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두 달, 8번의 ‘정규직 판결’에도 해고된 사람들

[워커스 르포]46명 복직 투쟁 중인 한국지엠 군산·부평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이영수 씨가 지난달 25일, 철탑 고공농성 61일 만에 농성을 해제했습니다. 46명의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해온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후 카허 카젬 사장 구속 요구 투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8번의 ‘정규직 판결’에도 61일간 고공농성을 이어온 이영수 씨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 편집자주


  10월 16일 컨테이너박스로 굳게 막은 한국지엠 서문 [출처: 연정]

공간이 협소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10월 16일 오후.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대로에 위치한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앞.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한국지엠 자본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 준비가 한창이다. 철탑 고공농성 52일 차를 보내고 있는 한국지엠 부평공장 해고노동자 이영수 씨(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소속)의 모습이 보인다. 집회 준비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영수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고생 많으시죠?”


지난 8월 25일 새벽, 영수 씨는 자신이 쌓은 철탑에 올라 스스로를 고공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투쟁을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어 철탑을 만들어서 올라가야 했다.

“몸은 걱정할 만큼은 아니에요. 아침저녁 온도 차이가 심해서 감기에 안 걸리려고 조심하고 있어요.”

가능한 잘 먹으려고 하는데, 공간이 좁아 움직임이 적다 보니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최근에는 간단하게 조리를 해서 먹을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하루의 일상을 물었다.

“아침 오후 선전전 2~3시간, 문화제 1~1시간 반, 이렇게 밖에서 4시간 정도를 보내요. 식사하고 씻고 정리하고, 화장실 가는 것은 평소와 다르니 시간이 좀 걸려요. 나머지 시간은 운동도 하고, 휴대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고, 발언 준비도 해요. 또, 개인적으로 공부도 하고, 책도 봅니다. 더울 때는 낮에 뭘 하는 게 엄두가 안 날 때도 있었어요.”

좁은 공간에 짐이 제법 많아져 짐 정리 겸 ‘농성장 꾸미기’를 하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정 중 하나다. 고공농성장 전체 크기가 1.4m×1.7m이고, 이 중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진 천막이 1.2m×1.7m 정도 된다고 했다. 다행히 키가 큰 편이 아니라 다리는 펴고 잘 수 있다며 영수 씨가 웃는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은데,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지난 추석 영수 씨는 고공농성 때문에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영수 씨의 부모님은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대강만 알고 계신다고 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인터넷 검색을 하시니까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가족들도 제가 이런 일 하는 걸 알고는 있는데, 몸 상하지 말라고 서명이라도 해서 도와주겠다고 해요. 제가 서명은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얘기했어요(웃음).”

6년 만의 복직, 비정규직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영수 씨는 해고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5월에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영수 씨는 엔진공장에서 엔진조립 업무를 하다가 1년 만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첫 복직 투쟁 4년 동안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부평구청역 CCTV 철탑 고공농성, 서울 한강대교 아치 고공농성, 부평역 CCTV 철탑 고공농성, 한국지엠 정문 아치 위 고공농성, 단식농성 45일 등 말로 다 헤아리기 어려운 투쟁을 했다. 심지어 한 노동자는 마포대교 난간에 밧줄로 묶은 바구니에 들어가 수상 시위를 하다가 소방관이 내려오자 한강으로 뛰어내려 구사일생으로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마지막 고공농성이 끝나자 사측은 정문 아치를 없애버렸다.

영수 씨는 4년 투쟁 끝에 복직에 합의하고도 2년 가까이 기다려 2013년에 복직했다. 복직 뒤에도 엔진공장에서 엔진 헤드 정밀가공 업무를 했다. 지금은 단종된 쉐보레 아베오가 영수 씨가 만들던 차량이다. 그렇게 3년 일하다가 해당 공정이 폐쇄되고 나서는 차체 공장에서 용접 일을 했다.

“공장 일이 처음에는 힘들어요. 살이 쫙 빠져요. 다이어트 하러 공장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복직하고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는데 2~3개월 지나니 조금씩 편해지더라고요. 익숙해지는 건데, 그만큼 몸이 망가져 간다는 것이기도 해요.”

6년 만에 받은 첫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소박한 선물을 건네고, 동료들과 웃으면서 따뜻한 밥 한 끼 먹었을 영수 씨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해고자로 살면서는 감히 꿈꿀 수 없었던 미래 계획을 세우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는 고민도 했을 것이다.

복직 후 공장 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은 처음 노동조합 만들던 때와 비교하면 크게 나아진 건 없다고 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지엠 비정규직이 공단 비정규직 일부 제조업체보다 임금이 조금 높았는데, 지금은 별 차이가 없어요. 2·3차 하청업체는 거의 최저임금이고요. 오히려 많이 달라진 건 공장 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였어요. 처음 노조 만들 때는 조합원들하고 말을 안 하려고 했어요. 조합원하고 어울렸다가 자신이 잘릴 수도 있으니까…. 근데 6년 후에 복직하니 그런 분위기는 바뀌었더라고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노조 만들고 나서는 조합원들이 항의하니까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못하거든요. 비인간적인 대우는 좀 개선된 거죠.”

그래도 여전히 조합원이 없는 1차나 2·3차 하청업체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나이가 많아도 직책이 낮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규직은 전환배치, 비정규직은 우선해고

변하지 않은 또 한 가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해고였다.

