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이 뭐예요?

[기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아 삼만 리

2003년 10월 26일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바로 이용석 열사다. 이 날을 잊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해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열고 거리로 나와 열사의 뜻을 기억하고 알렸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비정규운동본부)도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 ‘비정규 철폐 투쟁주간’을 선포하고,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투쟁을 지역사회에 알려내고, 연대의 힘을 모으려고 한다. 여기에 정부의 노동법 개악 공세로 묻히고 있는 ‘노조법 2조 전면 제개정’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려고 한다.

올해 충북지역 비정규노동자 투쟁은 민간위탁 노동자들, 특히 폐기물수집운반노동자들이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만들면서 차별의 일터를 바꾸는 활동도 다양하게 펼쳤다. 대부분이 하청, 용역, 민간위탁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도 본격화됐다. 이번 기고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한다. 차별의 일터를 바꾸기 위한 비정규노동자들의 외침과 행동, 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출처: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낯선 단어들

“우리 설문지가 어려운 것 같아요. 취업규칙이 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꽤 있어요”
“탄력근로제, 노사협의회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올해 3월, 충북 음성에 있는 원남산업단지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 원남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이하 사업단)은 두 달에 걸쳐 노동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곳 산업단지 사업장들의 종사자 규모는 평균 35.7명.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68개 사업장 중 46개에 달하는 그야말로 작은 사업장 밀집단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업장이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가 없다. 노사협의회라는 말이 낯 설 수밖에 없는 것. 취업규칙은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나 적용되는데 노동자가 30명도 안 되는 사업장에서 취업규칙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차 싶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권리를 찾는다면서 그들의 처지와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역시 ‘배제’가 용인되는 법제도에 무감했던 것이다.

천장에 달린 취업규칙 겉표지

사업단은 고민에 빠졌다. 노사협의회도, 취업규칙도 알지 못하는 처지의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근속년수 2년 미만의 노동자들이 절반으로 상용직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고,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3명 중 1명꼴, 하루 평균 7천 원~1만2천 원씩 떼이면서도 일자리를 찾아주는 직업소개소가 고맙다고 여기는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건네는 이야기들은 낯선 단어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출처: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취업규칙 바로 알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때요? 10명이상 사업장이면 취업규칙은 있어야 하잖아요. 취업규칙에는 임금, 휴게·근로시간, 징계와 해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안전보건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으니 그것부터 얘기해요”

사업단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취업규칙 바로 알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최소한 있는 법이라도 지켜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취업규칙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악용 사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문제 등을 담은 기획 선전물을 매주 발행해 노동자들을 만났다.

“A사업장은 취업규칙 겉표지만 천장에 달아놨대요”
“B사업장은 취업규칙이 있냐고 물어보니 사장실에 있다고 했대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져왔다. 노동부에 신고를 하고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했다.

2주가 지났다.

“선전물을 나눠주며 물어보니 취업규칙이 게시되기 시작 했어요”

반응이 오니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취업규칙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만든 것에 불과한데 이걸 보자고 캠페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3주차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 노동자가 찾아와서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변경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자꾸 바꿔요”라고 한다. “불이익 변경은 노동자들의 과반수 동의가 있어야 해요. 일방적으로 변경하면 무효예요. 어디 사업장이세요?”

이제야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규정하는 회사의 규칙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최소한 법에 있는 권리부터

10명 내외의 사업장에 실제 일하는 노동자는 더 많다. 일감에 따라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이주노동자다. 낡은 12인 승합차에 15명씩 짐짝처럼 실려서 출근을 한다. 이 노동자들에게 ‘근기법 준수, 노조 할 권리’는 언감생심이다. 매일 저녁 문자로 출근 여부를 확인한다는 하청·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으면서도 정규직이 아니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규모가 작으니 법에 있는 권리도 적용 제외다. 근속도 절반은 2년 미만이니 안정된 일자리일 리가 없다. 구직란에 등록한 20개 업체 중 연 2,500만 원 이상의 임금을 주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니 저임금은 당연하다. 이렇듯 저임금·불안정노동은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겪는 일이다. 비정규운동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로 시선을 넓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제 사업단은 출범할 때에 비해 목표가 소박해졌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있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보장할 수 있게 하자’는 구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권리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들과 함께 ‘권리 찾기 삼만 리’. 그 여정이 짧지는 않지만, 가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