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문수, 누가 누구를 혐오하는가

[미디어택] ‘인권’을 법 그리고 정치 테두리에 가두는 곳은 인권위다

[출처: By 구름아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7235962]

“동성애는 담배 피우는 것보다 인체에 유해하다”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라”
“여성들은 매일 씻고 다듬고 또 피트니스도 하고 자기를 다듬어야(도시개발 비유)"


한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15·16·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32·33대 경기도지사를 지낸 사람.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다. 김문수. 그의 직업은 정치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인권위)가 세월호 유가족 등을 향한 혐오 표현 진정 사건을 ‘각하’한 사실이 알려졌다. 인권위는 “(김문수 씨의) 발언이나 선거 공약만으로 구체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당 진정 사건은) 인권위법 상 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정치인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 발언과 관련해서는 위원회 인권위 차원의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다. 이 같은 결정을 보면서 한마디로 맥이 풀렸다.

걱정되는 부분은 인권위 결정에 따른 효과다. 2020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나온 판단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쏟아질 혐오발언들을 걱정해야 하는 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기에 난민에 대한 혐오표현까지 그 폭은 더 넓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결정을 낼 거였으면 차라리 내년 총선 끝나고 하던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인권위의 각하 결정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인권위는 “구체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해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정의)의 차별행위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혼인 여부,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그 이용 △(직위를 이용한)성희롱 행위 등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법조문만 보면, 김문수 씨의 혐오표현이 인권위의 진정요소에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김문수 씨의 혐오표현은 그냥 둬도 괜찮은 것인가?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 인권위에서 말이다.

그런데, 떠오르는 리포트가 있다. 최근 인권위가 발간한 <혐오표현리포트>가 그것이다. 해당 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은 단락이 나온다. “혐오표현은 표적이 된 대상집단과 구성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중략)…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는 대상집단과 사회에 어떠한 차별 조장 효과를 발생시키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혐오표현리포트>에서 또 다른 부분도 눈에 띈다. “정치인 등 사회적 향력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의 혐오표현은 해악성이 매우 크기에 긴급하고 강한 사회적 대응 필요하다”고 적시한 부분이다.

인권위는 혐오표현이 가지는 ‘효과’를 우려했다. 그런데, 본 기관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차별 진정을 각하했을 때의 효과는 고려하지 못한 것인가. 정치인의 혐오표현의 해악성을 언급하며 긴급 대응을 주문해놓고는 차별 진정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1년 5개월이나 걸린 것이다.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인권위의 김문수 씨의 혐오표현에 대한 차별진정 ‘각하’가 <혐오표현리포트>와 배치된다는 주장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권위마저 우리 모두의 ‘인권’을 ‘법’ 테두리 안에 가두고 있구나 하는 쓸쓸함이 그것이다. 인권위는 정치인의 혐오표현에 대해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후속’ 조치일 뿐이다. 만일, 인권위가 김문수 씨의 혐오표현의 문제점을 엄중히 봤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했다.

[출처: By Bifalcucci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0918023]

인권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걱정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 9월 인권위 관계자의 “지나치게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내부 논의조차 못 하게 하고 있다”는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는 “최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총선 전까지는 하지 말라는 주의”라고 덧붙다. 그랬다. 한국사회의 ‘인권’은 법은 물론 여전히 ‘정치’의 눈치를 봐야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다시 김문수. 그는 2011년 화재신고 회선인 119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나 도지사인데요~”라던 정치인이다. 그의 혐오표현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혐오 받는 집단 중 하나가 바로 정치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최근 ‘평등권 침해’ 이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인들의 혐오는 이렇게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논란은 더불어민주당으로 튀었다. 서삼석, 이개호 의원이 공동발의한 것이 타깃이 됐다. 비난이 쏟아지자 그들은 한심한 해명을 내놓았다. 서삼석 의원실은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었고, 통과되기 어렵겠다는 정무적 판단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개호 의원실은 “실무진들이 실수를 해서 날인을 했다”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진심 정치인 혐오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통과되기 어렵겠다고 판단해 날인했다’는 것은 그나마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이것이 바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실질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문수 씨가 당선됐더라면 ‘퀴어문화축제 금지’, ‘서울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삭제’는 현실화됐을지 모른다. 인권위는 ‘공약만으로 구체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또한 통과될 가능성이 없으니 괜찮다고만 할 수 있을까.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정치인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혐오 또한 되돌아간다. 김문수 씨한테 누군가 “김문수는 담배보다 유해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째 그 말은 혐오인지 팩트인지 헷갈리는 건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