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막힌 문중원 열사 오체투지, 청와대 인근서 촛불문화제

4박5일 오체투지 마무리...“설 전 사태 해결하라” 요구 확산

한국마사회 문중원 열사 사망 54일 째를 맞은 21일 오후 7시 30분.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애초 촛불문화제는 광화문 문중원 열사 시민 분향소 앞에서 오후 7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청와대 인근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가로막은 탓에 부득이하게 장소가 변경됐다.


이날은 4박 5일에 걸친 오체투지 행진이 마무리되는 날이기도 했다. 오체투지 행진단은 설 전에 문중원 열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17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이후 21일 청와대 사랑채까지 약 20km에 달하는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 30분 경 청와대 사랑채에 도착해 오체투지를 마무리한 뒤, 설 전 해결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경찰이 오체투지를 가로막으면서, 참가자들은 약 2시간여 동안 도로 위에서 농성을 벌여야 했다. 오체투지 행진단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행진 참가자 한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추모 촛불 문화제는 경찰이 도로에 설치한 차단벽 앞에서 열렸다. 문중원 열사의 부인인 오은주 씨는 “이렇게 추운 날, 드라이아이스를 이불 삼아 덮은 채 추운 길바닥에 누워있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 남편의 운구차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라고 말한다”며 “그래도 매일 간절한 마음을 담아 투쟁하고 또 투쟁한다. 제 남편을 죽이고 우리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간 마사회가 저를 투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서두르지 않겠다.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오늘이 쌓여 달라지는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며 “남편이 눈물로 써내려간 유서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준비했던 아이들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 그 애절한 마음과 눈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남편을 따뜻한 곳에 묻어줄 수 있도록, 고통 없이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문중원 열사 유족과 시민들은 경찰이 행진을 불법적으로 가로막았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중원 열사의 장인인 오중식 씨는 “오체투지의 간절한 마음이 청와대에 있는 높으신 분께 전달 돼 하루빨리 상황이 마무리되면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락없이 경찰이 가로막아 도로에 앉아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 씨는 “오체투지를 하면서 내 사위 이름을 수백 번 불렀고, 가슴이 찢어졌다. 눈물을 참으려 해도 터지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빗물이 내리면 땅이 마르듯 눈물을 흘릴수록 마음이 단단해 졌다”며 “딸애가 말했듯 나도 투사가 됐다. 앞으로 남은 인생 힘없고 약한 사람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진 문중원 열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청와대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경찰은 어떻게든 기어서라도 목적지까지 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남성 경찰의 다리 사이로 기어가게 만들었다”며 “촛불 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 추운 날씨에 비통한 죽임을 당한 열사의 유족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대한 수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설 전에 해결하라는 우리의 절박하고 당연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과 전면전에 나설 것”이라며 “이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또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 죽임의 행렬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는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노래공연도 이어졌다. 세월호 유족인 최순화 씨는 “유가족 분들을 뵙고 싶었다. 옆에 있고 싶었다. 가족을 잃은 아픔, 슬픔, 분노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태고 힘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다”며 “오늘 혼자 점심을 먹다 17일에 오은주 씨가 민주노총 집회에서 하신 말씀을 전문으로 읽었다.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한참을 먹지 못하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 6년이 지나다보니 울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다. 유족께서 투사가 됐다고 하셨다. 투사는 어디서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문중원 님은 죽지 않았다. 유족들이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를 바꾸겠다는 투지로 싸우고 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부모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저희 아이들도 죽지 않았다. 저희도 잊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며 마음을 전했다.

한편 참가자들은 촛불문화제 후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갔으며 5시간 만에 목적지인 청와대 앞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22일에도 청와대 분수 앞에서 설 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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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언가

    아마도 "노동계"가 오체투지와 같은 종교적 행위와 투쟁노래에서의 종교적 색을 빼내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보아왔지만 국가는 종교에 대해서 매우 냉정합니다. 80년대 학교 다닐 때만 생각해봐도 교실분위기가 종교 분위기는 없었잖습니까. 아마 사이비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한국은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어있지만 고위직들이 개인적으로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