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INTERNATIONAL1] 그린뉴딜의 동력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

[출처: Extinction Rebellion 2019]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퍼지는 가운데 그린뉴딜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최근 그린뉴딜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린뉴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커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와 경제적 양극화가 현 경제 시스템의 실패로부터 유래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지적, 기술적 대책이 아닌 사회, 경제, 정치의 영역을 포함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기되는 해외의 논의에 비해, 한국에서의 논의는 여전히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녹색뉴딜을 제기했듯, 그린뉴딜이라는 모토도 누가 어떻게 전유하느냐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담게 된다. 물론 이에 따른 정책의 결과와 중장기적 영향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4대강 사업도 녹색뉴딜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러기에 최근 회자되는 그린뉴딜이 어떤 맥락과 원칙, 내용으로 논의되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심화

그린뉴딜의 배경은 지금까지 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아울러 보다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는 현실 인식도 존재한다.

1980년대 후반 ‘온실효과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가설이 아닌 사실임이 받아들여지면서, 국제사회는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약 등의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책들은 문제의 핵심을 다루기보다는 상황악화를 최소화하고 탄소배출 증가를 더디게 하는 미온적인 방식만을 채택해왔다. 그 덕에 유럽권 일부 국가에서 탄소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었으나, 전 지구적인 경제규모 확장과 에너지 사용량 증가에 따라 전체 탄소배출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작년 10월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각각 섭씨 1.5도와 2도 올라갔을 때를 가정해 그 영향을 비교했는데, 2도 올랐을 때 생태계와 인류에 미치는 악영향이 1.5도 상승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1.5도 내의 기온 상승을 막는 것은 가능하나, 이를 위해서는 파리기후협약의 합의 수준을 넘어서는 보다 급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은 지금까지의 기후위기 대응이 실패했다는 많은 연구결과들과 결합되며 새로운 대안인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불평등의 심화와 이에 대한 근본적 변화 요구는 그린뉴딜 등장의 또 다른 배경이다. 지난해 세계불평등리포트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상위 1%의 수입은 1980년 전체 소득의 10%에서 2016년 20%로 두 배 증가했다. 하지만 하위 50%는 같은 기간 20%에서 13%로 소득이 감소했다. 빈곤문제를 다루는 옥스팜에 따르면 1988년과 2011년 사이 전 세계 상위 1%의 소득증가율이 하위 50%의 소득증가율의 182배에 이르렀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명과 하위 50%의 인류가 동일한 부를 소유하고 있다. 작년 초에 나온 옥스팜 자료는 전 세계 상위 1%가 2017년 한 해 동안 새로 창출된 부의 82%를 독식했음을 보여준다.

불평등 심화의 경향은 한편에서 도널드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 등 우익 포퓰리스트들을 권좌에 앉히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강한데, 이로 인해 영어권에서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밀레니얼 세대의 40% 이상이 사회주의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2016년 대선 당시 버니 샌더스 돌풍과 지난해 중간선거 이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를 비롯한 급진적 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방과 주 의회에 진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를 빚어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린뉴딜의 동력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

미국에서 그린뉴딜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됐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실 이들보다 먼저 그린뉴딜을 제기했던 것은 미국녹색당이었다.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추진하는 계획도 녹색당 그린뉴딜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그린뉴딜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정책이 광범위한 사회운동과 결합됐기 때문이다. 기후정의 운동과 풀뿌리 민중운동이 결합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대안으로 그린뉴딜이 힘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해서였다.

