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 히어로의 호주 ‘먹튀’ 사건

[이슈① | 우리를 가난하게 하는 혁명] 가짜 자영업 계약, 부당해고 소송 뒤따르자 끝내 철수


호주는 초국적 배달앱 기업 딜리버리 히어로(DH)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올해로 스물아홉인 호주 배달 노동자 조쉬 클루거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2016년 11월 DH의 모기업인 배달앱 푸도라(Foodora)에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근로계약서가 아닌 ‘독립 사업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에는 자신을 ‘사장’이라고 명시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푸도라 마크가 찍힌 분홍색 유니폼과 음식가방을 착용하고 일을 했다.

임금은 시간당 14호주달러(약 1만1200원)로 당시 최저임금 17.70달러(약 1만4100원)보다 훨씬 적었다. 업무에 필수적인 자전거와 스마트폰 수리비, 통신료 등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배달 건수 당 5달러를 더 벌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클루거 씨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진은 클루거 씨를 높이 평가하며 관리 업무도 맡겼다. 푸도라는 그에게 “훌륭한 배달 기사이자 기업가적 통찰력이 있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루거 씨는 푸도라가 신입 라이더들에게 시간당 계약금을 점점 낮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라이더들의 근무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많은 시간을 낸 라이더는 가장 먼저 배치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교대 시간 선택권이나 보상이 크게 줄었다. 패널티를 받아 이틀 동안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당 계약금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이는 2년도 되지 않아 아예 사라졌다. 푸도라는 모두에게 배달 건당 7달러의 수당만 지급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대체로 라이더들은 시간당 6달러도 벌지 못했다. 라이더들은 억압적인 정책 속에서 적자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클루거 씨는 분통이 터졌다. 일을 하면 할수록 생활비는 빠듯해졌다. 그는 달릴수록 가난해지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푸도라는 쿨한 이미지의 분홍색 광고로 자신들을 홍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루거 씨는 뉴스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푸도라 노동조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또 주변 라이더들과 왓츠앱에 채팅방을 만들어 임금과 근무 조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금방 250명으로 불어났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 며칠 만에 클루거 씨는 푸도라 경영진이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 회사는 그의 행위를 두고 “기밀과 지적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왓츠앱 채팅방의 접근 권한을 넘기라고도 했다. 클루거 씨가 이를 거절하자 회사는 즉시 그와 맺은 계약을 파기했다. 2018년 3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클루거 씨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민 끝에 호주의 운송노동자연합(TWU)의 문을 두드렸고, 노조의 도움을 받아 그해 7월 당국에 푸도라를 부당해고로 고소했다. 결국 2018년 11월 호주 노사 관계 재판소인 공정근로위원회(Fair Work Commission)는 푸도라가 ‘가혹하고 부당하며 불합리한’ 방식으로 클루거 씨의 계약을 종료시켰다고 판결했다. 또 푸도라가 라이더의 업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라이더가 푸도라의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푸도라가 클루거 씨를 부당해고 했다며 1만5559달러(약 1,240만 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배달앱은 임금 착복에 기반 한 모델”

하지만 푸도라는 호주의 라이더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대신 철수를 결정했다. 이외에도 푸도라 호주당국은 또 다른 소송에 휘말린 상태였다.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푸도라 경영진이 이 소송을 피해 철수를 택한 것이라 분석했다.

또 다른 소송은 2018년 6월 푸도라가 호주 공정근로옴부즈맨(FWO)에 가짜 자영업 계약을 이유로 기소된 사건이다. 호주의 정부기관인 FWO는 노동 관련 정보 제공과 부당근로 신고접수 및 적발 업무를 수행한다. FWO는 푸도라에서 최소 3명이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됐어야 한다며 연방법원에 푸도라를 고소했다. 당시 FWO 위원이었던 나탈리 제임스 씨는 이 회사가 높은 수준의 통제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푸도라가 배달원들에게 자사 브랜드 유니폼을 입게 하고 특정 지역으로 업무를 제한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푸도라는 소송을 당한지 1~2개월만인 2018년 8월 4일 “성장 잠재력이 더 높은 다른 시장으로 초점을 옮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철수 입장을 밝혔다. 호주 공영방송 ABC에 따르면, 푸도라는 당시만 해도 직원들에게 사업 철수 시까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푸도라는 돌연히 본사 딜리버리 히어로에 2,800만 달러를 빚지고 있다며 배수진을 쳤다.

당시 푸도라가 밝힌 부채 내역에 따르면, 약 800만 달러(약 63억8천만 원)의 체불임금(노동자 청구액)을 포함해, 호주 조세청에 세금 210만 달러, 뉴사우스웨일스에 55만 달러, 빅토리아와 퀸즐랜드에 40만 달러를 빚지고 있었다. 모두 1,1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푸도라 호주 당국은 본사에 진 부채를 이유로 채권자에게 3백만 달러를 제시했을 뿐이다.

임금체불 노동자, 호주 조세청, 뉴사우스웨일스, 빅토리아, 퀸즐랜드 조세당국은 이후 채권단을 구성해 대책을 논의했다. 채권단은 지난해 5월, 1700여 명의 배달원들에게 227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라이더에 대한 미지급금이 약 800만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며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더구나 푸도라에서 일했던 라이더 5500명 중 밀린 임금을 청구한 사람은 1700명에 불과했다. 호주 운송노조(TWU)는 다수의 노동자가 청구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을 감안했을 때 임금을 착복한 정도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추정했다.

DH 자회사, 호주에선 노동자성 인정

호주에서 DH 자회사가 체불임금과 공공부채를 지고 소위 ‘먹튀’를 했지만, 노동관계에서는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푸도라 호주 당국은 2018년 11월 “배달 라이더 다수가 최소한 비정규 직원으로 분류됐어야 했다”고 인정했다. 또 “배달원의 20%가 적어도 1번은 정규직으로(주 38시간 노동) 일했으며 5%는 4주 이상 주 38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이 (푸도라 사측의) 인정은 세계 첫 번째이며 우버, 우버 이츠, 딜리버루 등 세계 ‘긱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1)

TWU 코디네이터 토니 셸던(Tony Sheldon) 씨는 이 배달앱을 두고 “임금 착복에 기반을 둔 사업 모델”이라며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정부가 책임을 방기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플랫폼 산업에 대한 모든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라이더들의 70%는 해외에서 온 비자 소지자로, 평균연령은 23세”라면서 “말 그대로 이 회사를 세계 끝까지 추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 라이더들은 서로 연대해 세계 최대 기술 기업을 상대할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것이 첫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호주 TWU는 현재 DH 본사를 상대로 체불임금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DH는 수백만 달러의 미지급 부채를 뒤로 하고 호주를 떠났지만 여전히 세계 4대 배달앱 기업이다. 현재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등 40개국에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25만 개 이상의 음식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2018년 DH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DH는 주문, 음식점과 활동적인 소비자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로 기록됐다. 또 2018년에만 세계에서 3억690만 건의 주문을 달성했다. 호주에서 철수한 푸도라는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교대는 유연하며 시간당 25달러까지 벌 수 있고 추가적으로 의료보험이나 팀 이벤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다. 호주에서 철수한 직후, DH 수익은 2억6700만 유로로 94%(2019년 1분기)나 급증했다. 내스퍼스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713억 달러(약 83조 원)에 달했다.

각주
1)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18/nov/10/foodora-australia-admits-riders-owed-5m-were-more-likely-than-not-employ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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