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과 교섭을 지배하는 사측의 무기, ‘필수유지업무’

노동위원회와 사측의 필수유지업무 남용...공공부문 노동3권 발목 잡아

정부기관과 기업, 고용노동부가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남용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측이 필수업무율을 과도하게 요구해 파업을 유도하거나, 노동위원회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필수유지 운영수준을 결정해 파업을 무력화하는 식이다.

필수유지업무란, 업무가 정지될 경우 공중의 생명과 건강,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현행 노조법에 따르면 철도 및 도시철도, 항공운수, 수도, 전기, 가스, 석유, 의료, 한국은행, 통신사업 등이 필수유지업무에 해당된다. 필수유지사업장 노사는 쟁의행위 기간 최소한의 업무 유지를 위한 필수유지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노사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이를 결정하게 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사용자의 무기가 된 필수유지업무제도

최근 지하철,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사측이 필수유지 운영수준 결정을 두고 노조를 압박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용인경전철의 경우, 노사 교섭이 시작되자마자 사측이 필수유지협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사측은 일부 업무에 대해 100% 필수유지율을 제시하거나, 교섭이 난항을 겪자 발 빠르게 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유지수준 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측이 필수유지율 결정에 적극적인 까닭은, 필수유지율이 높게 결정되면 노조의 단체행동권이 가로막혀 사실상 노조 무력화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석주 공공운수노조 용인경전철지부장은 “단체협약 교섭과 함께 필수유지협정도 논의하기로 했는데, 사측은 단협 논의 보다는 필수유지협정 교섭의 차수를 올리는 데 집중을 했다”라며 “고객지원팀의 경우 노조법 상 필수유지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높은 수준으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관제팀은 평소에 5명, 휴가기간에는 4명이 3조대로 근무하는데, 회사는 관제팀 필수유지수준을 5명, 즉 100%로 제시했다”며 “필수유지업무제도라는 것이 공중의 생명과 안전을 현저히 위협하지 않도록 최소 유지율을 정하는 것인데, 그럼 회사가 휴가기간 공중의 생명과 안전을 현저히 위협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15일 전면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해선지부 역시 필수유지율을 놓고 회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 회사가 필수유지율 없이 파업에 나설 경우 불법파업으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 까닭이다. 서해선 노사는 그동안 필수유지협정을 위한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 결정을 신청한 상태다.

정문성 공공운수노조 서해선지부장은 “회사는 전체 60~70% 가량의 필수유지율을 제시했고, 상황실과 운전취급직종은 100%의 유지율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사장은 지난 7일 서한문을 발표해 “현재 우리 사업장은 노사간 필수유지업무협정이 미체결 상태로서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노사간 필수유지업무협정의 체결 전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라며 “만일 이번 쟁의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무노동, 무임금원칙은 기본이고, 파업관련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및 인사상 불이익 등의 처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인경전철지부와 서해선지부는 모두 올 초 노동조합에 가입한 신생 노조들이다. 두 사업장은 오는 11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필수유지결정사건 조정회의를 앞두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도 필수유지업무 수준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LG유플러스도 노조에 83%라는 과도한 필수유지율을 제시하면서 필수유지협정 교섭이 결렬됐다. 심지어 해당 사업장의 단체협약에는 필수유지업무협정에 준하는 조항이 남아있어, 회사가 노조 무력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필수유지율을 높이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종삼 희망연대노조 한마음지부 지부장은 “20년 전 총파업 당시 단체협약에 관제업무의 20%를 필수유지업무로 남겨 놓는다는 조항을 만들었고 현재도 유효하다. 그럼에도 회사는 83%의 필수유지율을 제시하며 필수유지협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해당 사업장의 필수업무율 결정은 서울지노위로 넘어간 상태다. 통신업계에서는 필수유지업무와 관련한 첫 결정이라 노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는 11일 파업을 앞두고 있는 전국철도노조와 16일 파업 돌입 예정인 서울교통공사노조 등은 회사와 필수유지협약을 체결한 사업장들이다. 박지영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보통 60~70%대로 필수유지협정을 체결하는데, 파업참가 인원의 50%를 대체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어 사실상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정상운행이 이뤄진다”라고 설명했다. 필수유지율이 가뜩이나 높은데다가, 대체인력까지 투입 돼 쟁의행위가 완전히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서 박지영 국장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회사가 시행령에 명시 된 필수유지 업무 외에, 필수유지업무에 해당되지 않는 업무까지도 필수유지율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의 의미도 모르는 노동위원회...필수유지율은 무조건 높게