기후정의 운동의 외연확장에는 청소년과 젊은 층의 참여가 도드라졌다. 병든 지구를 물려받아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지구의 건강은 더욱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기후행동의 핵심에는 스웨덴의 16세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있다. 2018년 가을, 학교수업을 거부한 채 스웨덴 의회 앞에서 즉각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했던 그의 일인시위는, 이후 스웨덴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졌다. 올해에만 세 번의 수업거부 기후행동이 있었고 150여 개 국가의 9000여 학교에서 수백만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미국에서는 십대와 이십대를 주축으로 2017년 구성된 썬라이즈무브먼트(Sunrise Movement)가 앞장을 섰다. 풀뿌리 운동을 형성해 정치권의 결정에 개입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은 2018년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사무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새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공개적 지지를 선언하며 미국 기후행동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기후정의운동의 일환으로 버니 샌더스의 그린뉴딜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작년 말에 조직된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XR)이 기후정의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 트라팔카 광장 등 런던 시내 주요 공공장소를 점거하고 교통 대란을 야기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XR은 이후 교통요지인 도로와 다리를 점거하고 강력 접착제로 재무부 건물, 기차, 비행기 등에 자신의 신체 일부를 붙이는 등의 비타협 비폭력 시민불복종 전술을 전개해왔다. 정부와 언론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이들의 행동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의 적극적 지지까지 이끌어내며 노동당 내 그린뉴딜 그룹의 입지도 강화시켰다.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

그린뉴딜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토론되고 있다. 얼마 전 UN 무역개발회의조차 경제침체 해소와 다자주의 확립의 방안으로 ‘전 지구적 그린뉴딜’을 주장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이들의 논의가 모든 영역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녹색 정신과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근원이 지구와 인간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성장만을 추구했던 자본주의에 있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도 이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은 어떤 원칙과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에서의 그린뉴딜은 지난 2월 하원의 오카시오 코르테즈와 상원의 에드 마키 의원에 의해 처음 정초된 후 현재 버니 샌더스에 의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됐다. 13항에 걸친 샌더스 그린뉴딜의 핵심 정책은 표1에 정리돼 있다. 이에 더해 마지막 14항은 화석연료산업에 대한 지원금 철회,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 전기 판매 수익, 새로운 일자리로부터의 세수, 군사비용 감축 등 재정확보에 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영국노동당의 그린뉴딜은 9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제시했는데, 그 핵심내용은 표2에 정리해놓았다.

미국 버니 샌더스의 그린뉴딜[표1]

- 2030년까지 전기와 교통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 및 2050년까지 완전한 탈탄소화
- 20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무실업 사회로 진입
- 정부의 직접 공공투자 16.3조 달러(한화 약 2경 원)
- 5년의 실업보험, 직업전환임금보장, 주거지원, 직업교육, 의료, 연금지원, 새로운 일자리 제공 등 노동자들의 공정한 전환
- 기후위기 국가긴급사태 선포
- 단열 등을 통한 전기료인하, 공공교통강화, 전기차로 트레이드인 지원, 고속 인터넷 제공 등 인프라 재건을 통한 생활비감축
- 재생 가능하고 생태 친화적인 농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소규모 가족농장 지원
- 빈곤층, 원주민,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 기후위기의 영향에 가장 노출된 기후위기 최전선 커뮤니티(frontline communities)의 정의 구현
- 녹색기후펀드 설립,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등을 통해 전 세계 탄소배출 감축에 기여
- 국내 목표 달성과 발전도상국 지원을 통해 전 지구적 탄소배출 저감목표 초과달성
-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를 위한 R&D 대규모투자
- 기후정의운동 확장 및 주변화된 사회집단들을 운동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지원 및 환경보존과 공공토지에 대한 투자


영국 노동당의 그린뉴딜[표2]

- 2030년까지 탄소 제로 배출
- 단기간 내 화석연료 사용 폐지
- 재생에너지에 대규모 투자
- 노조가 보장된 고임금 녹색 일자리로의 정의로운 이행
- 공공적이고 민주적인 소유의 확대
- 통합적 녹색 공공교통
- 발전도상국들의 기후전환 지원
- 모두에게 보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기본권 보장 - 이미 생긴 기후 난민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기후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

이 두 나라의 그린뉴딜은 서로 조금씩은 다른 맥락에서 나왔고, 내용에도 차이가 있으나 많은 문제의식과 계획을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탈탄소화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정부 개입과 공공투자를 제시한 점, 탈탄소화의 과제를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권리가 증진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로 파악한 점, 주거 교통 정보 등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인프라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점,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강조한 점, 자국 내 에너지 전환 뿐 아니라 발전도상국들의 에너지 전환 문제에 대한 책임성을 인정한 점 등이 그것이다.

