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이 점을 보는 이유

[워커스] 이어 말하기


일 년 새 점을 세 번 봤다. 부득불 예약을 해서 점을 보러 가진 않지만 되도록 점 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챙기려 한다. 11월 홍콩 웡타이신 사원에서 산통점, 12월 홍대에서 신년 토정비결, 그리고 3월 천안에서 토정비결을 또 봤다. 홍콩에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물어봤고, 홍대에서는 신년이 궁금했고, 천안에서는 그냥 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 별자리 포춘 텔러의 신년운세 팟캐스트도 들었으니 신점 빼고는 거의 다 본 셈이다. 내겐 신점을 볼 정도의 돈도 없다.

사실은 점을 보는 것보다 복기하는 게 더 좋다. 당신은 언제쯤 이럴 것이다, 이때가 시험 운이 좋다거나 하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일단 내 계획을 밀어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더러 관운이 좋다고 한 적도 있었단 말이다. 나는 관공서 분위기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데, 관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운명만은 거스를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게다가 관운을 위해 시험공부를 또 해야 한다니

이런 비극이 따로 있나. 아무튼 점 내용을 잊을 때쯤 점 본 내용을 복기하는 것이다. ‘지금 너무 그 점을 복기하고 싶어!’라는 욕구가 생기게 돼 있다. 보통 인생을 비관할 때가 그렇다. 그렇게 일정 기간의 지난날 SWOT 분석을 시작한다. 말이 분석이지 취할 말만 취하고 버릴 말은 버린다. 이 땐 잘한 결정이었군, 이건 토정비결 얘기를 거스르길 잘 했어. 지금은 이런 조치를 취할 때군. 이따금 한가한 날에는 23시 50분경 그날 하루의 운세를 본다. 이것도 꽤 재미있다. 아무튼 다 나 좋자고 하는 짓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력하기도 하다. 미래를 생각할 때 벅찬 기쁨이 차오른다면 자신의 명의로 동산이 있거나 부동산이 있거나 둘 다 있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동산도 부동산도 없고 빚만 있으니 내 미래를 좀 대비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니 점 보는 일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인류가 아무리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그래도 점은 유구한 인류의 역사를 조합해서 통계 낸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쉽게 비빌 언덕은 점밖에 없고 그 속에서 실수를 방지할 수도 있겠지. 학자들의 미래 예측이나 충고보다 토정비결이나 근거를 유추할 수 없는 신점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후자는 밑도 끝도 없이 노력하라고 충고하지 않으며, 노력하라고 충고한다 하더라도 (음력인지 양력인지는 모르겠으나) 3월에 대운이 들어온다는 단서 정도는 들어준다. 나는 이런 얘기는 들어봤다. ‘자기는 별로 노력을 못 하네, 어차피 못 할 팔자야. 그냥 살아.’ 어디 계속해봐라.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점집 갔다고. 이런 사회를 살고 있다.

점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인생지대계(人生之大計)는 알고 보니 다 유예의 반복이었다. 공교육-입시-대학-취업은 과정이 아니라 매 순간이 불안한 다음을 위한 유예였던 것이다. 공교육은 초중고 3차 유예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대학은 휴학에다 심지어 졸업 ‘유예’ 시스템까지 있으며 취업은 인턴이 있다. 학자금 대출은 취업 후 상환(유예)학자금 대출까지 있다. 이 괘씸한 책임 미루기 유예라니. 얼마 전에는 만료된 어학 자격증 시험을 다시 봤다. 11만 원으로 응시하고 다시 2년 유예(연장)했다. 시험은 그 사이에 더 어려워졌다. 내가 이렇게 유예하는 건 도대체 이유가 뭐야. 난 매 순간 열심히 살았다고. 이게 다 동산과 부동산이 없어서 그렇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 노력하고 열심히 살 것이라는 다짐은 없다. 다만 어디 가서 누굴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 가서 면목 있을 정도로만 한다. 그러니 큰 뜻은 없고 ‘미션 클리어’하는 마음가짐으로 산다. 지각하지 않기, 업무 처리하기, 때맞춰 밥 챙겨 먹고 퇴근하기, 최대한 재미있고 예쁜 것 보기.

사실 과거의 신상하가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 노력하고 열심히 살 것이라는 다짐’이 없었기에 현재의 신상하가 피를 보는 이해관계는 있다. 최소 3000만 원 짜리 학사학위 종이 한 장을 위해 떠안은 학자금 대출을 현재의 신상하가 갚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달에 수십만 원에 달하는 입시 학원비와 5년 동안의 생활비를 합치면 학사학위 종잇장 가격은 훨씬 뛸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나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과탑’을 해서 학자금 대출을 줄여보겠다고 공부로 발버둥 칠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대학은 응당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몇 천만 원까지 내면서 대학 갈 필요가 있겠냐고 십 대의 나에게 조언한 어른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발버둥 치기도 싫고 대학 졸업장은 필요했던,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나다. 지금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미래의 신상하가 알아서 하겠지.’

그럼에도 나는 인간 된 원죄가 있기에 그 원죄를 현재 내 선에서 갚으려 한다. 현생에 치여 나만의 예민 스위치가 전부 꺼져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가 싫어지면서 종이컵을 신나게 썼던 적이 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미국인들처럼 종이컵을 펑펑 쓰는 나를 발견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텀블러를 챙기고 다닌다. 육고기 삼가기, 혐오 표현에 묵인하지 않기, 끊임없이 공부하기. 불안한 미래는 나로도 충분하지 지구온난화와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덧붙여주고 싶지 않다.

사회는 이렇게 생겨먹은 나보다 글러먹기를 한참 글러먹었는데, 정작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에 길 가다가도 분노가 밀려온다. 응시료 11만 원을 결제하면서, 텀블러를 가방에 넣으면서, 삼겹살집 마스코트가 돼지인 것을 보면서, 예쁘다는 칭찬이 왜 칭찬이 아닌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학자금 대출 잔액을 보면서, 한국 대기업이 미국에서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남자 살인범에게 내려진 형량을 보며 분노가 밀려온다. 내가 연신 공부한 것은 무엇인가? 이젠 실천도 소용없는 것인가? 분노는 이제 무기력으로 기화될 것이다. 분노하랴, 점 본 것 SWOT 분석하랴 내 일상은 정신없다. 인생을 비관할 때 점 본 것을 복기하니까 빈도는 더욱 잦아져 앞으로는 하루 걸러 하루씩 복기하게 될 것이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는 식의 대책 없는 희망과 위로의 말보다 점집이 차라리 낫다. 홍콩의 웡타이신 사원에서는 내 가치를 위해 공부를 해야만 될 것이라 했으며, 홍대에서는 4-5월에 사람을 조심히 하라고 했으며, 천안에서는 해석해주시는 분과 나를 동시에 놀라 뒤집어지게 한 조언을 해 주었다. 세상 어느 누가 나에게 이토록 세심한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점집과 청년 당사자 말고는 네 분수를 알렸다, 아무도 청년에게 숟가락 얹을 생각하지 말라![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