노사간 필수유지협정이 불발될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필수유지 운영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노동위원회 역시 구체적인 근거 없이 필수유지율을 높게 결정하고 있어, 단체행동권 무력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현재 노동위원회로부터 필수유지 운영수준이 결정된 사업장은 서울9호선운영(주)(9호선 1단계)와 부산교통공사 등이다. 서울9호선운영(주)의 평균 필수유지율은 62.5%, 부산교통공사 1~3호선은 64.5% 선으로 결정됐지만, 부산교통공사 4호선은 무려 76.1%로 결정됐다. 노동계에서는 전문성이 갖춰지지 않은 노동위원회 위원들이, 별다른 근거 없이 ‘정상운행’에만 맞춰 높은 필수유지율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부산교통공사 4호선의 필수유지업무 유지운영 수준을 결정한 결정문에 따르면, 관제업무는 100%, 차량 점검 및 정비 업무는 78%, 선로 점검 및 보수 업무는 75% 등으로 필수유지율을 결정했다. 관제업무와 관련해서는 ‘항상 일정한 업무 수준이 유지’ 돼야 하며, ‘파업을 비롯한 비상시에는 정상적인 열차 흐름을 저해하는 요인의 발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차량점검 및 정비 업무는 ‘정비업무가 관제업무 못지않게 중요성이 크다’는 이유로, 선로점검 보수 업무는 별다른 설명 없이 ‘쟁의행위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작업 시 안전 확보를 위해 평소와 같이 운영함이 타당’하다는 이유 등으로 높은 유지율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노동위원회가 업무의 정상 운영을 저해하는 ‘쟁의행위’와, 최소한의 유지운영 수준만 남겨 놓는 ‘필수유지업무’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사측으로서는 노동위원회의 높은 필수유지율 결정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용인경전철 같은 사례에서 보듯, 회사가 직접 나서서 노동위원회의 판정을 구하기도 한다. 지금껏 노동위원회는 관제업무 등에 대해 100%의 필수유지율을 결정해 왔으며, 현재 필수유지업무협약 체결을 앞둔 사업장의 회사들은 이와 비슷한 수준의 유지율을 노조 측에 요구하고 있는 추세다.

사정이 이렇지만, 노동위원회로부터 필수유지율이 결정되고 나면 돌이킬 방법이 많지 않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필수유지업무제도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필수유지율 결정에 대한) 불복방법도 위법, 월권에 한정돼 있어서 실효성이 없다”며 “실제 2008년 이후 노동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필수유지업무 결정이(특히 유지율의 과다) 이후 사법적 통제과정에서 시정된 건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충 걸면 걸리는 ‘필수유지사업장’...노동3권 무력화

현재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받는 사업장들이 실제로 ‘필수유지사업장’인지 여부도 이견이 상당하다. 노동위원회에서 높은 필수유지율을 결정했던 부산교통공사 4호선이나 용인경전철, 서해선 등은 기존의 중량전철과는 다른 수송체계다. 이러한 가벼운 전기철도인 경전철은 지하철과 버스의 중간 정도의 수송능력을 갖춘 대중교통 수단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버스보다 운송부담률이 낮지만, 버스는 노조법상 필수공익사업장에 해당되지 않는다.

[출처: 철도노조]

실제로 용인경전철의 교통분담율은 7.1%로 버스(25.8%), 승용차(60.1%)보다 현저히 낮다. 심지어 용인경전철은 열차 1량으로, 경기지역 2층 버스보다 좌석수도 적다. 이석주 용인경전철 지부장은 “올해 1월 기준, 용인경전철은 하루 2만 8천여 명이, 경기지역 66번 버스는 3만 2천 명이 이용하고 있다”며 “필수유지업무의 실질적 요소가 ‘공중의 생명과 안전을 현저히 위협’한다는 것인데, 운송부담률이 버스보다 낮은 경전철에서의 쟁의행위가 공중의 생명과 안전을 현저히 위협하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해선의 경우도 운송부담률이 4%에 불과하다.

LG유플러스 같은 통신사업 분야 역시 필수유지업무 여부인지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이종삼 한마음지부 지부장은 “(필수유지사업장으로) 포함될 이유가 없다. 불편이 있을 뿐이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생활의 저하를 가져오거나 통신 암흑이 일어날 일이 없다”며 “현재 시스템이 구축 돼 있고, 시스템 안에서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화가 돼 있다. 다만 사측은 전화가 끊기는 상황 같은 불편으로 고객이 이탈할 것을 걱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필수유지업무는 국민의 생명과 생활에 현저한 영향을 주는 업무인데, 고객이 이탈할까봐 필수유지업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필수유지업무의 과도한 적용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영향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박지영 국장은 “필수유지율이 높을 뿐 아니라 대체근로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측이 교섭에서 전향적인 안을 내지 않는다”며 “때문에 교섭 단계부터 대화로 해결이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회사는 파업을 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단체행동권 뿐 아니라 단체교섭권도 제약을 받으며, 사실상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이 무력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필수유지제도로 인해 노사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파업이 장기화되기도 한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부산지하철노조의 경우 필수유지제도가 도입된 2008년 이후 파업일수가 대폭 증가했다. 제도 도입 전에는 평균 3일 이었던 파업일수는 2009년 7일, 2016년 21일로 늘었다. 철도노조 역시 제도 도입 후 2013년 23일, 2016년 73일간의 파업을 진행했다.

한편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한국정부에 철도 및 지하철분야를 필수유지제도 적용에서 제외하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ILO는 ‘필수서비스’를 시민의 생명과 신체적 안전, 건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의료와 전력 및 수도, 소방서비스, 경찰 및 군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공공운수노조는 도시철도 분야의 일시적 운행정지는 공중의 생명, 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유지율은 0%가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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