공공성, 민주성, 차별 배제/보편성

이에 기반해 두 나라의 그린뉴딜로부터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을 뽑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공성의 원칙이다. 공공성이 강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윤 창출이 제1의 목표인 사적 기업에게 기후위기 극복은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없고 불평등 해결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시장에 의존한 탈탄소화 전략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끊임없이 쌓이고 있다.

그중 지난 7월 유럽 공공노조연맹의 보고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국유화된 에너지 산업의 독점구조를 허물고 시장 효율성에 기대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며 진행된 유럽의 에너지 시장 자유화 실험이, 오히려 5개 에너지회사의 시장 독점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정반대의 결과로 귀결됐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원칙은 민주성이다. 민주성이 중요한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에너지 등의 경제 정책이 성장논리에 사로잡혀 관료, 대기업, 전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확보는 이런 민주주의의 결여를 상당부분 보충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에너지 부문이 여전히 공기업 형태를 띠는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공공성’이 그 자체로 민주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대기업의 입김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미국 그린뉴딜은 한편에선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에선 노동자, 농민, 유색인종,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공동체 지원과 이들의 발언권 확대, 정치적 참여를 통해 민주성 강화를 모색한다. 영국의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전국, 지역, 로컬 단위로 나눠 중앙정부가 전체적인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지역과 로컬 공동체에서 자율적으로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세 번째는 차별 배제와 보편성의 원칙이다. 여기에는 에너지와 산업은 공공재이며 따라서 그 과실이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에너지, 교통, 의료, 교육 등 각종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차별 배제와 보편성은 지금껏 많은 공공 서비스에서 배제됐던 ‘최전선 커뮤니티’를 전면화하면서 다뤄지고 있다. 반면 영국에서는 지불 능력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교육, 건강, 에너지, 주거, 교통, 정보, 먹거리 등의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 영국의 그린뉴딜은 자국민을 넘어 기후 난민에 대한 고려까지 포함한다. 노동당 그린뉴딜에서 뚜렷이 보이는 차별 배제와 보편성의 원칙은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할만하다. 에너지를 비롯한 기본 서비스를 시장에서의 재화가 아닌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들도 있다. 샌더스의 그린뉴딜은 선거 공약의 형태로 제시됐는데, 여전히 성장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강하다. 또 양국의 그린뉴딜은 똑같이 원자력 문제에 관해서는 입장이 없다(영국의 경우 아이러니컬하게도 탈탄소화의 방안 중 하나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주 호명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나 성소수자 문제가 등장하지도 않은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이런 면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원인이 자본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 권력구조에도 있으며 그린뉴딜은 이 지점까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성주의적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은?

앞서도 강조했지만 그린뉴딜의 목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극복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자거나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추상적 구호도 아니다.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은 완전한 탈탄소화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목표와 방안을 나름 최대치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 힘으로 만들어졌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린뉴딜이 환경 혹은 노동과 같이 부분적인 문제를 다루는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참모이자 샌더스 그린뉴딜 구상의 핵심 멤버이기도 한 사이캇 차크라바티가 밝혔듯, 그린뉴딜의 궁극적 목표는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노동당도 그린뉴딜의 성격을 “지금의 경제체제의 탈탄소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라 규정하고 있다.

이점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한국도 그린뉴딜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문제를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혹은 더 암울한 방식으로—대면하고 있는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이 이중위기에 대응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응책을 찾는데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린뉴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논의보다 현실의 운동이 선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름과 내용이 무엇이 됐건 위기의 대안은 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장 활동가가 돼 현 상황의 절박성을 알리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조직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