“지엠은 물량이 줄거나 구조조정을 하면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해고해요. 2017년과 2018년에도 물량이 줄어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해고한 거예요. 제가 2006년 처음 입사했을 때 부평공장에 1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1,50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도 안 돼요.”

한국지엠은 경영위기와 한국 철수론을 내세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속 해고했다. 부평공장에서만 2017년에 엔진공장과 차체 공장 인소싱 과정에서 13명, 2018년에 2교대가 1교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13명, 인천KD센터(수출포장) 폐쇄로 11명, 2019년 인천부품물류센터 폐쇄로 1명이 해고됐다. 이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해고노동자 숫자일 뿐이다. 영수 씨는 해고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확한 숫자는 확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인소싱’은 기존에 외주화했던 공정에 정규직이 다시 일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말만 들으면 비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정규직화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 공장에서의 ‘인소싱’은 그 자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계속 일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원래 일하던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공정 폐쇄 등으로 갈 곳이 없게 된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하던 일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소싱’은 ‘비정규직 우선 해고’의 또 다른 이름이 돼 버렸다. 너무 힘든 공정이라 정규직들이 오는 것을 꺼려서 아직 ‘운 좋게’ 해고가 안 됐다고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

“정규직은 전환배치로 자리를 보전받지만, 비정규직은 업체를 폐업하는 방식으로 해고를 해요. 저는 작년 말에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이 되고 무급휴직을 강요해서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같은 상황에서 정규직은 휴업수당을 주면서 비정규직은 무급휴직하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는 업체가 없어지면서 자동으로 해고가 됐습니다.”

영수 씨는 이런 식의 무급휴직에 동의하면 회사는 조금만 어려워도 매번 비정규직에게만 같은 방식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노동자 입장에서 무급휴직은 해고당하는 것만도 못하다고 했다. 해고되면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도 무급휴직 상태에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급휴직은 견디기 힘들면 사직서를 쓰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제로 무급휴직 중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견디다 못해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2017년 말 이후 38명의 해고자가 생겼고, 군산공장에도 4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8명의 해고자가 있어요. 이제 곧 부평2공장이 다시 2교대로 전환되는데, 우리 46명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고공농성도 하고 단식농성도 해서 이번에 해결하자고 결의를 했습니다. 비정규직 조합원이 많아서 공장 안에서 단체행동으로 사측을 압박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인원수가 많지 않고 사측이 대화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거죠.”

영수 씨는 2교대 전환에 필요한 노동자 수가 7백 명인데, 현재 전환 배치를 기다리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630명이라 비정규직 노동자 46명을 충분히 고용할 여력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정규직 전환 가처분 신청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 하반기, 부평·군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고공농성과 25명 집단단식 농성을 했다. 해고노동자 3명의 26일간의 단식농성 이후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이인화 본부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 10월 16일 현재 16일 차가 됐다. 2017년 말 해고 이후 시작된 천막농성은 624일이 된다. 하지만 아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10월 16일 철탑 고공농성 52일 차를 보내고 있는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이영수 씨 [출처: 연정]

정규직 노동조합 단체교섭은 중단된 상태고, 지난 10월 10일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 중재로 마련된 논의 자리에 비정규직지회는 참석하지도 못한 채 의견만 주고받고 마무리됐다. 그런 가운데 인천지법 민사21부는 10월 15일 한국지엠이 낸 철거 등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고공농성 중인 철탑이 토지와 인도의 효용을 저해한다며 비정규직지회에 철탑 철거를 주문했다. 또, 결정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 14명이 각각 하루에 50만 원 씩(하루 총 700만 원) 한국지엠에 지급하라고 했다.

“우리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며 불법파견 소송에서 이긴 게 많은데요. 정규직 전환 가처분신청이 있어서 우리도 일단 정규직 전환 가처분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측 편만 들어주는 법원의 행태가 한심합니다.”

영수 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나 다시 복직했을 때, 모든 업무 계획과 지시는 원청인 한국지엠이 했다. 2015년 영수 씨와 한국지엠 부평공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한국지엠이 실제 고용 당사자임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승소하고, 다음 달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비정규직지회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한국지엠을 고소했고, 인천북부고용노동지청이 해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했으나 검찰의 보강조사 지시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부평·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들의 사용자가 한국지엠이라는 대법 판결을 포함한 법원 판결을 8번이나 받았지만, 정규직이 되기는커녕 거리로 쫓겨났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800여 명을 불법파견한 혐의로 한국지엠 닉 라일리 전 사장이 선고받은 벌금은 700만 원이었다. 법원은 한국지엠 사업주에게 선고했던 700만 원과 같은 금액을 억울하게 해고돼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는 매일 내라고 했다.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끝나고 한국지엠 사측에 복직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본관이 있는 한국지엠 서문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사측은 컨테이너로 입구를 봉쇄하고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결국 해고노동자들은 계란을 던지며 항의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해 한국으로부터 8100억 원의 자금지원을 받고 청라연구소 부지 무상임대 등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지엠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과 관련해 한국지엠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으나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고객센터에서 안내해주는 이메일 주소로 수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도 받지 못했다.

이영수 씨는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을 포함해 한국지엠이 겉으로는 노사상생을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요구,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영수 씨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갈 겁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해결된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자동차 산업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사람 자르는 게 당연시되고 있어요. 물량이 없을 때, 정리해고하는 게 합법화돼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도 했지만, 노동자 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공장 안에서는 물량이 줄어 회사가 어렵다, 자동화한다, 비용을 낮춘다는 이유로 ‘또 자른다더라’는 말이 끊임없이 돌아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해고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워커스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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