흥미로운 점은 세계에 대한 그러한 바람이 첨단 기술과 플랫폼을 이용한 자율 노동 그리고 네트워크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실제로는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그와 같은 ‘믿음’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기 위해 오늘날 플랫폼 비즈니스 환경이 전파하는 노동 윤리를 반복적으로 습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 그들이 ‘사랑’하는 노동윤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들의 주체성과 개성이 플랫폼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즉 실제의 삶이 자율성과 네트워크로 이뤄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는 것(신실성)이다. 따라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밀레니얼 담론은 특정한 주체성을 기획하고 심지어 주체 스스로 운용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김가영의 논문은 기존의 청년 담론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인문사회과학의 비판적 논점들을 이어받는 미덕을 보여준다. 자신이 언명하듯, 오늘날 청년들은 청년으로서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규범적 사회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진단, 그리고 그럼에도 청년이니까 사회를 일신할 수 있는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처방에 직면한다. 그러나 김가영은 현실의 청년들은 그 사이 또는 그 너머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가 보기에 밀레니얼 세대론의 특징을 지니는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득세하는 ‘전체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기보다는 ‘나다운 삶’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덕업일치’, 자율노동 같은 덕목이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변동의 혜택에 힘입어 그런 참된 자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가능하기를 소망한다. 친밀성, 관계, 네트워크 등이야말로 그들이 소원하는 사회의 다른 형태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실성’(sincerity)이야말로 중요한 매개자 구실을 한다. 플랫폼을 통한 자아실현과 사회구성이 애초부터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지적은 오늘날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자유노동이란 그 자신이 자유로워진 나머지 자유롭게 자기의 삶을 갈아 넣어야 하는 특수고용 상태를 일컫는 말임이 분명하다. 네트워크의 직조 형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성은 ‘적대 없는 연대’라는 가상을 창출할 뿐 불평등·착취·차별·혐오로 점철된 사회 체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 그 영향력이 지극히 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때 등장하는 구원투수가 바로 신실성이라는 마음가짐이다. 자아는 응당 자유로워져야 하고 인간관계는 응당 상호연결돼야 하기에, 후기산업사회가 제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주체성은 좀처럼 거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상상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아니겠는가. 자기의 마음을 다시 부여잡고 플랫폼 위를 떠돌면서 타인들과 접속하는 것.

논문의 시사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밀레니얼 세대론은 청년들의 믿음·소망·사랑을 전유함으로써 스스로를 헤게모니화 하는 현 시기의 지배적인 노동윤리를 재현해내는 셈이다. 다만 이 논문의 연구설계가 시사하듯,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 윤리가 ‘비물질노동’ 분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여전히 더 많은 경제활동인구가 밀집해 있는 제조업 등 물질노동 분야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인한 작업장 문화에서의 세대적·내면적 갈등이 아예 관찰되지 않거나 적어도 논문에서 제시하는 바와는 다른 양상을 띨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물론 밀레니얼 세대론이 오늘날 가장 유력한 청년-주체성 논리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단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들은 거짓으로 참을 호도하는 게 아니라 부분적 사실로 전체적 진실을 은폐할 따름이다. 다시금 맨 앞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론을 익히면 세대갈등을 줄이고 작업장 문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회적 화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엄혹한 결과를 초래할 노동윤리와 고용논리 또한 순탄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가영의 논문을 다 읽고 나면 뭔가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일그러진 초상을 하고 있다.[워커스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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